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낭만부' 오마주
K는 대학교 3학년이었다. 그리고 친구가 없었다. 매 학기 꽉 채운 시간표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면 친구를 만들 겨를이 없었다. 남들은 동기모임이니 환영회니 알코올을 부어라 마셔라 할 때 K는 바에서 알코올을 팔았다. 저녁 열 시부터 새벽 두 시까지 바 앞에 앉은 손님에게 억지로 웃고 있다 보면 턱이 그렇게 아팠다. 일을 해야 했지만 일을 할 시간이 남들보다 짧은 K에게 이 아르바이트는 더없이 좋았다.
문학 전공인 K는 종종 자기 인생이 너무 흔하디 흔한 막장드라마의 클리셰 투성이 같다고 생각했다. K는 엄마와 단 둘이 살았다. 엄마는 2년 전까지는 보험왕이었다. K는 엄마가 맨 정신으로 퇴근하는 것을 거의 본 적이 없다. 항상 술에 취해 퇴근했다. 그 덕에 엄마는 보험왕이 될 수 있었지만, 그 대가는 너무 컸다. 간의 90%를 떼어 냈다. 보험왕 출신답게 엄마는 알짜 보험들만 가입해 놓았지만, 그 어떤 보험도 암을 2년 내내 보장해 주는 것은 없었다. 결국 K는 최소한의 약과 링거들을 주렁주렁 매단 엄마를 집에 뉘일 수밖에 없었다.
K는 엄마가 자리에 눕기 전에는 남들처럼 유학도 가고 싶었고, 애인도 만들고 싶었다. 또 외무고시를 통과해서 외교관이 되고 싶었다. 그러나 이젠 월세 80만 원, 공과금 15만 원, 휴대폰 요금 10만 원에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엄마의 약값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저 빨리 졸업을 해서 돈이 나갈 구멍을 하나라도 없애는 게 최선이었다.
엄마는 K가 매달 이 많은 돈을 어디서 가져오는지 궁금했지만, 각종 항암제 때문에 자리에서 일어날 여력조차 없었기에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보험왕 시절 고객 중 하나가 연락이 와서는 바에서 K를 봤다고 했다. 엄마는 그런 일을 해서 벌어오는 더러운 돈은 필요 없다고 K에게 비수를 날렸고, K는 내가 엄마 때문에 포기한 것이 얼마나 많은 줄 아냐며 엄마에게 비수를 날렸다. 그날로 엄마의 상태는 더욱 악화되었다.
K는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이상하게도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3일 동안 빈소를 찾아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K는 친구가 없었고, 엄마의 고객은 다 떠나간 지 오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덕에 K는 2년 만에 오롯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며칠을 멍하니 있었다. 연락이 올 곳이 없었기에 계속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마음의 정리가 얼추 됐을 때쯤, 보험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엄마 앞으로 가입되어 있던 생명보험의 보험금 수령 통지 전화였다. K는 보험금을 받고선 통장에 이렇게 많은 숫자 0이 찍힐 수 있는 것에 놀랐다. 이제 K는 바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아도 됐다. 앞으로는 매 학기 시간표를 꽉 채워 들을 필요도 없었다. 한 학기쯤은 여유롭게 다녀도 됐다. 유럽이나 미국 여행쯤은 한두 번 다녀와도 괜찮을 것 같은 통장잔고였다. 해야 할 일도, 빚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엄마가 떠나면서 다 가져갔다. 엄마가 사라지면서, 모든 것이 함께 사라졌다. 마음 한 구석을 콱하고 틀어막고 있었던 엄마의 존재가 사라지자 K는 그제야 눈물이 나오기 시작했다. 한 번 흐른 눈물은 쉽사리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