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리만자로의 표범"
저는 글쓰기 이전과 글쓰기 이후가 많이 달라졌습니다.
마치 '아내의 유혹'에서 장서희 님이 얼굴에 점찍고 복수를 시작했던 것처럼 저도 그 변화의 순간에 와있습니다.
감정이입을 위해 지금부터 점찍고 글을 쓰겠습니다.
올해 초부터 글쓰기를 시작한 뒤 생긴 긍정적인 삶의 변화들이 많습니다.
글쓰기 이전에는 퇴근 후에 소파에 누워서 하염없이 유튜브를 보고 있거나 지인들과 회식을 하는 날이 많았습니다.
지금은 그 시간에 독서를 하고 글을 쓰려고 노력을 합니다.
아직은 소박하지만 이전의 저와 비교하면 많은 성장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글쓰기 때문에 부작용도 생겼습니다.
이웃들 덕분에 세상이 따듯해 보인다.
글쓰기 세상에는 참 다정한 이웃들이 많습니다.
독서와 글쓰기로 마음 챙김을 해서 그런지 오고 가는 대화가 훈훈합니다.
실제로 이웃들의 글에서 감동을 받고 공감을 해서 더욱 친밀감이 생깁니다.
상대적으로 본업 모멘트는 더 삭막해졌다.
밤에는 글쓰기 세상에 있다가 아침에 눈을 떠 회사를 가면 다시 현실이 찾아옵니다.
오고 가는 대화는 한 여름 가뭄처럼 건조하다 못해 쩍쩍 갈라집니다.
옆자리 동료는 어제 친했던 것 같은데 오늘은 모르는 아저씨가 사납게 인상쓰고 앉아있습니다.
회사에서는 눈이 반쯤 풀려있다.
컴퓨터에 펼쳐진 업무 자료는 지렁이로 변신하여 읽히지가 않습니다.
이웃들의 새 글 소식에 휴대폰 알람이 울어대서 눈은 자꾸 가자미눈이 됩니다.
독서하고 글 쓰다가 늦게 잤더니 오후에는 눈꺼풀이 천근만근입니다.
회식 시간에 시계만 보고 있다.
빨리 집에 가서 밀린 독서를 하고 글을 써야 되는데, 회식자리는 끝나지가 않습니다.
숯불 위에 올려진 소갈빗살도, 제주 오겹살도 제 마음처럼 타기 시작합니다.
관심도 없는 스몰토크는 한 귀로 흘러들어 한 귀로 빠져나갑니다.
글감을 찾아 여기저기를 두리번 거린다.
동네 이장님처럼 여기 기웃 저기 기웃합니다.
주변에 핀 꽃들도 계절이 바뀌는 풍경에도 관심을 키워봅니다.
큰 문제가 아니라면 글감이 되는 사소한 실수쯤은 호탕하게 웃어넘기게 되었습니다.
글감을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 적이 있는가?
조회수 높은 글감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고 표범이고 싶다.
산정 높이 올라가 굶어서 영감을 발견하는
눈 덮인 킬리만자로의 글감 많은 표범이고 싶다.
- 킬리만자로의 표범(각색), 조용필 -
'글쓰기의 치명적인 부작용'이라고 했지만 낚시성 제목입니다.
사실은 블로그를 하면서 성장했고 삶이 변화되었습니다.
나의 습관이 변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확대되고, 삶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이전이 흑백 TV였다면 이후는 칼라 TV가 되었습니다.
이전이 한여름 장마였다면 이후는 가을 단풍 같습니다.
이전이 고3이었다면 이후는 대학 신입생이 되었습니다.
글쓰기를 통해 때로는 힘들고 때로는 고독하지만 삶이 풍부해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즐거운 글쓰기 생활하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