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치료사 11년 차, 나는 왜 로스쿨을 준비하는가?

by 글봉이

내 나이 서른 하고도 아홉.

다른 사람들은 마흔을 준비할 때, 나는 지금 조금 늦어 보이는 공부를 시작했다.




사람의 몸을 치료하던 사람이 이제 말과 개념, 그리고 글을 공부한다.

이 모든 걸 처음부터 설명하려는 이유는, 내가 어디서 어떻게 이런 시작을 하게 되었는지 남기고 싶어서다.


서른아홉. 하지만 언제나 “만으로 서른일곱이니까 아직 마흔까진 3년 남았다”며 나를 위로하는 나이.

나는 9년째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11년 차 물리치료사이다.


처음부터 큰 사명감을 가지고 이 직업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어머니가 어느 스님에게 들었다는, “이 아이는 남을 돕는 직업을 가져야 잘 풀린다”라는 말이 영향을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 내 꿈은 방송국 PD였다. 여느 부모님들처럼 어머니는 내가 법대나 의대에 가길 바라셨다.

변호사와 의사는 모두 남을 돕는 직업이었고, 인정받는 직업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는 내 꿈을 버리지 못하고 도전하고 실패하며 방황하는 시절을 보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나는 결국 물리치료사가 되었다.

결국 남을 돕는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게 된 것이다.


이 분야에 들어왔을 때만 해도 석사, 박사를 거쳐 교수가 되어 누군가를 가르치겠다는 새로운 꿈을 꾸었다.

그렇게 나름의 새로운 꿈을 향해 공부도 하고 일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아이도 생겼다.


급여가 많지는 않아도 워라밸과 정년이 보장된 직장,

아직 은행 지분이 좀 많아도 가족이 함께 살 집,

그리고 할부 없는 승용차 한 대.

큰 고민 없이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조건들이 조금씩 갖춰졌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어떤 질문이 계속 나를 따라다녔다.

“이 일을 정말 계속할 수 있을까?”

“나는 지금 내가 원하는 길로 가고 있는 걸까?”


회사를 다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에 사직서를 품고 산다고 하듯, 그저 권태기나 변덕 정도로 치부하며 수년을 흘려보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사람의 몸을 고쳐주던 내 몸이 조금씩 고장 나기 시작했다.

몸이 아파오자 이전에 막연하게 품었던 고민들이 현실로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조금씩 ‘다른 가능성’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지금까지의 삶과는 전혀 다른 길,

로스쿨 입학에 필요한 법학적성시험(LEET)을 공부하고 있다.


가끔, 아니 자주 이런 생각이 든다.

‘이 선택이 너무 늦은 건 아닐까?’

수백 번도 넘게 고민해 봤고,

‘조금만 더 일찍 시작했더라면…’ 하는 후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내가 원하는 삶을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 뭐라도 하는 것임을 알고 믿는다.


이 글은 그런 삶의 전환점에서 쓰는 첫 번째 기록이다.

앞으로 나는 글을 통해 공부하며 마주하는 감정, 흔들림과 회복의 과정,

그리고 일상의 작은 리듬들을 나눌 예정이다.


서른아홉의 새로운 시작, 천천히 써 내려가 본다.



‘서른아홉, 다시금 써보기로 한 사람. 글봉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