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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릭 Nov 02. 2019

[미드] 그 땅에는 신이 없다.

Godless 2017. Netflix 

주의! 약간의 스포있음.



1. 간만에 몰입한 드라마 [그 땅에 신이 없다 Godless]. 훌륭한 짜임새와 안정감 있는 전개, 등장인물들에 대한 묘사와 설정은 보는 내내 감탄하게 했다. 다소 아쉬운 건 마지막 화. 심도 깊었던 장면들이 갑자기 허술해져 버리면서 기복 없이 쭉 이어지던 만듦새가 무너진 느낌이다. 장거리 달리기에 비유하자면, 달리는 동안 세심하게 호흡을 가다듬으며 동작 하나하나에 집중하다가 결승라인 앞에서 삐끗한 모양새랄까, 마치 목적지를 보고 그만 긴장이 풀려서 방심해버린 것 같은 기분이다. 최고조에 이르러 그동안 쌓아 올린 감정에만 치우친 듯한 연출이다. 그렇다고 망쳐버렸다고 말할 건 아니고 전체적으로 뛰어난 완성도에 비해 상대적으로 그런 정도다. 훌륭한 마무리였다면 아마 넷플릭스 최고의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베터 콜 사울 Better Call Saul]의 자리를 대신했을지도 모르겠다.


2. 여기에도 민폐 기자가 등장한다. 한국의 기자들과 마찬가지로 기사를 쓸 때에도 날조와 왜곡은 기본인데, 호기롭게 무법자 두목인 '프랭크'에 관한 기사를 썼지만 위협을 받자 금방 협조해버린다. 그 덕분에 그를 소탕하려던 연방보안관은 함정에 걸려 살해당한다. 무엇보다도 이 기자는 마을에 '로이'가 있다는 기사를 쓰는 바람에 주민 전체를 몰살당할 위기에 빠트린다. 뻔히 알면서도 기사를 낸 것이다. 그리고는 무모하게도 자신이 불러온 재앙을 기사화하기 위해 현장을 지켜보려고 다시 마을로 찾아온다. 어쩌면 글과 그 영향력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어리석은 글쟁이에 대한 혐오감은 시대와 국가를 초월해 가지게 되는 보편성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한편으로 이런 점은 인간이 언어를 지니게 되면서 지니게 된 오만한 본성일 수도 있다. 자신의 생각, 일단 개념으로 규정해버리면 인간은 반성에 게으르다. 그리곤 그 규정으로 모든 존재를 재단하고 강요한다. 스스로를 회의하지 않는 인간은 동물과 다를 바 없다.


3. 꽤 오래전부터 유행이기도 한 페미니즘적 요소도 담겨있다. 이는 탄광사고로 대부분의 남자가 사망해버린 마을을 배경으로 하고 있어서 남성을 대신해 여성들이 주도적으로 마을을 운영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나타나는 내용들이다. 배경 설정으로부터 억지스럽지 않게 여성의 주체성이 묘사되고 있다. 좋은 점은 [캡틴마블]류의 판타지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 종류의 통쾌함을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시각은 여성성이 아니라 남성성을 숭배한다는 점에서 또 다른 가부장적 태도다. 말하자면 페미니즘이라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남성성을 동경하는 지극히 남성적인 여성의 욕망인 것이다. 우리의 관점은 생물학적인 여성과 남성이 아니라 한 개인이 지닌 왜곡 되거나 잘못된 남성성, 혹은 여성성이어야 한다. 난 조화로움, 불편부당함, 현명함, 자상함, 배려 같은 여성성이야 말로 모두가 지향해야 할 가치이고, 이런 것들은 문명화된 시대에 더욱 필요하다고 믿는다. 모든 가치는 상황에 달려있다. 서부개척시대와 같은 야만사회에 남성적 강인함이 쓸모가 있었다면 현대문명사회엔 여성적 유연함이 훨씬 쓸모가 있어 보이는 것뿐이다.


4. 단편의 영화가 아닌 장편의 드라마가 보여줄 수 있는 장점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전체적인 이야기 구조는 아주 단순한 대신, 등장인물들이 묘사되는 섬세한 장면들은 감정의 깊이와 여운을 충분히 전달해 준다. 그중에서도 특히, '로이'가 말을 길들이는 과정을 통해 '앨리스'의 아들 '트러키'를 다루는 장면은 많은 것을 느끼게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 각각의 역할, 지식이 전달되는 과정, 능숙함에 이르는 방식, 엄격함과 격려의 쓰임, 어른과 아이의 경계. 이런 장면을 보면 까마득한 세월 동안 인간의 남성과 여성이 어떻게 힘을 모아 자식을 키우고 자신의 유산들을 물려주었는지를 느끼게 한다. 가끔 여성과 남성을 나눠 분란을 부추기려는 태도를 많이 보게 되지만, 현재 살고 있는 인류는 대부분 그 수많았던 여성과 남성들 중에서 서로 잘 협력했던 사람들의 자손들이다. 지난 역사가 그랬듯이 미래도 결국 잘 협력하는 남녀의 자손이 차지할 것이다.


5. 제목에 담겼듯이 아직 질서가 정착되기 전의 비참했던 미국 개척시대의 정서를 담고 있다. 원주민과 이주민, 정착민과 무법자, 정교와 이교, 시민과 기업, 문명이 아직 삶을 테두리를 제대로 정해두지 않은 시대에 소시민의 삶은 이런 반목들 속에서 언제든 비참함에 휘말릴 수 있다. 이런 모습들은 인간이 왜 그토록 종교에 사로잡혔는지를 잘 보여준다. 인간을 사랑하지만 범죄와 욕망, 가난과 질병도 만든 황당하기 짝이 없는 신이라도 믿을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 그런 부조리조차도 다 그 절대자의 숨은 뜻이라는 식의 주석으로 꾸밀 수밖에 없는 인간의 불안함. 두려움과 불확실성은 인간의 행동을 작동시키는 원리이지만 동시에 인간의 취약점이기도 하다. 고단했던 삶 속에서 인간은 불안정한 주인이 되기보다는 안정된 노예이길 바란다. 그렇게 인간은 스스로 만든 신에게 자신을 의탁해온 것이다. 이 점은 미국이란 나라가 비교적 근래 태어난 국가이면서도 오히려 자신의 뿌리인 유럽 국가들에 비해서 훨씬 신앙에 토대를 두고 있다는 것을 설명해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6. 최근작은 아니고 2017년 작이라 이미 볼 사람은 다 봤을 듯하지만, [베터콜사울]도 그렇고 이 작품도 그렇게 화제가 되지는 않아서 몰랐던 분이라면 한 번쯤 확인해 보길 추천. 넷플릭스 화면이 보여주는 추천작을 별로 신뢰하지 않지만 이번엔 순전히 이 덕분에 보게 된 것. 줄기차게 화면에 떠 있는 걸 외면하다가 그냥 한번 눌러본 게 계기가 되어 쭈욱 이어본 드라마. 이 기대치 않았던 즐거움이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되었을 지도. 그러고 보니 코언 형제의 [카우보이의 노래]도 수작이었는데, 또 언제 다른 서부극도 훑어볼까나. 


7. 서부 시대의 정취와 풍광을 느끼고 싶은 분, 긴 호흡의 서사시를 즐기는 분, 잘 짜인 각본과 연출을 선호하는 분이라면 강추. 경쾌한 분위기나 현란한 액션을 즐기는 분,  정교한 스릴과 복잡한 플롯을 즐기는 분, 많은 사람들이 잘 아는 영화나 드라마 선호하는 분 비추.  




# Mr. Bo Jangles - Chet Atk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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