보물을 찾았다

2022년 3월 31일 목요일 / 50년 전 내 일기장

by 글방구리

[꾸러기 마을신문] 아이들과 첫 만남을 갖는 날이다.

몇 년 전에 했던 일이지만 그때는 아이들과 방과후에서 함께 지내면서 활동 중의 하나로 시작한 거였고, 지금은 '글쓰기 선생님'이 되어 하는 일이다. 그때는 3,4학년 여섯 명 아이들과 했고, 지금은 4학년만 열 명이다. 일은 같은 일이지만, 아이들은 다르다. 상황도, 규모도. 가장 다른 건 그동안 이 아이들과 떨어져 지내서 아이들의 성격이나 관심, 흥미를 전혀 모른다는 거였다. 긴장이 된다.

예전에 만들어 놓았던 신문을 찾았다. 당연히 보관해 놨을 거라 생각했는데, 아무리 뒤져도 없다. '다시 이런 일을 하겠어?' 하고 다 치워버렸나 보다. 혹시나 하고 스튜디오에 내려가 '보물창고'까지 열어보았다. 신문은 없다. 아, 그런데, 정말 오랜만에 다시 찾았다. 50년 전, 1972년도의 내 일기장.


2022년도인 올해, 내 나이가 만 쉰일곱. 엄마 뱃속에 들었던 열 달도 한 살로 쳐주는 우리 나이로 하면 쉰아홉이니, 1972년이면 나는 만 일곱 살, 우리 나이로 아홉 살이었겠다. 그런데 일기장에 씌어진 학년은 초등학교 3학년. 여섯 살 때 입학식이니 뭐니 다 생략하고 두 살 위의 언니를 따라 그냥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던 특이한 과거 때문에 그렇다. 동생과 같은 학년, 같은 반에 다니고 있는 언니의 자존심을 세워주려 전학을 하면서 일 년을 '꿀었다.' 그래서 3학년인데도 아직 아홉살. 그후에는 딱히 꿀은 일이 없어, 친구들은 모두 다 나보다 한 살씩 많다.



1972년 6월 24일 토요일

오늘 소년한국일보에서 소년한국 입상자 명단 서울이 나왔다.

학교 가서 찾아볼려고 신문을 가지고 갔다.

선생님은 안 계셨다.

그동안 오빠 일기장을 갖다주고 왔다.

갖다 주고 온 다음 책가방을 잘 다루고 앉아 있으려니까, 선생님께서 오셨다.

또 언제 쓰셨는지 옆에 준특선과 입선을 써넣으셨다.

준특선은 김도렬과 이지수이고 입선은 잘 모르겠다.

희진이가 신문에다 표시를 해 주었다. 표시를 한 곳을 찾아, 봤다.

아무리 봐도 은, 선, 춘은 없었다.

다른 아이들이 뽑힌 것이 부러웠다.

열심히 그렸는데도 안 뽑혔으니, 부럽기 짝이 없다.

은, 선, 춘이 전부 다 안 뽑힌 것이 우리 집안의 망신이다.


'은, 선, 춘'이라 하면 우리 형제들 이름 끝자리다. 이때까지는 집이 망하기 전이라 '소년한국일보'를 구독해서 보았나 보다. 아마도 신문사에서 주최한 그리기대회에 학교에서 단체로 참가했나 본데, 다른 친구들이 뽑힌 데 대한 부러움이 가득 하다. 그렇다고 우리 형제가 아무도 뽑히지 않았다고, 우리 '집안의 망신'이랄 것까지야.


1972년 9월 8일 금

화계 국민학교 다닐 때, 언니 남자친구 근제와 기빈이 어머니가 오셨기 때문에 가게에 포도와 새우깡을 사러 갔다. 언니 돈으로 나 비누방울도 샀다. 조금 해 보았더니, 굉장히 잘 됐다. 막 8개, 10개 이상이다. 제일 많이 됀(된) 게 25개 이상이다. 난 어리다고 그런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정말 난 그런 것은 좋아한다. 언니와 엄마는 내 속을 다 안다.


50년 전에도 '새우깡'을 좋아했음이 증명되었다! 언니는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나한테 지극한 사랑을 준다. 자기 돈으로 비눗방울도 사주었구나. 비눗방울이 잘 되어 좋아하는 나를 지긋이 바라보고 있을 언니와 엄마의 눈길이 애틋하게 느껴진다. '언니와 엄마가 내 속을 다 안다.'는 저 글은 내가 언니와 엄마에게 갖고 있는 애정의 표현이기도 하다.



(그 전 날 일기에 "내일은 현애네 집에 놀러간다"고만 되어 있었는데, 내용으로 미뤄보아 현애 생일에 초대되었던 것 같다.)

1975년 3월 2일 일요일 [현애네 집]

9시 50분에 집을 나와 3번 종점에 갔다. 괴상하게도 혜정이와 같은 차를 탔다. 현애에게는 사과를 파서 주었다. 가서 과자따먹기, 껌찾기, 밀가루놀이, 술레잡이, 다방구, 수건돌리기, 소꿉장난, 고무즐 등을 했다. 다방구를 하다가 발을 삐었다. 입에 밀가루가 묻어도 엿을 찾아 먹으며 깔깔대고 웃고 흉내를 낼 때는 모두 배꼽을 잡는다. 난 생일 초대 받은 중에 오늘처럼 재밋는 날은 처음이다. 노래자랑을 할 땐 하늘 쳐다보고 하고 땅보고 하고.... 하여간 참 재미있었다.


학교에서 해마다 일기를 쓰라고 했을 텐데, 모든 일기장이 다 남아 있지는 않다. 내가 쓰지 않았는지, 엄마가 모아두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1975년(6학년) 때 쓴 일기장도 남아 있었는데, 글씨체나 내용이 3학년에 비해 월등히 나아진 것은 없어 보인다. 6학년 때까지 밀가루놀이, 술래잡기, 소꿉장난 같은 놀이를 하면서 즐거워했다니. 요즘 6학년 아이들에게도 이런 놀이를 하자고 하면 즐거워할까?


1975년 5월 27일 화요일 날씨(맑음)

소아와 나로부터 시작하여 수미를 우리 5총사에 넣어 클럽을 넓히자고 한 말은 혜정, 현애, 혜경에게 전해져서 찬성에 도달했다. 그래서 수미에게 전했다. 걔도 고집장이다. 혜정이가 불러도 안 나오고 혜경이가 불러도 안 나왔는데 내가 막 불렀더니 나왔다. 그래서 그 말을 전했더니 걔도 찬성했다. 우리는 여섯명의 클럽이 된 것이다. 확실히 여섯명이 되니까 더욱더 친구애가 짙어진 것 같다.


일기장에 친구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싸운 이야기도 나오고, 같이 논 이야기도 나온다. 아마 5학년 이후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부모님이 내게 신경을 잘 써주지 못했을 테고, 나 역시 가족보다는 친구들이 더 소중해지는 나이가 되었나 보다. 강소아, 전수미, 이혜정, 신현애, 박혜경. 이 아이들은 어떤 아줌마, 아니 어떤 할머니가 되어 어디에서 살고 있을까? 아니, 이 세상에 아직 살아 있기는 할까?


[마을신문] 아이들에게 50년 된 일기장이라고 실물을 보여주니 반응이 재미있다.

"어? 종이배가 오십 살 넘었어요? 나는 40댄 줄 알았는데?"('오우, 이런 반응 좋아.')

"와, 그거 박물관에 보내야 하는 것 아니에요?"('그렇지? 내 눈에도 박물관 보관감이다.')

"그거 왜 읽어주는데요?"('음, 반응 참 시크하군.')

"거기 앞장에 있는 교가 한 번 불러봐요."('부르라면 못 부를 줄? 나 교가도 기억하거든?')

'나에게도 너희 같은 시절이 있었단다. 오십 년 세월이 눈 깜짝할 만큼 빨리 흘러갔구나. 너희도 곧 나처럼 머리에 흰 눈 내려앉는 시간이 온단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너희도 일기 잘 써둬라.' 하는 말들을 나는 마음에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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