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백만 가지의 진실

for D/R..

by 글쟁휘


다소 어울리지 않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는 롯데리아에서 '정'은 바라보던 김연아 햅틱폰을 달칵 테이블에 내려놓더니 내 손위에 본인의 손을 지그시 올리곤 눈을 바라보며 입을 뗐다.

"혼돈의 반대말이 뭔지 알아?"

앞서 장황하게 신세한탄을 했던 내 푸념과는 전혀 동떨어진 발화에 나는 다소 당황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갑자기? 음... 질서?"

"아니야. 돌 네 개를 손에 쥐었다가 땅바닥에 던진다고 생각해 봐. 그 돌들을 꼭짓점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떻게든 사각형의 모양을 만들 확률이 높겠지?"


'정'의 장황한 설명에 나는 가만히 눈을 감고 상상했다. 음. 삼각형이 만들어질 수도 있겠지만, 대부분 사각형이겠군.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정'은 계속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돌을 던지는 행위를 수 천, 수 만 번 반복한다고 생각해 봐. 돌 네 개가 완전한 정사각형을 이룰 때도 있겠지? 결국 질서는 혼돈의 한 종류야."


'정'의 쉬운 설명에 단박에 이해가 되었지만, 내가 먼저 꺼낸 이야기와는 전혀 관계가 없어 보이는 이 주제를 이야기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뭐야?"

'정'은 중요한 말을 할 때 얇고 귀여운 목소리로 '큼큼'하며 시작하는 여느 때처럼 이번에도 헛기침으로 장황한 연설의 포문을 열었다.

"결국 언어에는 양극단의 반대말은 없다는 거야. 진실의 반대말이 뭘까?"

"거짓... 은 아니겠지? 반대말이 없다면서."

'정'은 마치 문제의 정답에 관한 힌트를 다 줬지만, 그래도 학생이 착실히 듣는 태도가 마음에 든 선생님 마냥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누가 교대생 아니랄까 봐.


"맞아. 혼돈이 여러 개의 질서와 질서가 아닌 것들로 이루어진 것처럼, 진실도 여러 개의 진실의 조각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개념이야."

이번에는 설명이 조금 어렵다. 내가 알아듣지 못하는 표정을 하자 '정'은 이번에는 보충학습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선생님처럼 눈썹을 모으고 더 쉬운 예가 없을까 고민하는 모습이었다.


"너라는 존재 자체는 진실이지? 하지만 너는 단지 '너'라는 단일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야. 내가 사랑하는 너, 너희 부모님이 사랑하는 너, 재수를 결심하게 된 너, 너를 위한 나의 응원을 받는 너, 이런 수 천 수 만 가지의 진실한 구성이 모여 '너'라는 하나의 진실과 존재를 만들어낸다는 이야기야."


또다시 눈을 감고 '정'의 말을 두어 번 정도 곱씹으니 간신히 이해가 되었다.


“민지야. 그래서 그게 내가 결심한 재수를 위한 응원이자 위로라는 거야?"

"응. '재수를 하는 너' 뿐만 아니라, 너를 구성하는 다른 수백만 가지의 네가 있으니 단지 그 하나 때문에 우울해하지 말고 힘내라는 이야기야. 단지 그 하나가 부정된다고 나머지 수백만 가지가 같이 부정되는 건 아니니까."


쉽게 말할 수도 있는 것을 이렇게 빙빙 돌리며 어렵게 얘기하는 '정'은 참 별로지만, 그래서 아이들에게 이해하기 쉽게 설명할 수 있는 선생님이 되기는 어려워 보이는 교대생이지만, 그래도 그의 눈빛창을 통해 보이는 다른 수백만 가지의 '정'을 나는 곰살맞은 표정으로 쳐다보며 내 손을 뒤집어 위에 올려진 손을 꼬옥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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