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至難하지는 않았지만 지난持難했던 마음속 간지러움
살아오며 종종 특정 시기마다 꾸준히, 하지만 잔잔히~ 버틸만하게끔 나를 괴롭히던 마음속 간지러움. 사실 '간지러움'이라고 통칭했지만 그 느낌을 한마디로 형용하기는 어려웠다. 진짜 명치 어디인가가 간지러운 것 같기도 하다가도, 그 명치보다 더 깊숙한 곳이 미세한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을 때도 있었고, 심장이 '쿵쿵쿵쿵!!!!' 두 방망이질 치기보다는 세밀하게 '콩콩-콕콕'댔던 그 느낌. 그럴 때 한껏 가슴을 움츠려 쥐어짜며 버티면 조금은 나아지곤 했다. 지난至難하지는 않았지만 지난持難하게 나를 괴롭힌 해소되지 않는 간지러움이었다.
최근에 인스타그램 어디선가 "프로게이머 울프가 은퇴하게 된 이유. 불안장애/공황장애/적응장애"라는 게시물을 봤다. 그 게시물은 스트레스성 적응장애가 <급작스러운 변화로 인해서 촉발되는 스트레스 요인에 대해 강하게 반응되는 심리적 상태>라고 했다. 이 문장을 보는 순간 나를 30여 년간 괴롭혀왔던 그 "간지러움"의 원인이 무엇인지 드디어! 알게 되었다.
실제로 저 간지러움이 병리적 증세로 나타나고 진단을 받은 건 아니지만, (그리고 진단받아야만 병인 건 아니지. 내가 그렇게 느낀다는데!) 지나온 날들을 돌이켜보면 삶의 변곡점이 갑자기 생길 때, 급작스러운 변화가 있을 때마다 이런 '콕콕 찔리는' 통각을 느꼈다. 지금이야 어른이 된 지 한참 지났기에 국소적인 부위에서 일어나는 간지러움이라고 말하며 버텨내지만, 어릴 때는 그 스트레스로 인해 촉발되는 불안감은 간혹 다른 증상까지 만들어내곤 했다.
영·유아기를 지나 기억이 점차 또렷해질 무렵 이 감정을 처음 느낀 때는 초등학교 입학 직후였다. 어린아이의 걸음으로도 10분이 채 걸리지 않는 등굣길은 3살 터울의 누나와 함께 했기 때문에 괜찮았다. 하지만 학교에 도착해 누나와 헤어지고 혼자 교실에 남겨질 때면(표현이 그렇다는 거다. 사실 40명도 더 넘게 교실에 있었지만, 감정은 사실상 혼자나 다름없었다.) 미칠듯한 불안이 엄습했다. 8살의 내가 가진 참을성은 4교시가 한계였다. 수업은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억지로 참아내다가 엉엉 울며 혼자 하교하곤 했다.
당시 우리 집은 그 시기에 잘 없었던 맞벌이 가정이었다. 저렇게 엉엉 울며 집에 와도, 교대근무를 하던 아버지가 야간근무 때문에 주무시고 계시는 게 아니라면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당분간 어머니가 일을 그만두고 골칫덩이 둘째를 돌봐주시곤 했다. 그리고 아버지는 내가 이런 불안감을 느낄 때마다 "기우"에 얽힌 이야기를 해주시곤 했다.
갑자기 10여 년이 스킵되는 건 당황스럽지만, 청소년기에서 대학 시절은 무사히 지나갔다. 그리고 찾아온 두 번째 큰 변곡점은 스물네 살 때였다. 2014년 6월, 어깨에 다이아 하나를 박고 자대에 간 날에는 기나긴 장마로 부대 모든 건물에 쿰쿰한 회색 비린내가 내려앉아 있었다. 누군가가 나를 책임져주던 5958번 후보생에서 갑자기 100여 명의 병사를 책임져야 하는 측지장교가 되었다. 나도 고작 스물넷밖에 되지 않았는데, 한두 살 차이 나는 친구들을 내 포대원이랍시고 챙겨야 하는 사람이 됐다. 내 앞가림도 못하는데 남을 책임져야 한다는 갑작스러운 변화는 높은 불안감이 되었지만 그 불안감은 두 달도 채 가지 않았다. 처음 해보는 공무원의 행정업무와 엄청난 훈련량(센 척이다.), 거의 2~3일에 한 번씩 들어가는 퐁당퐁당 당직근무(이건 진짜.) 때문에 신체의 피로가 정신의 피로를 압도해서 강제로 버텨내져 버린 시기였다.
몇 년 지나가긴 했지만 조금이라도 어린 척을 해보자면, 김광석의 노래<서른 즈음에>를 지나가는 요즘에도 이 간지러움은 여전히 나를 살살 괴롭히고 있다. 특히 직장인의 큰 변곡점이라고 할 수 있는 것 중 하나인 부서 이동(해본 적은 없지만 이직도 해당할 듯)을 할 때마다 원소속으로부터 역할이 박탈되고 배제되는 느낌도 받는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노련함으로 새 환경에 더 빨리 익숙해질 것이라 예상했으나, 오히려 그 예상은 빗나가고 있다. 하지만, 어릴 때와 다른 것은 스스로 인정하고 그 간지러움을 극복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점이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 평소에 느끼고 있는 그 답답함과 불편함이 내가 표현했던 간지러움으로 대체되리라 생각한다. 나는 주로 내 위상 변화에서 불편감을 느끼는 것처럼 누군가는 이별, 경제적 위기, 여러 가지 유형의 개인 재난에서 불안감을 느낄 것이다. 원인은 다양하고, 증상도 다양하다. 다만 수많은 원인과 증상을 꿰뚫는 한 가지 본질은 이 간지러움이 비정상은 아니고 누구나 겪을 수 있는 감기와 같다는 것이다. 이상한 것이 아니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앞으로 쓰일 나의 글들이 나와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이들에게 자그마한 용기의 마중물이 되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