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함을 만드는 것은 우리의 마음
카페에는 지코의 "아무노래"가 흘러나왔다. 우리는 콘센트가 있는 자리에 나란히 앉아 노트북을 펴고 하와이를 검색했다. 비행기와 호텔은 예약을 마친 상태였다. 이제 여행지에서 무엇을 할지 알아보는 시간. 우리는 서로가 찾은 여행 코스를 공유하며 신혼여행의 기대를 증폭시켰다.
십 년을 연애했지만 이번 신혼여행이 함께 떠나는 첫 해외여행이었다. 신혼여행 그리고 첫 해외여행. 두고두고 생각날 이 여행이 특별하길 바라서 그랬을까. 여행지 고를 때부터 우리는 생각이 많았다. 결국 결혼 준비로 엄청 피곤할 테니, 관광지보단 휴양지를 고르기로 했다. 발리와 몰디브 그리고 하와이가 물망에 올랐고, 쇼핑과 즐길거리를 고려해 하와이로 결정했다. 조금 무난한 선택이었나, 다른 여행지가 더 낫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이내 미련을 털어냈다. 하와이면 어떻고 제주도면 어떤가. 우리가 함께 떠나는 게 중요하지. 여행지야 아무렴 어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코로나가 터졌다. 결혼식을 코 앞에 둔 시점이었다. 그때는 코로나 시국이 얼마나 더 갈지 알 수 없어서 대부분의 예비부부가 결혼식을 취소하고 미루는 분위기였다. 우리 역시 봄에서 가을로 모든 것을 미루었다. 다만 한 가지. 신혼여행은 해외로 나갈 수가 없어서 여행지를 바꾸어야 했다.
바로 제주도였다.
우리의 신혼여행이 제주도가 되리라고는 상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그제야 신혼여행은 곧 해외여행이라는 등식이 머릿속에 박혀 있었다는 사실을, 그것이 고정관념이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대한민국에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진 해가 1989년이니) 우리 세대에게는 너무도 익숙하지만, 부모님만 해도 신혼여행은 당연히 국내가 아니었던가.
결국 제주도행 비행기에 몸과 짐을 실었다. 하와이와 다르게 아무것도 계획하지 않았다. 숙소도 임박해서 마지못해 결정하고 짐도 당일에 대강 챙겼는데, 필요한 건 편의점이나 이마트에 가서 사자는 심산이었다. 그래도 막상 제주도에 도착하니 머릿속이 환기가 되며 이 시간을 잘 즐기고 싶어졌다. 재밌게 보내자며 아내와 기분을 끌어올리려 노력하고 있을 때, 같은 시기에 제주도로 휴가를 잡은 고등학교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동선이 겹치면 부부끼리 만나자는 것이었다. 싫다고 했다. 이것은 신혼여행이다. 인마.
계획해 둔 것이 없으니 무엇을 할지가 고민이었다. 그때 아내가 말했다.
엄마 아빠가 제주도 신혼여행에서 사진 찍은 곳을 찾아볼까? 거기서 똑같은 구도로 사진 찍는 거야.
양가 부모님께 우리 생각을 전달하고, 휴대폰으로 몇 장의 사진을 받았다. 부모님의 제주도 신혼여행 사진이었다. 색이 바랜 필름 사진 속에서 어색한 포즈로 활짝 웃고 있는 엄마, 아빠는 지금의 우리보다 훨씬 앳된 얼굴이었다. 괜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이곳 제주도가 달리 보였다.
그때부터 신혼여행은 부모님과 같은 장소에서 같은 구도로 사진 찍기 미션으로 바뀌었다. 삼사십 년 전의 신혼여행 코스를 따라가듯 여러 곳을 찾아갔다. 여전히 그 자리에 있는 제주도 명소들. 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관광객의 배경이 되어 주었던 장소이기에 찾는 건 어렵지 않았다. 문제는 같은 구도로 찍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는 것. 자연 관광지는 그때와 비슷하지만, 주위 환경이 달라진 탓에 같은 구도로 찍는 일은 어렵거나 불가능해졌다. 여기는 맞는데 그 구도가 안 나온다고 해야 할까. 예를 들어, 우리 부모님은 천지연 폭포 앞까지 들어가 사진을 찍었는데, 그때는 펜스가 없어서 가능했지만 지금은 어림도 없다. 저 멀리 성산 일출봉이 보이는 바닷가 사진은 변해버린 주위 환경 때문인지 비슷한 듯 묘하게 다른 구도가 되었다. 그냥 같은 곳에서 사진을 찍었다는 것에 만족하고 말아야겠다며, 처음의 의욕은 점점 사그라졌다. 그렇게 포기할까 싶었을 때, 자동차 창밖으로 장모님과 장인어른의 사진 속 장소가 보였다.
광활하게 펼쳐진 밭에 억새가 하늘거리는 산굼부리였다.
도로변에 이정표처럼 서있는 거대한 돌에 새겨진 산굼부리라는 글자를 보고,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다. 여기가 산굼부리라고 알려주는 표식이었다. 장모님과 장인어른이 분명 저 돌 앞에서 사진을 찍었는데, 막상 눈앞에서 보니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입구일 뿐 기념사진을 찍을 만한 곳은 아니었다. 그 시절의 기념사진은 무슨 의미였길래, 두 분은 여기를 기념사진 장소로 고른 것이었을까.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찾았다.
우리는 지나가던 사람을 붙잡고, 사정을 설명했다. 부모님 사진을 보여드렸더니, 재밌다는 표정이었다. 그분은 사진에 진심인 한국인의 마음으로 똑같은 구도가 나올 때까지 여러 번 찍었다. 부탁한 우리가 황송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 만큼. 자기 일처럼 여긴 따뜻한 마음 덕분에 제주도 신혼여행에 한 장의 의미를 남길 수 있었다.
특별함은 우리의 마음에 나온다. 지금 이 순간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것인지 스스로 결정하다 보면, 그곳이 어디든 우리의 삶을 추억과 낭만으로 채워갈 수 있다. 재미로 시작한 사진 찍기가 이 시간과 이 장소를 특별하게 만들어 준 것처럼.
제주도를 떠나는 날, 우리는 사진을 보면서 앞으로의 결혼 생활도 신혼여행과 같기를 바랐다. 아무리 실망스러운 일을 겪더라도 오히려 잘 됐다는 마음으로, 우리가 스스로 의미를 만들어가며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랐다. 제주도에 도착했을 때와는 다른 마음으로 서울에 도착했다. 공항버스를 타고 집으로 오면서 우리는 말했다.
그래도 이건 신혼여행으로 칠 수 없어. 다시 갈 거야. 하와이.
(이건 제주도가 좋았던 거랑 별개의 문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