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첫날 베드버그에 물렸다
지금 현재, 유럽을 여행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7시간, 프라하에서는 무려 8시간의 시차가 발생하지만 친구들과는 실시간으로 떠들고 있다. 혼자 떠난 여행도 이제는 질렸는지, 부쩍 외로워질 때면 자꾸만 휴대폰을 들여다봤다. 그래도 날씨 하나는 참 좋잖아. 나는 카페에 앉아 일기를 쓰는 중간중간에도 힐끔, 고개를 돌렸다. 창밖을 내려다봤다.
05/19
“한국에 비하면 여기는 참 미세먼지 상태가 좋다. "미세먼지가 좋다"라는 말조차 어불성설이다. 여기 사람들은 Micro-dust가 뭔지도 모른다. 그런 게 어디 있냐며, 내가 장난하는 줄 알더라. 장난 아닌데. 우리나라에서는 국가적 재난 수준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이딴, 한국인 친구들이 들으면 부러워서 짜증이 날 만한 에피소드를 일기에 끄적였다. 실제로 친구들과의 대화도 "부럽다"나 "좋겠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물론 처음에는 나도 좋았다. 46일의 유럽 여행. 그 여정의 첫째 날, 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베드버그bedbug를 물렸단 사실을 깨닫기 전까지는 말이다.
처음에는 알레르기 반응인 줄 알았다. 피부가 좀 특이해야지. 나는 어렸을 때부터 피부 기묘증-손톱으로 긁으면 피부에 글씨가 써진다!-이라는 피부 질환을 갖고 있다. 남들과 똑같이 독감 예방주사를 맞아도 혼자 팔뚝이 거북이 등껍질처럼 딱딱하게 굳고 곧잘 부풀어 오르기도 했으니, 살이 조금 빨간 것 정도는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모기에 물렸나." 그냥 안일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여행의 셋째 날. 나는 독일 드레스덴이라는 도시로 이동했고, 노천카페에서 맥주를 구매하려던 차였다. 돈을 내민 팔뚝 위로 빨간 자국 두 개가 잔뜩 부풀어 오른 것을 발견했다. 이거 뭔가 이상한데. 그제야 심각성을 깨달았다.
'설마 베드버그인가.'
의심이 가긴 했다.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지냈을 때도 수시로 조심하라고 들었던 ‘베드버그’. 주로 침대에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는 크기의 벌레였다. 설마 유럽에 와서 물렸을까? 싶다가도 햇빛이 잘 안 들고 지하에 위치했던 프랑크푸르트의 숙소가 떠올랐다.
깨달은 그 즉시 나는 약국으로 향했다. 독일은 베드버그 명소인지, 약국pharmacy에 들어가자마자 바르는 연고를 찾아냈다. 연고만 바르면 되겠지, 어림짐작했던 치유 과정은 생각보다 복잡했다. 무엇보다 박멸이 가장 중요했다. 하루에 평균 100개의 알을 깐다는 질긴 생명력 덕분에 끈질기게 사람을 쫓아다니는 베드버그를 내 캐리어에서 쫓아내기 위해 나는 여행 일정의 대부분을 "세탁"에 할애했다.
세탁은 무조건 90도 이상. 패브릭 소재는 죄다 빨래통으로 직행. 캐리어에는 비오킬-스프레이-를 뿌려서 햇빛 아래에 건조. 빨지 못하는 것들은 최대한 버리고 남은 것들은 밖에 나가 탈탈 털었다. 옷들은 고온에 죄다 쭈글어들었고 나는 우산과 슬리퍼, 머플러와 양말도 몇 켤레를 그냥 버려야 했다. 또 혹시 몰라서 "베드버그 치료법"을 밤마다 폭풍 검색했다. 뜨거운 물에 씻지 말고-이왕이면 차가운 물- 바디 로션과 바디 워시는 사용 금지라고 한다.
"우울해. 어떻게 첫날부터 이래."
원망스러웠지만 원망할 곳도 없는 게 원망스러웠다. 싸다고 좋아했던 호스텔. 가벼웠던 주머니 사정을 욕하기엔 내 마음이 아프니까. 나는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숙소 리뷰에 내가 할 줄 아는 모든 언어 별로 욕을 써둘까 싶다가도, 그것만으로는 분이 안 풀릴 듯했다.
"그래도 이 정도면 괜찮으니까."
나는 거울을 확인하며 애써 마음을 다독였다. 하지만 그런 나를 비웃듯 증세는 더욱 심해졌다.
베드버그는 잠복기가 있다고 한다. 모기는 물리면 바로 상처가 육안으로 확인이 되지만, 베드버그는 상처가 발현될 때까지 이틀에서 길게는 열흘도 걸린다고 한다. 또 모기는 혈관을 단번에 포착하고 쪼옥, 피를 빨지만 이것들은 혈관을 못 찾아서 여기저기를 물고 다닌다고 한다. 덕분에 상처 부위가 더욱 넓고 그 중심에는 이빨 자국 두 개가 도드라지게 나타난다. 특히 얼굴을 물리면 그 증세가 더욱 심각한데, 시뻘건 원 위로 고름 진 구멍 두 개가 뿅 튀어나온다-그걸 여드름이라 착각하고 터뜨리는 순간 이제 헬 게이트 오픈이다-.
남들은 이틀이면 잠복기도 끝나서 바로 치료에 들어간다던데, 나는 매일매일 새로운 상처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우와. 이 새끼들이 여기도 물어놨네.”
6인 베드에서 웃통을 훌러덩 까고 확인을 해볼 수도 없고. 매번 화장실에 가서 거울을 볼 때면 입이 거칠어졌다. 하도 어이가 없어서 폭소하다 욕을 쏟아붓고 –부디 나의 분노 조절 실패를 이해해주길- 그다음에는 체념했다.
'집에 갈까.'
밖을 돌아다닐 의욕조차 나지 않았다. 햇빛이 이렇게 밝은데 직사광선 쬐지 말라, 체코 프라하-맥주의나라맥주의나라!!!-에 있는데 술도 마시지 말라, 유럽에 있는데 밀가루를 먹지 말라니. 귀국하라는 소리야 뭐야. 심지어 베드버그 놈들은 옷으로 감출 수 있는 몸통은 건드리지도 않고-아주 멀끔하다- 얼굴만 뜯어먹었다. 심지어 왼쪽 뺨은 너무 심각해서 지나가던 사람이 힐끔 쳐다볼 지경이었다.
<그래도 부러워 ㅜㅜ>
이런 상황에서 친구들에게 이런 연락을 받는다면 아무리 인심 좋은 사람이라도 화가 나지 않을까. 분명 난 좋지 않다고 말했다. 조금 우울하지만 돌아다니려고 노력 중이야,라고 돌려 말해봐도 친구들은 내 얼굴 사진을 보여주기 전까지 좋겠다는 말 뿐이었다. 그래. 어쨌든 나는 지금 유럽이고, 내 친구들은 직장에서 일을 하는 중이니까 말이다.
‘그렇게 좋아 보이나.’
나는 연필을 쥐고 있던 오른쪽 팔을 내려다보았다.
난 별로 좋지 않은데. 진심으로. 이 상처는 언제까지 곪아 터지기 직전인 상태로 있는 걸까, 혹시 다음 숙소까지 쫓아오면 어쩌지. 몇 주 후면 북유럽 여행을 위해 엄마와 합류하기로 했는데 상처가 다 낫지 않을까 봐 걱정이 되는데, 그래서 오늘도 몇 개나 짐을 버리고 캐리어를 햇빛에 말리느라 눈밑이 바들바들 떨리는데 좋아 보인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당분간 인스타그램과 카톡을 멀리하기로 결정했다.
"날씨는 또 더럽게 좋아. 욕 나오게."
그림의 떡도 이보다 잔인하진 않다. 나는 쬐지 못하는 햇빛과 마시지 못하는 맥주를 구경하며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늘 안에서 바라보는 유럽은 참 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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