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4) 엄마의 발이 빠진 날, 나의 마음도 덜컥했다

여행 최대의 위기

by 글꽃J

아침 식사는 샐러드와 과일, 그리고 약간의 소고기 구이.

집에서 가져온 어린잎, 복숭아, 참외, 가지포도, 그리고 밭에서 따온 상추, 토마토를 담는다.

샐러드에 곁들일 소고기 몇 점을 달궈진 프라이팬에 구워낸다.

엄마의 샐러드 접시에는 고기와 치즈를 올리고,

나는 치즈만 뺀 버전,

딸은 과일 + 소고기 버전이다.

맛있었는지, 아이는 내일도 같은 메뉴를 달라고 조른다.

귀여운 녀석.


오늘은 바깥 구경을 해볼까 구상해 본다.

집에만 있으니 엄마가 조금 심심해하시는 것 같아서.

차로 30분 거리에 유명한 폭포가 있어 가볼까 했는데,

엄마가 “물 떨어지는 게 뭐 볼 게 있냐”며 시큰둥하셔서 실행을 망설인다.

결국 아침을 먹고 가볍게 동네 한 바퀴를 걷기로 한다.


| 동네 산책

여기 온 지 4일 만의 외출이다.

비가 그쳐 처음으로 맑아진 날.

소나기가 올지 몰라, 우산 겸 양산을 챙겨 집 밖으로 나온다.

왼쪽은 밭, 오른쪽은 논.

시골길답지 않게 아스팔트가 깔린 1차선 길이 길게 뻗어 있다.

산비탈을 깎아 만든 밭 옆으로 작은 수로가 졸졸 흐르고,

아이는 물에 우산을 담가 작은 분수를 만들며 멈추어 놀다 다시 걷는다.

멀리 농사짓는 사람이 보인다.

이곳에 와 처음 보는 사람이다.

한적함을 온몸으로 느끼며 걷다 보니

길가에 노란 호박이 제멋대로 터를 잡고 넝쿨을 뻗고 있다.

아직 11시도 안 됐는데

아스팔트의 열기 때문인지 이마에 땀이 맺힌다.

저 위쪽에 축사처럼 보이는 천막이 몇 개 보인다.

축사에서 풍겨오는 냄새에 인상을 찌푸린 엄마.

"이제 돌아가자."

엄마의 한마디에 방향을 돌린다.


| 낮잠, 그리고 사고

점심을 준비하고 먹고 나니 졸음이 몰려온다.

딸은 놀아달라고 보채지만

눈꺼풀이 무겁게 내려앉는다.

잠시 나갔던 아이는

수영장에 들어가려는데 벌레가 많다며 잡아달라고 다시 돌아온다.

"벌레 많으면 할머니한테 잡아달라고 해."

수면제를 먹으면 이런 기분일까 싶을 정도로,

몽롱한 기운에 나도 모르게 깊은 잠에 빠져든다.

그 말이 어떤 일을 부를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채.


얼마나 잤을까.

문 열리는 소리가 나길래

아이가 놀래키려 오는 줄 알고 눈을 조금 더 감고 있었는데

쿵쿵 소리를 내며 뛰어온다.

"엄마! 할머니가 많이 다치셨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다.

몸이 용수철처럼 튀어 일어난다.

"어디 다치셨어?!!!"

문을 열고 뛰어나가니

엄마가 수영장 한쪽에서

다리를 절뚝이며 걸어오고 계셨다.

종아리 위쪽에

위에서 아래로 여러 개의 선이 깊게 쓸려 있다.

피가 날 듯 말 듯 아슬아슬한 상처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철렁, 머리가 쭈뼛 섰다.


| 병원 문제로 한바탕

급하게 병원을 찾아보지만

가까운 곳이 없다.

정형외과는 차로 25분 거리.

빨리 병원에 가보자고 했지만,

엄마는 "괜찮다"며 고개를 세차게 저으신다.

병원은 필요 없다고 하신다.


몇 번의 실랑이 끝에 화가 내 입에서는

"그럴 거면 집에 가자!"

말이 툭 튀어나와 버린다.

엄마는 "그래, 집에 가자!"며 오히려 반색하신다.

나는 더 당황스럽고 마음이 복잡해진다.

엄마는 이 여행이 불편하신 걸까?


병원은 포기하고 근처 약국을 검색한다.

그 와중에도 아이는

"내가 벌레 잡아달라고 해서…"

계속 울고,

엄마는 약국도 가지 않겠다며 버티신다.

하지만 엄마의 면역력이 떨어진 걸 잘 아는 나였기에

절대 엄마를 그냥 둘 수 없다.

결국 모두를 태우고

근처 약국으로 향한다.


| 약국, 그리고 엄마의 마음

약국에서 상처를 보여드리자

약사는 먹는 약봉지와 연고, 메디폼을 챙겨준다.

엄마는 약이 너무 많다며 손사래를 치고

"이미 먹는 약이 많아, 아무 약이나 못 먹는다"며 걱정하신다.

할 수 없이 약은 구입하지 못하고, 연고와 메디폼만 사서 돌아온다.

숙소에 와서

엄마의 상처에 연고를 바르고

두꺼운 메디폼을 붙여드린다.

바닥에 닿으면 아플까 봐

최대한 조심조심한다.

딸아이는 자기 때문에 할머니가 다쳤다며

내내 울다가 결국 긴장이 풀렸는지 늦은 오후의 낮잠에 빠져든다.


| 밤, 그리고 마음속 질문

저녁을 늦게 먹고

셋이 윷놀이를 한다.

웃긴 장면도 있었지만

마음 한구석이 여전히 무겁다.

엄마는 피곤하셨는지

저녁이 되자 일찍 주무시겠다고 한다.


방에 건너오니 오늘 하루가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엄마는 얼마나 놀라셨을까.

딸은 얼마나 죄책감을 느꼈을까.

나는 왜 낮에 그렇게 잠이 몰려와서,

벌레 잡아달라는 아이를 할머니에게 보냈을까.


이 여행,

계속해도 괜찮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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