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스에서 춤추기
그때 나는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내 몸놀림이 형편없다는 것을. 우리 반 아이들의 시선은 모두 내가 아닌 가람이를 향하고 있다는 것을.
가람이는 우리 반, 아니 우리 학교에서 가장 춤을 잘 추는 아이였다. 키는 작았지만 얼굴도 예뻤고 끼도 많았다. 가람이의 힘이 있으면서도 경쾌한 춤은 누가 봐도 ‘와’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그 옆에서 키 큰 전봇대처럼 쭈뼛쭈뼛 움직이던 어설픈 내 춤은 얼마나 비교가 되었을까.
13살 철부지 아이에게 그런 건 하나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음악을 좋아했고 음악에 맞춰 춤추는 걸 좋아했을 뿐이다. 혼자 집에 있을 때도, 친구 집에 놀러 가서도 틈만 나면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췄다. 수학여행지로 향하는 관광버스에서도 '춤추고 싶은 사람 나와’라는 선생님의 말씀에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복도에 섰다. 굿은 길을 가면서 버스는 이따금 흔들리곤 했지만 나는 그 누구의 시선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열 살 첫째 딸과 지하철을 타려고 역내에서 기다리고 있던 날이었다. 전 역을 출발했다는 전광판을 보고 ‘이제 오겠다’라며 탈 준비를 하라고 말을 하는데 딸 아이는 고새를 못 참고 혼자 리듬을 타며 격한 춤을 추고 있었다.
“야 너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거야. 사람들 다 쳐다보잖아.”
엄마가 옆에서 혼내든, 사람들이 쳐다보거나 말거나 혼자 신나서 춤을 추는 아이가 어이가 없었다.
“얘가 진짜 잠시도 가만히 못 있네!”
라며 잔뜩 핀잔을 주면서도 나는 입꼬리가 올라간 채 아이의 춤추는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고 있었다. 거리가 멀어 손주를 자주 못 보는 어머님을 위해 아이들의 사진이며 영상을 종종 보내드리는데 이걸 보시더니 어머님이 물으셨다.
“얘는 누굴 닮아서 이러노? 애비는 안그랬는데......애미 닮았나?”
“저요? 아니요, 전 아니에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답을 했다. 마치 ‘전 그렇게 철딱서니 없지 않았어요. 전 점잖은 사람이에요. 전 예의 있는 사람이에요. 전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 아니에요.’라고 선을 긋듯이.
정말 그럴까. 그렇다면 나는 왜 지하철역에서 춤추던 아이의 영상을 보고 또 보며 미소 지었던 걸까. 여기저기 보여주며 ‘얘가 끼도 있고 소질도 있는 것 같은데 아무래도 공부보다는 이쪽인 것 같지?’라고 물으며 내심 흐뭇해하고 있던 걸까.
상사와 싸우면서까지 반대 의견을 내는 후배를 보며,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하다가 '방금 그 서비스는 너무 불쾌했다'고 바로 말하는 친구를 보며, 빨강 바지를 입고 빨강 운동화를 신은 채 아무렇지도 않게 다니는 남편을 보며 왜 부럽다고 생각했을까.
매일 아침 출근길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손잡이를 꼭 잡고 서 있을 때면 버스 복도에 서서 이리저리 흔들리며 즐거워했던 그 꼬마가 떠오른다. 옆에 누가 있건 쫄지 않고 당당하던, 누구의 시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신나게 즐기던 그 녀석이.
그 꼬마처럼 나도 다시 리듬을 탈 수 있을까. 내 마음이 움직이는 방향으로 나만의 박자와 속도를 따라가도 괜찮을까. 그럼 모두가 흔들린다고 믿는 구간에서도 나는 걱정 없이 춤을 출 수 있을 텐데. 흔들리고 있을 때가 가장 신나는 때라는 걸, 실은 가장 최선을 다하는 중이라는 걸 알 수 있을 텐데.
꽉 붙잡고 있던 손잡이에서 슬그머니 힘을 빼본다. 넘어지면 어때. 내리면 되지. 이 버스는 구간이 짧아서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