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왕이면 세 마리
나도 몰랐는데
내가 불쌍할지 모른다고 깨닫는 순간은,
운동한다는 핑계로 지하철 안 탈 때. 사실 1250원이 아까워서 집까지 걸어가는 거였어.
도통 작업은 왜 집에서 안 되는지, 어쩔 수 없이 카페를 가선 아메리카노를 시켰어. 사실 라테를 더 좋아하지만 넷째 자리 숫자가 3에서 4로 올라가는 그 500원이 아까우니까. 라테를 좋아하는 이유는 생략 해야겠다. 그건 꽤 많이 슬퍼질 것 같으니까.
그중에서도 가장 돈 아까운 순간은 이거지, 이어폰 새로 사야 할 때. 정품 3만 원짜리는 부담스러워서 2만 원 저렴이를 샀더니 한 달도 못 가서 금세 고장 나더라. 아예 안 들리면 버리면 끝인데, 이게 또 한쪽은 생생하게 잘 들려서 그냥 끼고 다녔어.
이것도 뭐 나쁘지 않지.
주머니 가벼운 만큼 마음만은 태산만치 넓어져서, 웬만한 불편함엔 순응하는 도인이 되었지. 근데 3일 정도 지나니까 음악만 틀면 왼쪽 고막이 찌릿찌릿하더라고. 이러다 병원비가 더 나올 것 같아서, 귀에게 휴식을 준다는 마음으로 음악을 안 들기 시작했어. 이 기회에 멜론 정기권도 정지하고 나쁘지 않지.
처음엔 이게 참 슬프더라. 세상에 불평도 많아졌어. 세상을 욕하면 마음이라도 편할 텐데, 그럴 때는 꼭 배고플 때마다 내 자존감을 깎아 먹어 살았어. 친구들 만날 때마다 오늘은 얼마 쓰겠다, 계산하면서 스트레스받았어. 직장인 된 너네 씀씀이를 나는 못 따라가는데 몇 개월 미룬 약속을 또 파기할 순 없으니까 그냥 대문을 나섰지. 내 머리가 소설 쓸 때보다 계산할 때 더 빠릿빠릿하게 돌아가는 걸 깨달은 순간은 꽤나 허탈했지.
가끔 친구들이 물어봐, 계속 이렇게 글 쓸 거냐고. 내 상황을 완벽하게 설명한 적 없는 친구에게 뭐라고 답해야 할까. 잠시 고민에 잠겼다가 답장을 해.
"아마도?"
옛날에는 자조적으로라도 "회사 관두고 시작했는데 계속해야겠지 않겠냐?"라고 답했을 텐데 요즘엔 확답을 못 하겠더라. 자꾸 취직하고 싶고 마음이 딴 데로 새고 글 쓰는 시간보다 책을 홍보하는 시간이 늘어날 때면 지금까지 지켜온 확신의 기둥이 흔들리기도 해. 그만큼 돈을 번다는 경제적 행위는 중요한 거야-모든 노동자들 힘내세요-.
그래도 글 쓰는 데는 돈 들지 않으니까. 노트북에 전기만 채워 넣으면 계속 글 쓸 수 있으니까, 지금은 괜찮아. 아마도 계속 이렇게 할 수 있을 것만 같아. 오늘도 빼곡히 쌓은 메모지를 보며 "그때 그랬었지"라고 회상할 미래를 그려봐. 미래의 그때는 치킨을 시켜먹을 거야, 그것도 세 마리쯤은 너끈히.
글이 치킨으로 변하는 마법의 주문은 아마 해리 포터도 모를 테지만 그때를 떠올려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