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상처
여행은 꼭 상처를 남긴다.
여행지에선 몰랐다. 이곳저곳 다 보겠다며 빨빨거린 덕분에 혓바늘 돋고 발바닥엔 물집 잡혔을 땐 안 아팠는데, 한국 와서 보니 나 상처 입었더라. '에이. 잘 놀다 왔는데 뭐가 힘들어.' 힘들면 안 된다며 나는 일로 여독을 풀었다.학교 갔다가 친구들을 만났고 일이 끝나면 소파와 물아일체가 되었다.
"내가 2주 전에 스페인에 있던 게 맞는 거야?"
아무 생각 없이 TV 보고 있는데 따끔, 갑자기 아팠다. 여행 상처는 마치 네 몸이 일상에 익숙해지길 기다렸다는 듯 찢어졌다. 멍하도록 나를시무룩하게 만들었다.
윽, 안 되겠다.
봉합은 해야겠으니 황급히 임시 처방으로 포토북을 꺼내왔다. 사진을 구경했다. 역시 남는 건 사진이지. 더불어 나는 친구들이 잠든 새벽에도 12색 색연필 꺼내 일기까지 썼으니 회상할 것들이 산더미였다. 한 장 한 장 넘어가는 사진과 일기장은 그날의 추억으로 변환됐다.
남들이 보기엔 평범한 빵집과 도로, 수상한 각도의 미심쩍은 표정.
나에게는 특별했던 아침 식사, 너와의 새벽 공기, 불안전한 숙소에서의 예기치 못한 웃음.
이거 나 맞아?
생소한 얼굴이 있었다, 나 되게 잘 웃었구나.
저런 표정은 머리에 뇌가 없어야지만 가능한 웃음인 줄 알았는데, 신기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저리 방끗 웃지 못하는지 씁쓸했다. 괜스레 미소를 지어보지만 고장이라도 난 듯, 입꼬리는 무거운 추를 매단 저울처럼 휘청거렸다.상처 꿰매려다 되려 실밥 터진 상황이었다.
악, 여행 가고 싶다!
그 욕망이 너무도 간절하기에, 길거리에서 조용한 대학 도서관이나 아니면 지옥 같은 1호선과 2호선 안에서 뜬금없이 괴성을 지르고 싶었다. 맛보았으니 안 먹어도 된다는 다이어트 명언은 당최 무엇일까, 나는 가봤기에 더욱 가고 싶다. 여행이란 얼마나 쾌락과 닮았는지 알아서, 여행 상처는 이렇게 불쑥 터져선 내 무료함을 괴롭힌다. 지치고 힘들어서 퍼져 있는 나를 콕콕 찌른다, 빨리 낫게 떠나자고.
여행은 꼭 상처를 남긴다.
이 상처는 여행을 다닐 때야 다시 안 아파서, 나는 결국 참다 참다 마지막까지 참아보려 주문을 외운다. “떠나고 싶다. 여행 가고 싶다. 진짜 어디든 가서 아무 생각 없이 침대에만 누워 있고 싶다, 시간 나면 관광도 하고.”
하지만 일상은 너무 아파서, 결국 참다 참다 참지 못해 예산을 짠다. 비행기 밴드를 끊어, 상처 위에 붙일 날만 고대하며 오늘도 아침에 눈을 뜬다.
"여행 좋아하시나요?"
저도 많이 좋아해서 이렇게 미국 이야기를 독립출판해봅니다.
떠났기에 만난 순간들, 책 <불친절한 여행 에세이_미국 편>을 텀블벅 통해 출간하려 합니다. 열심히 구슬땀 흘려 만들었으니 한 번만 보고 가주세요. 많은 관심과 응원 부탁드립니다 :-)
https://www.tumblbug.com/geuljimaz2ndprojec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