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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의 글 Jun 07. 2024

글쓰기 모임 운영해 보실래요?

인생의 문제을 마주하는 글쓰기

2018년 이제 막 탄생한 글쓰기 모임은 자칫 세상에 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길을 잃을 위기에 처했다. 그때 글쓰기 모임의 운영을 맡으면 어떻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당시 운영자는 개인 사정상 자리를 지속하기가 어렵게 되었고, 모임을 책임져줄 사람을 찾는 중이었다. 왜 하필 나였을까. 아마도 따끈따끈한 신생 글쓰기 모임에 누구보다 애정을 쏟고 있는 이가 나였기 때문이었을 테다. 그런데 흔쾌히 대답을 하지 못하고 잠깐 시간을 달라고 했다. 몇 가지 마음에 걸리는 부분이 있었는데, 모두 나의 성격과 능력의 문제였다.




무언가를 이끄는 역할이 나에게 어울리는가. 이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던 것. 사실 사람들 앞에 나서는 일의 어려움은 오랫동안 내 인생에서 해결되지 않는 과제였다. 문제는 수줍음이었다. 내성적인 성격, 부끄러움, 낯가림, 영어로는 shy. 여러 가지 표현이 있지만 내 상태를 설명하는 데에는 수줍음이 가장 적절할 듯하다. '수줍다'의 사전적 정의가 '숫기가 없어 다른 사람 앞에서 말이나 행동을 하는 것이 어렵거나 부끄럽다. 또는 그런 태도가 있다.'인 것을 고려하면, 내 성격을 설명하는데 이만한 단어도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수줍음이라니. 고객을 상대하는 개인사업자에겐 어울리지 않는 덕목이 아닌가. 엄밀히 말하면 어울리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격미달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자영업자가 되었고, 매장에서 고객을 직접 응대하는 일도 해야만 했다. 매일 무수한 낯선 사람을 응대할 때마다 수줍음이 강력하게 발현한 탓에 자연히 처음 일을 배워가는 과정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고객 응대만 빼면 모든 일이 재미있어서, 재고 관리, 상품 진열 등의 일만 하고 싶기도 했다. 넉살 있는 성격이 절실했던 초보 사업자의 시절을 보내다가, 결국 내가 택한 대책은 베테랑 판매자의 멘트를 외워서 적재적소에 쓰는 방법이었다. 학습한 표정을 짓고 학습한 말을 하기. 그렇게 넉살을 학습한 사회인이 되었다.


나에게 수줍음은 역사가 꽤 깊다. 대학생 시절에 피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발표 과제를 해야만 할 때, 심박수는 빨라지고 머릿속은 하얘지고 목소리는 떨리고 귀는 빨개지고 간단한 질문조차 제대로 듣지 못해서 되묻곤 했다.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경험은 겹겹이 쌓여 뚫을 수 없는 단단한 벽이 된 것만 같았다. 그렇게 내성적이라는 성격의 방에 고립된 것이다. 언제부터 이랬을까. 개구졌던 초등학생 때까지는 곧잘 나서곤 했는데, 사춘기를 거치면서 예민하고 섬세한 성격이 더 공고해진 듯했다. 특히 고등학생 때는 점점 거칠어지는 친구들 사이에서 조용히 몸을 사리고, 있는 듯 없는 듯 지내는 편이 되었다.


이토록 수줍음으로 점철된 10대와 20대 시절을 보낸 내가 고객을 응대해야 하는 자영업자가 되겠노라고 결심할 수 있었던 것은 글쓰기 덕분이었다.  



 

전문직 자격증 시험만 바라보다가 아무런 준비도 하지 못한 채 취업을 바라야 했던 시절이 있었다. 첫 취업하기 좋은 나이를 놓치고, 운전 면허증과 졸업 학위가 유일한 스펙인 백수가 된 것이다. 인생의 문제 앞에서 나는 글을 썼다. 논리와 구조를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의식의 흐름대로 쏟아내는, 그러니까 부유하는 활자 덩어리를 배설하듯 쏟아냈다. 글자로 어질러진 종이 위를 빨간펜으로 밑줄을 그으며 정리하던 어느 날, 두서없는 문장들 사이로 내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무언가가 보였다.


자격지심과 열등감.


수줍음은 사실 도망치고 싶은 본능적인 반응이었다.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느끼는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도대체 언제부터 자격지심으로 똘똘 뭉친 못난이가 되었는지 모르겠으나, 당시엔 세상 사람은 모두 나보다 잘난 것 같고, 나는 늘 모자란 것만 같은 기분에서 달아나고 싶었다. 학창 시절부터 대학 졸업 후까지. 학업과 입시 그리고 취업 등에서 반복되는 실패를 겪고 남들보다 늦게 사회에 진출하는 동안, 열등감을 학습하고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것이 닥치는 대로 뭐라도 하겠다는 결심을 하게 된 계기였다. 글쓰기로 나의 문제를 오롯이 마주하고 풀어가려고 하다 보니, 장사에 도달한 것이었다.




인생의 문제 앞에서 나는 글을 쓴다. 오랜 경험으로 얻은 나름의 노하우였다. 나뿐만이 아니라 글을 쓰는 많은 사람이 그러하리라고 믿는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또다시 글을 쓰며 당면한 문제를 마주했다. 그리하여 글쓰기 모임 운영은 또 하나의 도전 과제가 되리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영업을 하면서 미처 풀지 못했던 다수의 앞에 서는 일. 여전히 다수 앞에 서면 수줍음으로 드러나는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더 극복해 보겠다고 다짐했다. 나의 부족한 글 솜씨와 말 주변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사람들과 함께 글 쓰는 삶을 만들어 가보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글 쓰는 사람들 앞이라면 수줍을 필요도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글쓰기 모임의 운영을 맡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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