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해방의 날
아침은 꼭 먹는 게 습관이 된 아이들은 눈뜨자마자 ‘엄마 배고파’를 외친다. 아침부터 주방에서 복작거리다가 아이들 먹이고, 입히고, 챙기고 둘째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출근하는 나는 아침 1분 1초가 황금시간이다. 아이 머리를 양갈래로 묶어주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핑크빛공주로 변신시켜주면 비로소 아침 준비가 끝난다. 혹시라도 오늘 고른 옷이 마음에 안든다고 떼를 쓰기라도 하면 그날은 회사까지 전력 질주를 해야 하는 날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내 치장 시간은 사치다. 아침 먹는 시간을 제외하면 세수, 양치하고 옷 둘러 입고 로션과 선크림만 바르면 10분컷이다. 비비 크림은 거울도 안 보고 걸어가면서 바르는 신공을 발휘한다. 피부 모공이 넓어지고 귀밑 염증이 생기는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내게 마스크는 구세주였다. 제대로 화장을 못 해도 마스크를 쓰면 민낯이 부끄럽지 않았다. 중요한 날에는 얼굴이 예뻐 보이는 일명 김태희 마스크를 쓰면 오히려 자신감이 생겼다.
언제쯤 벗을 수 있을까 막연하게 고대하던 날들이 지나고 이제 완전한 마스크 해방의 날이 다가왔다. 이 얼마나 염원했던 날인가! 그런데 실내 마스크 의무도 해제되었건만 나는 쉽사리 마스크를 벗지 못했다. 마스크를 벗는다는 건 더는 숨길 수 없음을 의미했다.
눈썹만 선명하게 그리면 완벽했던 나의 쌩얼도, 주변 사람들이 전혀 눈치채지 못하게 입으로 욕하거나 실룩거리며 웃거나 하던 내 표정도, 모자를 푹 눌러쓰면 아무도 못 알아볼 것 같은 내 모습도. 누가 누군지 알아보기 어려워서, 숨쉬기 힘들어서 불편했던 마스크였는데 막상 이걸 벗으니 나를 더 가다듬어야 하고 주변을 신경 써야 하는 불편함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이런 마음은 나만 가지고 있었던 게 아니었나 보다. 출근해서 시종일관 마스크를 벗고 일하던 직원들은 회의 시간이면 하나둘 마스크를 쓰고 나타났다. 회의실로 들어오는 직원들을 보고 있으면 꼭 황금가면을 쓰고 있는 것 같았다. 불편한 상대와도 마주 앉아 자기 의견을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상사의 의견에 맞서 반대의견을 피력하는, 누구나 하고 싶지만 망설였던 이야기를 떨리는 목소리로 꺼내는 동료들의 용기는 황금가면 덕분에 가감 없이 발휘되었다. 덕분에 그동안 소극적이고 예민하다고만 생각했던 사람들의 숨은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마스크를 쓴다는 건 나를 숨길 때만 필요했던 게 아니었다. 진짜 나를 드러내기 위해서도 필요한 거였다.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나를 숨기는 사람들이 더 많다. 나보다 상대방을 먼저 배려하는 마음 때문에, 한번 상처받고 힘들었던 기억이 있어서 또는 한 번도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전화 한 통 걸 때도 사전 연습하고 심호흡을 하는 나 같은 사람들에게 마스크는 오히려 나를 드러내는 연습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황금가면인셈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마스크를 쓸 수는 없는 노릇. 연습을 충분히 했다면 이제 실전이다. 마스크를 벗고 나의 쌩얼도, 내 표정도, 내 생각도 당당하게 드러내는 실전으로 한걸음 내디뎌 봐야할 때. 더 크게 숨쉬고 내 호흡을 있는 그대로 느껴보기 시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