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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이의 글 Jun 07. 2024

글쓰기 모임을 왜 운영하시나요?

앞으로 나아가는 힘은 본질에 있다.

글쓰기 모임을 2018년에 처음 꾸렸으니, 제법 끈질기게 해온 일이 되었다. 오랜 기간 동안 모임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주기적으로 받는 질문이 있기 마련인데, 가장 자주 받는 물음은 "이걸 왜 하세요?"이다. 이 말의 뉘앙스를 조금 더 살려보면, "이걸 왜 이렇게까지 하세요?"가 된다. 


운영자 입장에서 이 질문은 감사하고 반가울 따름이다. 대체로 이곳을 좋아해서 열정적으로 참여하는 사람들이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건네기 때문이다. 대부분 일단 참가비 삼천 원에서 물음표가 생기는 듯한데, 참가 인원을 대충 계산해 봐도 수익활동이라 할 수는 없는 것 같고, (삼천 원은 운영과 유지를 위한 최소 금액이다.) 규모가 작지 않은 모임이라 들어가는 품은 상당 해 보이기에 궁금한 것이다. 이 사람은 도대체 무엇을 위해 개인적인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글쓰기 모임을 운영하고 있는가, 하고 말이다.


늘 적당히 뭉뚱그린 대답으로 넘어가던 이 질문을 정말 진지하게 고민한 날이 있었다. 모임을 처음 꾸렸던 해부터 함께 해온 오랜 멤버가 느닷없이 물은 것이다. 왜 이 모임을 하고 있느냐고. 아니. 누나가 그걸 물으면 어떡해요.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다. 오래 보아온 덕에 호칭조차 누나라 부르던 사람이었으니, 새삼스러운 그 질문이 놀라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날 생각이 깊어졌다. 대답이 명료하게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왜 글쓰기 모임을 이렇게까지 힘을 들여 이어가고 있는가. 


 


삼십 대 초반에 오랫동안 준비하던 자격증 시험을 포기하고 뒤늦게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어영부영하다가 때를 놓쳤다는 마음이 삶을 무척 조급하게 만들었던 시절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취업 대신 개인사업자가 되었고, 늦은 출발을 벌충하고자 쉬는 날도 없이 오로지 일과 돈만 생각하며 몇 년을 살았다. 내가 잘 살고 있는지는 오직 오늘 하루의 매출로 평가했던 시절이었다. 그러다 문득  삶에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구멍이 있다는 느낌을 받았고지금껏 살아온 삶의 방식을 스스로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즈음 시작한 독서 모임에서 마음 맞는 몇 사람과 순전히 재미로 글쓰기 모임을 꾸렸다. 그리고 정신을 차려보니 내가 모임장을 맡고 있었다. 정말 어쩌다 보니 모임을 책임지게 되었는데, 사실 그때 막연하게나마 느꼈다글쓰기 모임을 운영하는 일이  삶의 공허를 잊게 해 줄 것이라고. 






시작은 순도 백 프로 재미였다. 삶의 공허를 지우기에 순수한 재미만큼 좋은 것도 없지 않은가게다가 많은 사람이 좋아해 주니 재미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오프라인 지역 모임으로 시작한 글쓰기모임은 의외로 시작하자마자 흥했는데, 일주일에 네댓 번을 진행해도 신청자를 모두 수용하기 어려웠다. 분위기가 과열되니 운영자 입장에선 뒷말이 나올까 걱정되었고, 운영에 공정성이 필요해졌다. 회칙이 생기고, 공지는 정확히 매주 일요일 저녁 여섯 시에 올렸다. 여섯 시 일 분이 되기 전에 다음 주 모임이 다 마감되었기 때문에 정확히 여섯 시에 올려야 했다. 회원들 사이에는 자발적으로 대기표가 생겼다. 한 명이 취소하면 대기자에게 넘기기 문화가 생긴 것이다.


그 후로 재밌는 일이 많았다. 자신의 글이 대화의 주제가 되니 사람들은 급격히 가까워졌고, 모임의 미혼 남녀들은 알게 모르게 커플이 되었다. 자연히 이곳에서 만나 결혼도 하고 아이들도 생겼다. 송년회를 하고자 공지를 올렸을 때, 인원을 제한하지 않았더니 육십 명이 몰리기도 했다. 결국 종로에 있는 작은 호텔의 조식 먹는 공간을 빌려서 행사를 치렀다. 많은 추억이 쌓이고 인연이 맺어지니 함께 했던 누구라도 이 모임에 애정이 생길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2019년 글쓰기 모임 송년회



하지만 모든 드라마에 위기가 있듯글쓰기 모임에도 위기가 찾아왔다

코로나가 터진 것이다팬데믹은 사람들을 떨어뜨려 놓았고, 오프라인 모임이었던 우리도 긴 휴식기에 들어갔다. 예상보다 훨씬 길어지는 팬데믹에 글쓰기 모임의 분위기는 차갑게 식었다. 사람 만나는 "재미"를 동력으로 시작한 모임이 서로 만날 수 없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 와중에 온라인에서라도 글을 쓰자고 나 홀로 허공에 외치는 날이 오랫동안 흘렀다. 언제부턴가 나만 놓으면 다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이상 재미만으로 모임을 이어갈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때 모임을 유지한 마음은 "책임감"이었다많은 사람의 추억이 담겼고, 어느 가족에게는 역사의 시작이기도 한 이곳이 일종의 공공재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를 일단 버티자는 각오로 여러 방식의 온라인 모임을 기획했는데, 처음에는 너무 반응이 없어서 인원 미달로 취소되는 일정이 허다했다. 나중에 원인을 깨달았다. 오프라인과 온라인은 문법이 다르다는 사실을. 실제로 만나서 글을 쓰던 방식을 인터넷 세상에 고스란히 옮겨 놓으려고 했으니, 반응이 없었던 것이 당연했다.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온라인 글쓰기 모임 진행 방식을 다듬어 갔다. 그렇게 팬데믹의 끝이 보일 때쯤이 되자, 온라인 글쓰기 모임의 기초가 닦여 있었다. 

팬데믹의 터널을 통과했을 때, 많은 이가 돌아왔고 새로운 사람이 모여들였다. 이제 다시 재미있게 그리고 책임감 있게 모임을 운영하면 될 것 같았는데, 예상치 못한 문제가 생겼다.  이상 모임 운영이 재미있지도 않고 책임감은 너무 버겁고 무의미해 보였다무엇보다  이상 글쓰기 모임 운영이  삶의  구석이 공허하다는 감각을 잊게 해주지 못했다.






본질이 중요해지는 순간이 있다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을 땐 근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글쓰기가 나에게 무엇인지, 사람들과 함께 글을 써야 하는 이유는 또 무엇인지,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답을 찾고자 했다. 그 결과로 얻은 답은 단순했다. (원래 본질은 단순한 법이니까.)


글쓰기는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야 한다는 것. 

오랫동안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는 것. 


본질이 보이니 앞으로 무엇을 추구해야 할지도 선명해졌다. 


글쓰기를 삶의 양식으로 삼으며 살아야겠다. 그리고 함께 할 사람이 있다면 함께 가자는 마음으로 모임을 운영하자.


이렇게 생각하고 모임을 다시 세팅하기 시작하니, 그전과는 다른 마음가짐이 되었다. 더 이상 온라인이든 오프라인이든, 카톡이든 화상이든 형식은 중요하지 않았다. 글쓰기를 삶의 양식으로 삼는 데 필요하면 쓰고, 불필요하면 안 쓰면 그만이었다. 이 마음으로 지금까지 모임을 운영 중이다.  


여전히 글쓰기모임을 운영하는 동력은 "글쓰기를 내 삶의 양식으로 삼겠다."는 마음이다. 그리고 같이 성장해갈 사람들을 모으고 있다. 함께 해주면 감사하고, 없으면 아쉽지만 홀로 묵묵히 계속 나아갈 생각이다. 내가 무엇이 되리라는 기대는 없다. 기대는 롱런하는 데 방해물이다. 글은 그냥 나를 위해 써야 하니까 쓰는 것뿐이다.


사람 사귀는 재미로 할 때보다, 책임감으로 근근이 이어온 때보다, 지금이 좋다. 오랫동안, 아니 죽을 때까지 이어갈 수 있을 동력을 찾은 것 같기 때문이다. 


해야만 한다는 당위가 납득이  공허는 잊힌다. 나는 글쓰기를 내 삶의 양식으로 만들기 위해, 그리고 그 길을 같이 갈 사람들을 위한 자리를 위해, 글쓰기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더 이상 생의 공허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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