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잔인한 갑작스러운 부재의 상실감 치유
엄마는 등산을 좋아했다. 나는 그런 엄마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는데 등산을 좋아한다니. 뭔가 앞뒤가 안 맞지 않아?"라고 물을 때면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전생에 나무였나 보다."고만했다. 꽃가루 알레르기가 있으면서 등산을 좋아한다니, 참 특이한 사람이었다. 엄마는 산에 갔다 온 날이면 과장을 조금 보태서 한주먹이나 되는 알레르기 약을 잔뜩 먹었다.
그 사람만 없었다면 그날도 엄마는 등산을 다녀왔으니 약을 잔뜩 먹었을 것이다. 대낮부터 산 밑에서 막걸리를 인사불성이 될 때까지 먹은, 그리고 운전대를 잡은 그 사람이 없었으면 말이다. 그 사람은 무슨 자신이었는지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집까지 알아서 모셔다 주는 자율주행 버튼도 누르지 않고 본인의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발로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고 한다. 주변인의 증언에 따르면 그는 평소에 "원래 술 먹었을 때 운전이 더 잘되는 법이야." 따위의 말을 하며 음주운전을 한두 번 한 게 아니라고 했다. 그 덕에 그 사람은 가중처벌을 받긴 했지만, 그래도 나쁜 새끼. 갈 거면 혼자가지 왜 엄마까지 데려가냐고.
엄마의 장례식의 앞 이틀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첫날은 울다 쓰러지기를 몇 번을 반복했고, 둘째 날은 빈소에 찾아온 '나쁜 새끼'의 멱살을 몇 시간이나 잡고 흔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은 파주에 있는 수목장에 엄마를 모시고 왔다. 이제 더 이상 알레르기 약을 먹지 않아도 되니까. 가장 좋아하던 아름드리 참나무 옆에 엄마를 두고 왔다.
엄마가 병원에 갔을 때부터니 거의 일주일은 비운 집의 대기는 싸늘했다. 그러나 그 싸늘함과는 대비되는 빛이 오른편 부엌에서 새어 나왔다. 정신이 없어서 불도 안 끄고 나갔구나 생각하며 신발을 벗는 순간 부엌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났다. 잘못 들은 거겠지 하고 부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거기에는 엄마가 서 있었다. "뭐야...?" 하고 묻는 소리에 엄마로 보이는 그것은 나를 보며 기계음으로 대답했다.
"안녕하세요. 고객님. 지금 보시는 이 로봇은 대양생명보험에서 제공하는 안드로이드 AX700입니다. 고인께서 생전 신청해 두신 보험 상품에 '피보험인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겪을 수 있는 가족부재의 아픔을 3개월간 안드로이드로 유예 및 치유할 수 있는 상품을 제공한다.'는 특약이 있습니다. 저희 대양생명보험은 고인의 동의하에 수집된 카메라 및 음성정보를 통하여 생전 데이터를 수집하였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앞으로 3개월간 고인의 생활 패턴을 99.6%의 정확도로..."
나는 말문이 막혔다. 이런 어이없고 놀란 상황에는 뭐라고 얘기해야 할지 배운 적이 없어서 계속 뭐냐고 되묻기만 했다.
"그쪽, 챗봇이에요? 사람이에요? 그리고 나도 모르게 우리 엄마가 이걸 신청했다는 거라고요?"
"챗봇입니다. 고객님. 해당 상품의 신청 범위에 대해서 말씀드리자면, 피보험인, 즉 고인께서 동의만 하신다면 임의로 설치가 가능한 상품..."
“그만, 그만!”
분명 저건 엄마의 얼굴이었다. 그러나 로봇 따위가 엄마를 흉내 낸다는 느낌에 거부감이 들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 로봇의 뒷목덜미에 있는 대양생명보험 고객센터와의 화상전화연결 버튼을 눌렀다. 나는 너무 흥분한 나머지 앞뒤 잴 것 없이 당장 회수해 가라고 했다. 그러나 거기서 들려오는 목소리도 기계음을 내는 상담사 챗봇이었다. 챗봇은 입력된 메커니즘대로 지금 회수하셔도 납입된 보험료는 환불되지 않는다는 단서조항과 함께 상품회수를 만류했다. 나는 상관없으니 당장 이 깡통로봇을 내 눈앞에서 치우라고 말했다. 챗봇은 건조한 목소리로 인력부족 때문에 회수까지는 3일은 걸린다고 말하곤 사라졌다.
로봇은 자신의 삶이 3일밖에 남은 걸 모르는지 입력된 엄마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행동했다. 진짜 엄마의 데이터라면 저 로봇은 아침 7시에는 일어날 것이고, 저녁 10시에는 잠들 것이다. 나는 그런 로봇이 부담스러워 7시보다 일찍 집을 나서고, 10시보다 늦게 퇴근했다. 로봇이 집에 온 지 이틀째 되는 밤이었다. 열한 시쯤 집에 왔을까. 내 예상과는 달리 부엌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 로봇이 서있었다. 나는 엄마한테 말하듯 해야 하는지, 모르는 사람한테 말하듯 해야 하는지 하는 고민에 말끝을 흐렸다. "뭐 해... 요?" 이틀 만에 처음 로봇에게 말을 걸었지만, 엄마와 똑같은 로봇의 목소리는 내 신경을 자극했다. "응. 왔니? 늦었네. 오늘 엄마가 산에 갔다 왔는데 알레르기 약 먹는 걸 깜빡했지 뭐야."
약을 털어 넣는 엄마의 손을 보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로봇이라면서. 왜 취미까지 같은 건데. 로봇이라면서. 왜 알레르기까지 같은 건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엄마는 같이 쭈그려 앉아 내 등을 토닥였다. "얘, 왜 이러니. 오늘 회사에서 누가 괴롭혔어?" 나는 눈물을 줄줄 흘리는 채 엄마를 와락 끌어안았다. 분명 로봇인데, 로봇의 품에서 엄마냄새가 났다. 문득 해야 할 일이 생각났다. 엄마의 목덜미에 있는 고객센터 연결버튼을 눌렀다. 나는 꺽꺽대며 내일 회수를 취소해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