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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릭 Dec 19. 2021

모르는 건 없어

음악에 귀를 기울이던 여자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 음악 좋아요. 어쩐지 신나게 춤이라도 춰야 할 것 같은 곡이네요.” 식탁 아래로 흥이 오른 그녀의 두발이 들썩거렸다.


여자의 즐거운 표정을 보고 있던 남자가 조금씩 고개를 까닥거리더니 여자의 손을 잡아 일으켰다. “춤 출래요?”


“네? 춤요? 갑자기 무슨....” 갑작스런 말에 여자가 멈칫거렸다가 장난 말라는 듯 피식 웃었다. 남자도 얼굴을 마주대고 웃어 보였지만, 그는 계속해서 그녀를 거실 쪽으로 끌어당겼다. 말없이 반짝이는 남자의 눈을 보며 그것이 진심이란 걸 깨닫기 시작한 여자는 당혹스런 표정이 되어갔다. “나 춤출 줄 몰라요.....”


“모르는 건 없어요. 모른다고 생각하는 거지.” 남자가 손을 바꿔 잡으며 그녀 옆으로 나란히 섰다.


“지금 정말 춤을 추자는 건..... 아니죠?” 그녀가 설마 하는 표정으로 물었지만, 남자의 두발엔 이미 리듬이 실리고 있었다. 여자 얼굴이 빨개졌다. “난 정말 춤출 줄 몰라요.”


“춤이 별건가요? 리듬 따라 움직이면 그게 춤이지. 이렇게.” 남자가 짧게 걸음을 내딛으며 그녀를 맴돌기 시작했다. “박자에 맞춰 걸어 봐요. 이렇게, 이렇게. 무릎을 펼 때는 살짝 어깨를 들썩인다는 느낌으로.” 손이 붙잡힌 여자로서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었다.


“갑자기 이러면.....” 여자의 물음에 남자는 장난스런 웃음으로 대신했다. 여자의 두발은 더 이상 생각할 겨를도 없이 차례로 움직여 나갔다.


“쉽게 생각해요. 그냥 리듬에 맞춰 걸음을 옮기는 거뿐이에요. 자, 손에 힘을 빼고.” 남자가 잡고 있던 손을 가볍게 흔들었다. 어느새 곡이 끝나고 있었지만 남자는 반복 재생을 누르고는 금방 다시 여자의 손을 잡았다.


“근데 춤도 춰요? 의외네요.” 여자가 물었다.


“일단 딴생각은 지워요. 지금 내 몸이 편하게 움직이고 있나에만 집중해요. 그냥 몸이 가는 대로 내버려 둔다는 기분으로.” 잡고 있던 남자의 손이 여자의 팔과 어깨, 허리로 옮겨가며 마치 몸에 불필요하게 남은 힘을 빼내려는 듯 가볍게 흔들었다. “그렇죠. 그렇게, 좋아요. 아주 좋아요.”


어느덧 여자는 말없이 남자가 이끄는 데로 걸음을 옮겨갔다. 움직임이 더해지자 들려오는 음악소리가 더욱 생생해졌다. 마치 질감이 느껴질 듯이 공간을 가득 메운 음악의 흐름 속으로 여자는 몸이 휩쓸려 들어가는 듯했다. 자신과 상관없이 시작된 그 낯선 흐름이 생각보다 싫지 않았다. 발코니 창으로 밀려든 휴일의 햇살이 반쯤 드리워진 거실을 남자의 손에 이끌려 천천히 몇 차례 오갔다.


다시 곡이 끝나갈 무렵 남자가 물었다. “어때요? 어쩐지 이젠 생각과 상관없이 몸이 움직이는 거 같지 않아요? 일단 흐름에 들어서면 몸이 알아서 느껴요. 춤도 일종의 본능이니까.”


“본능이라기엔 뭔가....” 아직 여자는 자신의 움직임이 미심쩍었다.


“뭔가?” 남자가 방향을 바꾸기 위해 손을 바꿔 잡으며 되물었다.


여자는 몸을 틀어 자연스럽게 방향을 바꿨다. “그렇다면 지금껏 제가 모르고 살아오지는 않지 않았을까요?”


“그러기엔 이미 리듬을 타고 있는걸요. 믿으세요. 모르는 건 없어요. 우린 걸음마를 배운 이후로는 그냥 움직이는 걸 알아요. 그것도 아주 잘. 춤이란 그 움직임을 일정한 리듬 속에 맞추는 것뿐이에요. 차이점이라면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이었던 것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된 거죠.”


“춤도 목적이 있지 않나요. 무대에 선다던지 대회에 참가한다던지?” 이제 여자는 발이 아니라 남자의 눈을 보며 물을 여유가 생겨났다.


“그렇죠. 그럼 그때 춤은 공연이나 스포츠가 되는 거죠. 반대로 어떤 스포츠라도 경기가 아니라 몸의 움직임 자체를 즐긴다면 춤을 즐기는 것과 비슷한 상태가 되겠죠. 물론 그 사이에 정확한 경계는 없어요. 그렇지만 춤이 다른 움직임과 구별되는 차이는 있어요.”


“뭐가요?” 여자가 물었다.


“음악요.” 남자는 허공으로 한쪽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보통의 움직임은 자기 스스로가 리듬과 속도를 결정해야 하지만 우린 지금 만들어진 리듬 속으로 움직임을 제한하고 있는 거죠.”


여자가 잠깐 생각하다가 말했다. “움직임 자체가 목적이지만 그걸 위해 또 제한을 가한다는 건 좀 아이러니네요.”


“하지만 그 제한이 자유를 줘요.”


“네?” 여자 눈이 호기심으로 빛났다.


“자 생각해보세요. 처음 박자를 맞출 땐 걸음을 맞추려고 신경 써서 노력했잖아요. 하지만 지금은?” 남자는 잠깐 그녀가 생각해보기를 기다렸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은 특별히 신경 쓸 필요 없이 이렇게 이야기까지 나누고 있죠. 정해진 곡의 리듬이 내가 떠올려야 했던 생각이나 정해야 했던 타이밍에 대한 의무감에게서 해방시켜 준거죠. 이 순간 우리는 만들어진 흐름에 맡겨둔 채 움직임을 즐기면 돼요. 이건 매 순간 자율적으로 얼마만큼 움직일지를 결정하던 무의식의 에너지만큼의 자유라 볼 수 있죠.”


“아.... 뇌의 상당 부분이 신체기관의 움직임에 할애되어 있다는 걸 읽은 적이 있어요. 춤출 때의 쾌감은 그런 무의식의 노동에서 해방된다는 의미가 될 수도 있겠군요.”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주 적절한 표현이에요.”


“뭔가 생각해보지 못했던 관점이네요.” 여자의 입술이 좀 더 생각하려는 듯이 동그란 모양을 만들었다.


그녀의 입술을 보며 남자가 말했다. “그렇지만 한편으로 이건 익숙한 것이기도 해요. 이를테면 만약 처음 만난 두 사람이 정해진 것이 없이 대화를 시작한다면 꽤 오랫동안 어색한 시간이 흐르겠지만, 바로 함께 춤을 출 수 있다면 말없이도 금방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죠. 정해진 게 있다는 건 생각보다 많은 안도감을 주거든요. 대화를 시작할 때, 보통 서로 알고 있는 공통주제로 시작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랄 수 있죠. 사람은 늘 새로운 걸 즐기지만 그건 이미 그전에 쌓인 수많은 정해진 것들 때문이에요.”


“그렇군요. 정해진 틀이란 건 보통 부정적으로만 말하는 경우가 많아서 선입견을 가지게 되나 봐요.” 여자가 말끝에 갑자기 웃음을 터트렸다. “근데 지금 이렇게 박자를 타면서 이야기하고 있는 게 좀 이상하지 않아요?”


“왜요? 이젠 평생 이러고 살았던 분처럼 보이는데요?” 남자가 웃었다.


“그러니까요. 이러면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고 있는 게 좀 우스워서요.”


“인간은 어떤 상황에도 적응하는 동물이니까.” 남자의 말과 함께 곡이 끝나가고 있었다.


“익숙해졌으니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볼까요.” 남자가 다시 시작된 음악에 맞춰 한 가지 동작을 보여주었다. 반복되던 걸음 대신 단순하지만 좀 더 리드미컬한 일련의 스텝이었다. “이렇게 반복되는 리듬 속에 특정한 움직임의 패턴을 만들 수 있어요. 이렇게 걸음에 변화를 주면서 리듬감을 구체화시키는 거죠.” 여자도 남자의 발을 바라보며 따라 하기 시작했다. “그렇죠. 그렇게. 아주 좋아요.”


그녀는 잠깐씩 내디딜 타이밍을 놓치긴 했지만 움직임이 멈춰지는 일은 없었다. 어느새 여자는 완전히 스텝을 밟는데 몰입했다. 여자가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계속 쓸어 올리며 집중하는 모습을 남자가 한참을 바라보고 있는 걸 여자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지금 내 움직임이 편안한 가에만 집중하세요. 억지스러운 부분이 있다면 그걸 없애는 데만 신경 쓰면 돼요. 빨리 할 필요는 없어요. 하다 보면 결국 익숙해지니까.” 남자의 말에 여자도 여유가 생겼는지 빙긋 웃어 보였다.


다시 곡이 끝나고 새로 시작되자 남자가 조금 변형된 스텝을 보여주었다. “자, 이제, 이 기본 패턴을 이런 식으로 바꿀 수 있어요. 앞으로 가는 대신 옆으로. 또 이렇게 뒤로. 그냥 이렇게 제자리에 있어도 상관없어요. 이런 식으로 딛는 발을 비틀 수도 있구요. 한발 한발 무게중심을 옮기는 게 아니라, 이렇게 동시에 옮길 수도 있어요. 중요한 건 무게중심이 확실히 옮겨져야 다음 발이 편안해진다는 거예요.”


“무게중심이 옮겨진 건지는 어떻게 알아요?” 진지해진 얼굴로 여자가 물었다.


“다음 동작을 취하려 할 때 몸의 균형이 잡혀 있느냐에 달려있어요. 너무 익숙해서 잘 느끼진 못하지만 걸을 때 우린 정확히 무게 중심을 옮겨요. 어쩌다 제대로 옮겨지지 않으면 몸이 비틀거리는 거죠. 뭔가 스텝이 자연스럽지 않다고 느껴진다면 무게중심이 제대로 옮겨지지 않았다고 보면 돼요. 내가 균형을 잡고 편안하게 발을 옮기고 있다면 제대로 되고 있는 거구요. 그러니까 한 동작은 언제나 다음 이어질 동작을 위한 예비동작이라고 보면 돼요.”


“아... 지금 뭔가 깨달음이 있었어요.” 잠시 멈췄다 다시 발을 내딛는 여자의 목소리가 약간 들떠 있었다. “다음 발을 제대로 움직이기 위해선 현재 발을 확실하게 옮겨둬야 하는 것이군요.”


“오, 좋아요. 지금 아주 자연스러웠어요.” 남자가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 보였다. “그 동작을 또 이렇게 미리 당겨서 발을 옮기고 여유롭게 다음 스텝을 옮긴다던지. 반대로 천천히 스텝을 옮긴 만큼 다음 동작을 빠르게 한다든지. 이렇게 동시에 무게중심을 옮기는 걸 강조해서 미끄러지듯 나아갈 수도 있구요. 패턴은 같지만 얼마든지 변화를 줄 수 있어요.” 남자가 마지막 발을 꼬더니 순간적으로 한 바퀴를 돌아 제자리에 서며 두 손을 펼쳐 보였다. “이렇게 턴을 넣을 수도 있죠.”


“와.... 신기해요. 완전히 다른 느낌이 되는군요.” 여자가 멈춰 서 박수를 쳤다. “다시 보여주세요.”


“이건 아직 필요 없어요. 그냥 기본 스텝을 이해하는 데 참고만 하세요.” 남자가 답했다.


“그래도 한번 보여주세요.” 그녀의 말에 남자는 몇몇 동작을 천천히 나눠서 보여주고 다시 음악에 맞춰 스텝을 밟았다. 남자의 동작을 계속 따라가던 여자는 결국 헷갈렸는지 몇 차례 타이밍을 놓치고 갸우뚱거렸다.  금방 다시 스텝을 옮겼지만 이내 멈추고 말았다. “아, 이게 아니라 이렇게 나가야 되는데....”


“외우려고 하면 더 힘들 수 있어요. 이건 이진씨 같은 머리 좋은 사람에겐 약점일 수 있어요. 잘 외워지니까 외워서 하려는 경향이 있거든요. 근데 외우는 것과 몸동작은 좀 달라요. 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그 자체가 결과물이고 뇌 속에 한정된 일이지만 몸동작은 근육이 하는 일이고 그 근육의 움직임에 관계된 신경계통과의 협업이거든요. 이건 물리적인 시간이 필요해요. 완전히 뇌와 동조되기 전에 생각이 자꾸 개입되면 박자를 놓쳐버리기 쉬워요. 그래서 충분히 몸이 익숙해지기를 기다려 줘야 해요. 그래야 순간순간 어떤 옵션을 선택할지를 순간적으로 결정할 수 있거든요. 지금 건 이런 식으로 연결된다는 정도만 알아두고 일단은 기본 패턴만으로 충분해요. 익숙해지면 아까 본 것들은 저절로 응용할 수 있어요. 몸이 이해를 할 시간을 줘야 해요.”


“음.... 충분한 연습이 필요하단 거군요.” 여자가 발을 내딛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남자는 기본 패턴과의 차이점에 대해서 번갈아가며 비교해 가며 동작을 보여주었다. “이런 차이점을 이해하다 보면 기본 동작에 대한 이해도 깊어져요. 그리고 이건 궁극적으론 내 몸의 움직임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거죠. 자신의 몸을 이해한다는 건 생각보다 큰 즐거움이 있을 수도 있어요.” 몇 곡이 반복되는 동안  두 사람은 함께 기본 패턴을 반복했다. 그러는 동안 남자는 조금씩 앞뒤 좌우로 조금씩 손을 움직여 여자가 방향 전환에 익숙해지도록 했다. 여자는 다시 남자를 쳐다보며 다시 질문을 할 만큼의 여유가 생겨났다. 여자가 묻고 남자가 설명하며 동작을 반복하는 동안 또 몇 차례 음악이 반복되었다.


잠시 멈춰 물을 나눠 마시면서 남자가 말했다. “이 정도면 기본적인 준비는 되었어요. 지금부터가 진짜예요. 문화적인 관점에서 춤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만든 것을 제외하면, 주로 남녀가 커플로 즐기는 형태로 발전했어요. 클럽에서 막춤을 추더라도 대부분 바라는 건 남녀가 짝을 이루는 거잖아요. 남녀의 만남은 인류의 근간을 이루는 요소니까 춤에도 예외는 없죠.” 컵을 내려놓은 남자는 지금까지 나란히 스텝을 밟던 것과 달리 여자를 마주 보며 두 손을 잡았다. 그리곤 순서를 바꿔 스텝을 옮겼다. “이렇게 발의 순서를 바꾸면 두 사람이 마주 보며 춤을 즐길 수가 있어요. 같은 동작이지만 마주 보고 있으니 느낌이 좀 다르죠?”


두발이 대칭을 이루며 오가는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여자가 다시 남자의 얼굴을 올려보며 스텝을 밟아나갔다. 가까이 마주 선 남자의 얼굴에 조금씩 여자의 빰이 붉어졌다. “이렇게 마주 보고 하려니까 좀 쑥스러워요.” 그녀는 민망하다는 듯이 남자를 바라봤다. 남자의 눈길을 피하지는 않았지만 괜히 말을 돌렸다. “근데 어쩌다 지금 춤을 추고 있는 거죠?”


“그래도 생각보다 나쁘지 않죠?” 남자가 되물었다.


“네.” 여자가 수줍게 답했다.


남자가 빙긋 웃고는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말했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당신을 움직이게 만들 거예요.”


“무슨...” 여자는 영문을 알 수 없다는 표정으로 말끝을 흐렸다.


남자의 눈빛이 진지하게 빛났다. “그냥 지금처럼 계속 리듬을 타는 흐름만 유지하고 있으면 돼요. 설령 틀리더라도 상관없으니까 그냥 나에게 몸을 맡기세요.” 남자의 말에 여자가 고개를 끄덕이자, 남자는 잡고 있는 여자의 왼손을 자신의 어깨 위로 올리고 여자의 허리를 손으로 감았다. 여자는 순간 놀랐지만 침착하게 스텝을 이어나갔다.


그와 닿을 듯이 가까워지자 여자는 그의 움직임이 훨씬 분명하게 전해졌고 음악의 리듬 속으로 한층 강하게 휩쓸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렇게 그대로 스텝을 밟으며 남자는 여자의 움직임이 부드러워지기를 기다렸다. 그러던 순간 남자의 몸이 살짝 솟는 듯하더니 기우뚱 한쪽으로 쏠리며 그녀를 안 듯이 돌았다. 그렇게 계속 방향을 바꿔나가며 두 사람은 거실을 구석구석 맴돌기 시작했다.


때론 강하게, 때론 부드럽게, 자유롭게 오가다 소용돌이치듯 맴도는 두 사람이 여자는 마치 계곡물을 따라 떠내려가는 나뭇잎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꽉 채운 음악 속에서 방향에 따라 눈에 들고나는 햇살의 눈부심이 비현실적인 느낌을 더했다. 움직임이 조금 가라앉자 여자가 조금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제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지 모르겠어요.”


“너무 잘하는 걸요. 좀 더 과감해져도 될 거 같은데요.” 남자의 말과 함께 여자는 갑자기 그의 손에 의지하던 허리가 허전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순간, 그녀의 몸이 남자에게서 튕겨나가는 느낌이 들더니 그와 동시에 잡고 있는 손이 위로 끌려 오르며 풀려나간 몸이 빙그르 돌았다.


“어머!” 다시 제자리로 돌아와 남자의 턱밑에 선 자신을 발견한 여자가 소리쳤다. “지금 뭘 한 거죠?”


“어때요, 재밌죠?” 그녀가 답할 겨를도 없이 남자가 감고 있던 여자의 허리에 다시 힘을 주었다. 그의 손을 따라 빙글 돌며 그녀가 조금 전처럼 남자에게로 안겨들었다. 얼떨떨한 여자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남자가 말했다. “말했죠. 모르는 건 없다고. 이건 내가 아니라 이진씨가 한 거예요. 전 길안내를 한 거뿐이구요.”


여자가 무슨 말을 할까 생각하는 사이 그녀가 손을 올려둔 남자의 어깨가 살짝 들썩였다. 기우뚱 다시 남자의 몸이 기우는가 싶더니 여자의 몸도 함께 출렁이기 시작했다. 분명 같은 동작이었지만 또 새로운 느낌이 생겨났다. 그런 기분이 그녀는 맘에 들었다. 자신의 왼팔과 허리를 지탱해주는 남자의 어깨와 손의 안내를 받으며 여자의 발은 이제 가야 할 길을 아는 듯이 걸음을 내딛고 있었다. 음악이 창유리의 햇살을 타고 방안을 맴돌다 어쩌면 그녀를 싣고 하늘 위로 떠오를 것만 같았다.




# Time for the Dancers - Roland Ha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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