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민이 생기면 부모님보단 친구를 찾는 나이가 됐다. 참 속상하게도 하교하면 대충 저녁 먹고 하루를 끝냈던 시절은 사라진 지 오래고, 밤이면 거실에 앉아 부모님께 참새처럼 짹짹거리던 추억은 먼 유년 시절로 회상될 뿐이다.
"고민이 있어."
그래서 선택의 기로 앞에서 헤맬 때면 친구에게 길잡이를 부탁했다.
나 홀로 결정하기엔 당장 하나를 선택함으로써 따라올 책임감과, 다른 길을 가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가 두려웠다. 손가락으로 길을 짚는 순간 바스러져 가루만 흩날릴 다른 가능성들이 벌써부터 아까워서 손톱이나 물어뜯을 뿐 아직 발걸음은 내딛지도 못했다.
하나 생각해보면 퍽 감사할 일이다. 알면서도 가시밭길에 발을 뻗어야 하지 않아서, 그래도 아직 고민할 수 있는 선택권이 남아 있음에 감사했다.
그래도 당장 내뱉지 않으면 속이 더부룩해서 결국 나는 상한 음식을 쏟아내든 너에게 나를 털어놓았다. 가족도 애인도 아니라는 그 애매한 관계의 이유로, 너는 심지어 이 대화의 끝엔 내가 만족할 만한 해결책을 내놔야 하는 의무감을 지녔다.
근데 말이야. 사실 해결책은 나도 이미 알고 있어. 어떻게 해야 할지 알지만 그냥 투덜대는 거야, 하기 싫어서. 하기 싫은데 해야만 해서.
사실 알고 있다. 그저 나를 믿고 의심하지 않고 죽 묵묵히 하루하루를 해나가면 되는 일이야. 그저 하소연하는 거지. 네가 잘 들어주니까.
타인이 투덜대는 소리 들으라고 너의 청각 기관이 남달리 상냥한 것은 아닐 텐데. 그래도 친절한 상담사는 만족스러운 해결책을 내놓곤 뒤에 덧붙인다.
근데 모르지. 나는 제3자니까 하는 소리일 수 있지
우리가 다르다는 것을 다시금 상기시킨다. 굳이 말을 꺼내서야 우리는 서로가 서로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으니까.
제3자라는 단어는 다분히 싸늘한 줄만 알았다. 너에게 닿고자 성실하고 조심스레 쌓아 올린 탑을 한순간에 무떠뜨리고자 저 멀리서 날아온 비수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이해를 바란다는 정중함이었다. 결국 너는 제3자라서 던질 수 있는 냉철함으로 내 성장을 북돋았고, 그 물줄기를 받아 삼킬지 온몸으로 피할지는 내가 결정할 문제였다.
막상 흡수할 땐 따갑더니 지금은 마음까지 따뜻하다.
나에게 상처를 입히는 진정한 제3자는 예고도 없이 불쑥 찾아오는 법이다. 노크도 안 해놓곤 내 마음속에 몰래 들어와 잔뜩 헤집어 놓곤 인사도 없이 나 몰라라 살인 현장을 떠난다. 여기 사람 하나가 죽은 줄도 모르고.
그러니 당장은 입술 삐죽 나오도록 따갑지만 며칠 지나도 가슴속에 남는 제3자의 말은 앞으로도 꼭꼭 씹어먹어야겠다. 무럭무럭 자라고 싶으니까.
*맞춤법 표기 상 '제삼자'가 맞지만 이 글에서는 '제3자'라고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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