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로잉 3 호
이제 거의 막바지에 달해 가는 드로잉 수업에서 교수님이 내주신 과제.
"두 개의 vanishing point가 있는 외부 풍경 그려오기."
vanising point라는 말이 어려울 뿐이지, 그냥 나는 '모서리 있는 건물 그리기'라는 과제쯤으로 여기고 있다. 이 과제가 있던 날 수업을 빠졌던지라, 나는 수업 중 다 같이 나가 도서관을 그리지 못하여 숙제로 이것을 끝내야만 했다. 하지만 바람 불어 쌀쌀해진 이 시기에 기숙사 앞에 쪼그려 앉아 그림을 몇 시간이나 그리고 싶진 않았다. 그리고 분명 밖에서 그림 그리는 사람에게 호기심 어린 질문들을 던지는 행인들의 물음을 그림 그리며 다 받아칠 수 없을 것 같았기에 난, 기숙사 안에서 그림을 그리는 꼼수를 부리기로 했다.
역시 초반의 드로잉은 단조롭고 유치하기까지 해 보인다. 그리고 그 기분은 내 스윗 메이트에게도 같은 것인지, 초반에는 'awesome!!'을 외쳐주던 친구들도 스케치만을 보곤 'looking good!' 정도만을 던지곤 사라졌다. 내가 너무 지금까지 드로잉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둔 모양이다.
교수님은 계속해서 말하신다, 종이의 tooth가 훼손되니 손으로 챠콜을 문대지 말라고. 하지만 난 계속해도 종이의 이빨이 마모 대도록 문댄다. 난 그게 좋으니까. 난 왠지 모르게 챠콜 파우더가 남아있는 종이를 참 못 바라보겠다. 그리고 나에겐 극 더 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고 말이다.
(오늘 아침 완성품을 찍으려 했지만, 과제 제출로 허겁지겁 나가느라 정작 완성품을 없다는 사실)
이번 과제에서 교수는 두 가지 선택권을 주었다. 연필과 챠콜. 사실 참 냄새를 잘 맡는 나에게 있어서 챠콜 가룻덩이들은 코를 매캐하게 해 그림을 그리는 중에도 꽤나 괴롭다. 내 자세에 문제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기침이 나오고 머리가 지끈댈 정도다. 온 손가락과 손에 다 묻고 옷도 다시 빨아야 하지만, 난 이번에도 챠콜을 선택했다. 이런 골칫덩이도 꽤나 매력이 있다.
연필과 다르게 끝내주게 명암(value)을 줄 수 있고, 그림에 강렬함을 더 높일 수 있다. 그 맛에 정교함의 정석인 연필을 사랑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챠콜에 정말 빠져있다. 그래서 요즘은 영어 에세이를 쓰는 것보다 더 은근 힘들지만 드로잉을 더 좋아하고 더 애정을 쏟고 있다. 그런 나를 보고 사람들은 우스갯소리로 묻곤 한다,
너 전공이 미술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