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남편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이의 글 Jun 17. 2023

연애 초기가 그리운 부부에게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뻣뻣한 몸으로 엉덩이를 씰룩 거린다. 두둑해진 지방이 물결을 친다. 밖에서는 차마 하기 어려운 희한한 몸짓과 표정으로 아내가 웃기를 기다린다. 관절에서 삐그덕 거리는 소리가 들리자, 참고 있던 웃음이 우리 사이에 터져 나오고 만다. 아내는 허탈하게 웃으며 말한다. 우리 장르가 어쩌다 코믹이 됐어? 한때는 로맨스였던 것 같은데, 어쩌다 우리는 진지함을 견디지 못하는 관계가 되었을까. 둘러대자면 이것은 해학이다. 비극을 덮기 위한 해학. 매일 현실에 치이며 너덜너덜해진 마음으로는 집안의 공기마저 건조해질 것만 같기 때문에 내린 처방이다.


현재 우리 부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일이다. 조금 더 나은 미래를 위해 더 많은 일을 하려고 한다. 문제는 둘 다 개인사업자인 탓에 워라밸이란 단어는 잊은 지 오래고, 일상의 우선순위는 철저히 효율을 기준으로 나열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빨래, 청소, 설거지, 쓰레기 버리기처럼 필수지만 사소해 보이는 일상의 일은 모두 후순위로 밀려났다. 집안일은 미루고 미루다가 견딜 수 없을 때가 되어서야 급한 일이라는 지위를 회복하고 간신히 처리되는 실정이다. 그러니 제한된 24시간을 영화 한 편 보러 가는 데 쓸 마음의 여유조차 가지기 어려웠다. 어느 날 우리는 사라진 여가의 심각성을 이야기하다가 당장 하던 일을 접고 집에서나마 영화를 한 편 보기로 했다. 넷플릭스를 뒤적이다 선택한 영화는 우디 앨런 감독의 "미드나잇 인 파리"였다.



 


*영화의 스포가 있습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는 길이라는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미국인인 길은 프랑스 파리에 설레는 마음으로 방문하는데, 그는 파리의 거리에서 과거 예술가의 숨결을 느끼는 낭만주의자이자, 꿈을 좇는 이상주의자였다. 파리의 밤거리를 걷던 길에게 특별한 시간이 주어진다. 피츠 스콧 제럴드, 어니스트 헤밍웨이, 제임스 조이스, T.S 엘리엇, 피카소, 달리와 같은 천재 예술가, 특히 영미 문학의 영웅들이 모여든 1920년대 프랑스 파리로 시간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길은 1920년대로 돌아가 헤밍웨이를 비롯한 여러 역사적 인물에게 자신의 소설을 보여주며 교류를 한다. 그러다 피카소의 연인 아드리아나를 만나서 사랑에 빠진다. (아드리아나는 가상 인물이다.) 두 사람은 1920년대에서 만나 교감을 나누다가 함께 시간 여행을 한다. 두 사람이 도착한 시대는 19세기말에서 20세기 초쯤의 파리였다. 로트렉, 드가, 고갱, 고흐, 모네, 르누아르가 활약한 벨 에포크 시대였다. 벨 에포크는 프랑스어로 "좋은 시대"라는 의미다. 경제적으로 풍요롭고, 문화와 예술이 번영했던 시대. 길과 아드리아나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보다 과거의 풍요로웠던 시대를 동경하는 인물이었다. 


(*감독은 미국인인 길이 동경하는 시대를 대공황 직전의 1920년대로, 프랑스인인 아드리아나가 동경하는 시대를 1차 세계 대전 직전인 1900년대로 설정한 듯하다. 각각 미국과 프랑스의 경제, 예술, 문화가 모두 풍요롭던 시절이다. )






우리 부부는 낭만이 있던 연애 초기를 가끔씩 그리워한다. 낭만은 비효율적일수록, 비합리적일수록, 시간의 미화 과정을 거칠수록 가치가 증폭되는 힘이 있다. 가진 건 젊음뿐인 풋풋한 20대 대학생이던 우리는 추운 겨울에 조금이라도 함께 있으려고, 공원에서 덜덜 떨며 서로 끌어안곤 했다. 짧은 시간 함께 있으려고 왕복 몇 시간을 왔다 갔다 하는 일도 주저하지 않던 추억도 있다. 기념일에 좋은 레스토랑을 가기 위해, 한 달간 점심으로 라면만 먹기도 했다. 지금보다 훨씬 날씬했던 몸이었지만, 배를 만지는 것이 너무도 부끄러웠던 시기이기도 했다. 비록 주머니 사정은 여의치 않았지만, 우리 사이의 감정은 가장 풍요로웠던 나날이었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에 그 시절을 그리워하고 때로는 동경하는 것일 테다. 길과 아드리아나가 과거를 동경하듯이.





영화는 벨 에포크 시대에 도착한 두 사람 사이에서 절정에 달한다. 아드리아나가 자신이 살던 1920년대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이다. 자신의 현재인 1920년대는 불완전하고 지루하다는 것. 그 말을 들은 길은 충격을 받는다. 자신이 동경하던 시대의 인물이 정작 그 시대에 불만족스러워하다니. 그제야 길에게는 뜨거운 낭만이 떠나가고 차가운 이성이 돌아왔다. 낭만주의자였던 그의 입에서 이 시대에 살 수 없는 냉정하고도 현실적인 이유가 튀어나온 것이다.



이 시대 사람들은 항생제도 없다고요.



현실적인 말을 뱉고서야 길은 깨닫는다. 현재는 항상 불완전하고 불안정하지만, 지나간 과거는 결론이 났기에 완전해 보이고 안정되어 보인다는 것을. 그리고 그는 과거를 떠나 현재로 돌아온다. 나의 현재가 가진 아름다움을 보는 눈을 가진 채로.






우리 부부의 현재는 미래에 대한 기대에 붙잡혀 항상 불완전하고 불안해 보였다. 그래서 이미 결론이 난 과거를 떠올리며, 좋은 시절을 그리워하곤 했던 것은 아닐까. 하지만 차가운 이성의 눈으로 살피면, 냉정한 현실이 보인다. 20대의 우리는 여느 커플과 마찬가지로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힘들어했으며, 열정적인 사랑은 일종의 도피와도 같았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러했다. 당당히 마주해야 할 현실을 외면하게끔 할 수 있게끔 도와준 것이 뜨거운 연애였다. 그럼에도 그때를 좋은 시절이었다고 동경하는 것은 현재를 너무 불안하게 보기 때문이었다.


우리의 지금을 불완전하고 불확실하다고 가치를 낮출 필요는 없다.


시간이 지나고 먼 미래에 지금을 돌아본다면, 엉덩이를 씰룩 거리며 아내를 웃기려는 남편의 모습이 평화롭게 그려질 테니까.  


매거진의 이전글 다시 사랑에 빠지는 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