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연극_터미널 [공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이야기

by 글쟁이

'이 지친 당신의 하루에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연극의 팜플렛에 적혀 있는 이 한마디가 참으로 고마웠던 날이었다.


터미널이라는 공간은 너무나 익숙한 장소다. 학교에 가고, 회사에 다니면서 항상 지나쳐야 하는 그런 곳이다. 오늘은 누구를 만나고, 무슨 일이 벌어질까? 오늘은 어려움 없이 잘 넘어갔으면 좋겠다...라는 설렘과 기대, 소망, 걱정들이 모이는 그곳에서 우리는 결과를 향해 데려다 줄 버스를 기다린다.


이 연극도 '터미널'이라는 이름에 맞게 우리를 다양한 상황 속으로 데려다준다. 꿈을 상실한 이들의 이야기, 믿었던 가족에게 상처를 입은 한 여인의 이야기, 그리고 한 남녀가 나누었던 사랑의 이야기 속으로 말이다.


2025 터미널 최종 포스터.jpg


연극 '터미널'은 [펭귄], [Love so sweet], [거짓말]이라는 세 가지 에피소드로 구성된 옴니버스 연극이다. 머무름과 떠남이 공존하는 공간 속에서 교차하는 서로의 이야기를 비추며,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실과 상처, 화해와 이별의 순간을 그려낸다.




첫 번째 이야기[펭귄]은 남극기지에서 셰프와 생물학자로 만나게 된 두 사람의 과거와 미래의 이야기를 조명한다. 두 사람은 과거에 연기를 전공한 연극과 선후배 사이지만, '연극'이라는 꿈을 내려놓고 다른 목표를 향해 남극으로 왔다. 하지만, 그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잃어버린 꿈에 대한 미련이 가득한 듯 그들은 추운 칼바람이 부는 세상의 끝에서 잃어버린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극을 보며, 나 역시 마음속 품고 있는 '꿈'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꽤 많은 이가 나를 보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너는 꿈을 이룬 거 아니야?' '원하는 영상을 만들고, 글도 쓰며 살아가고 있잖아?'


하지만, 나의 꿈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아니, 점점 잃어버리고 있는 걸지도...


내 꿈은 PD가 되어 많은 사람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많은 이가 힘을 얻어 본인들의 특별한 이야기를 또 만들어가는 그런 순환의 구조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나, 현재 나는 그저 돈을 벌기 위한 영상을 만들고 있다. 당장 내야 할 카드값과 대출금, 그리고 이제 부모님 용돈까지 챙겨드려야 할 나이가 되어 나가야 할 돈이 꽤 많다. 그러다 보니 꿈보다 돈을 좇아 촬영을 하고, 편집을 하고 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게 어른이 되는 건가?' '남들이 말하는 철이 든다는 것이 이런 건가?'

연극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잘 살고 있는 것인지, 꿈은 내려놓아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아직 결론을 내리지는 못했다. 그렇지만 나름의 소망은 이 고민의 결과가 '포기'라는 단어는 아니었으면 좋겠다. 아직 더 부딪혀보고 싶은 시기인 것 같기 때문이다.


두 번째 이야기[Love so sweet]이라는 작품으로, 누구보다 사랑받고 싶었지만, 상처로 가득한 한 여인의 이야기를 그린다. 귀할 귀, 보배 진을 쓰는 오귀진이라는 이름의 그녀는 병든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뒤, 아들처럼 보살핀 남동생과 이별하려고 한다. 그녀의 족쇄와 같은 이들을 풀어버리고 홀로서기를 시작한다.


이 극을 볼 때, 귀진씨의 홀가분한 미래를 응원했다. 그동안 상처만 주었던 아버지와 동생에게서 벗어나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향해 달려가고자 하는 그녀의 모습이 참 멋져 보였다. 그리고 자신이 가장 힘들 때 손을 내민 사람에게조차 배신을 당했을 때도 울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목에 목도리를 두르는 그녀의 모습에 용기를 얻었던 것 같다. 평소 부정적인 상황에 놓였을 때 한없이 무너졌던 나의 모습과 정반대로 귀진씨는 용기를 내고 자신을 응원하는 모습을 보였다. 내가 바라던 단단한 어른의 모습을 대신이나마 경험할 수 있어 참 좋았고, 나 역시 저렇게 살아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마지막 이야기[거짓말]이라는 제목으로, 두 남녀의 불륜 스토리를 그린다. 퇴근 무렵, 많은 인파가 몰리는 서울역에서 두 남녀는 처음 만난다. 각자 가정이 있지만, 서로에게 깊은 연민과 운명을 느낀다. 단 한 시간이지만, 두 남녀는 고단한 일상으로부터 벗어나는 유일한 위로의 순간을 마주한다. 하지만, 그 둘은 서로에게 어디까지가 진실일지 모를 거짓말들을 내뱉으며 사랑을 나눈다.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거짓말임이 분명하지만, 그들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진실로 느껴졌을지 모른다.


'불륜'이라는 단어에서 큰 반감이 느껴졌지만, 그들이 서로를 통해 위로를 받는 모습을 보며 어느 순간 다행이라는 마음이 들었다. 극이 진행되며 분명 위기도 존재했다. 서로의 거짓말을 알아챈 그들은 서로에게 큰 실망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위로로 이어졌던 관계가 심하게 요동친다. 하지만 이는 한순간이었을 뿐, 그들이 쏟아냈던 말과 감정이 거짓말이든 진실이든 확실하게 알지 못하겠지만, 그들에게는 그 순간이 진실이었던 것 같다.




[터미널]이라는 연극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사회를 향한 거대한 메시지나 깊은 예술적인 의미가 아닌, 그저 평소에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감정들이다. 이 연극을 보며 내가 느낀 것은 나의 삶, 너의 삶, 그리고 모두의 삶은 언제는 [펭귄] 속의 두 남녀가, 또 언제는 [Love so sweet]의 귀진씨가, 또 언제는 [거짓말] 속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극을 단순한 연극으로만이 아닌, 삶으로 느낄 수 있어 감사한 공연이었다.


#아트인사이트 #artinsight #문화는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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