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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Nov 27. 2018

이거 흘리셨는데요?

당신의 치부 ☆










어느 날 길을 걷고 있는데 누군가 어깨를 툭툭 건드린다.





저기요. 이거 떨어뜨리셨는데요?





"아무래도 당신의 치부인 듯합니다. 챙기셔야죠."





아씨, 일부러 흘린 건데.





일부러 모른 척 버린 건데, 누군가 꼬집어 내 치부를 다시 손에 올려준다. 차마 고맙다는 말은 못 하겠고, 나는 그저 입을 네모나게 만들었다. 길바닥 쓰레기 틈에서 어디론가 소문도 없이 꺼져버렸으면 싶었던 나의 과거를 주머니에 넣지도 다시 버리리도 못한 채, 그저 고개만 까딱했다.










누구에게나 꽁꽁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다. 들키고 싶지 않은 생각이 분명 있다. 이날 내가 평소보다 예민했다면, 치부를 건드릴 사람을 졸지에 몰상식한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난폭성을 지닌 아주 개인적인 문제들 말이다.



내 약점이자 단점. 품고 있기엔 수치스럽고 잘 다듬어 강점이자 장점으로 만들기엔 너무 힘들 것 같아서 외면했다. 몸과 마음을 들일 바에 차라리 열정을 땅바닥에 버렸다. 이틀 밤새워 그린 그림이나 글을 보며 이 정도면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노력이 부리는 마법 효과가 기가 막힌 것은 알았지만 이 무난한 하루를 이만 끝내고 싶었다.




허점을 찌르는 말. 내 시꺼먼 속이 뒤집어졌지만 날아든 비수에 난 입도 뻥끗 못했다. 여기서 내가 피 흘리면 인정하는 거잖아. 인자한 척 고개를 끄덕여 보지만 묵과한 마음을 두 번이나 속일 순 없었다. 상처 받는 것은 당연했다. 못났더라도 내 속에서 피워낸 아이들이니까, 애정으로 키웠으니까.





무자비한 행인이 또다시 물었다. 





그래서 이제 어떡할 건데? 





잠시 망설이던 차에 그가 내 나이브한 결단을 송두리째 뽑았다. 영혼까지 빨려나가는 강렬함에 정신 못 차리는 내 손에 두 번째 기회를 쥐어줬다. 이 헛헛한 구멍에 미래의 영광을 채울지, 과거의 치욕을 숨긴 채 살아갈지는 이제 내 선택에 달려있다.



물론 과거의 치욕이란 채워 넣기 쉽다. 당장이라도 가슴이 볼록 튀어나오도록 꽉꽉 채울 수 있다. 하나 그만큼 버리기도 쉽다. 이번엔 그 누구도 주울 수 없도록 치밀하게, 후미진 골목에 버린다면 아무도 찾지 못할 것이다. 나 자신조차도. 다만 명심해야 할 사실은, 이미 떠나온 길을 되돌아갈 때는 그것을 버릴 때보다 몇 배는 힘든 결단력과 노력, 고통과 후회가 뒤따를 것이다. 



어찌 보면 내 약점을 지적해준 사람은 은인이다. 본인조차 포기했던 가능성을 알아봐 준 인생의 스승이다. 물론 할퀸 자존심에 고맙다는 말은 차마 입 밖으로 안 나오지만, 힘겹게 얻은 기회를 내 손에서 영영 잃어버리는 과거의 치욕을 남기진 말자.





나는 그런 무난한 삶을 갖고 싶지 않다.







현재 독립출판을 위한 텀블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열심히 구슬땀 흘려 만든 책이니 한 번만 보고 가주세요.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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