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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Jun 15. 2019

카렐 교에서 콘돔을 돌려줬다







“Do you have a condom?”

“I’m sorry?” 


“죄송한데, 뭐라고요?” 혹은 “너네가 지금 제정신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니?”라는 의미를 내포한 말이었다. 뭐가 그리 신났는지 남자 셋은 진정하라는 듯 손바닥을 보여주며 다시 설명을 이어갔다.


“My friend will get married next month, and this is bachelor party. He has a task. The Task is receiving a condom from a girl."


흥분한 목소리 때문에 잘 못 알아들었지만, 이들이 다음 달에 결혼할 친구를 놀릴 생각에 잔뜩 신이 났단 사실은 알 수 있었다.


"But he failed.”


말을 들어보니 결국 이러했다. 다음 달에 결혼하는 친구와 함께 총각파티-bachelor-를 하고 있는데, 그의 미션이 여자에게서 콘돔을 받는 거였다. 서로 모국어가 아닌 모국어로 대화를 하다보니 간단한 사항조차 이해하는 데 많은 손짓발짓이 필요했다. "총각 파티"라는 것도 대충 눈치로 알아마춘 것이지 "배첼로 파티"라고 하는 줄도 처음 알았다. 내가 "Task? Like misson?"이라고 묻자 그들은 맞다며 박수를 쳤다.


“He failed several times already. So can you give him condom?”     


"내 친구에게 콘돔을 주겠니?"와 같은 부탁은 태어나서 처음이라, 무척 당혹스러웠지만 나는 손바닥을 펴 보였다. “But I don’t have it!” 그러자 그들이 번쩍 뛰었다.


“Yes. I know, I know. 알아 알아!”

“So we have it그래서 우리가 갖고 있지.”


개중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금발 머리의 사내가 주머니에서 물건 하나를 꺼내 보였다. 아니 근데 잠깐만. 네가 어떻게 알아. 있으면 어쩔 건데. 이건 또 나름대로 기분 나쁘네. 그런 생각이 울컥 들었지만 내 시선은 이미 사내의 손가락으로 향해 있었다. 은색 네모난 비닐로 살뜰하게 포정된 콘돔 포장지에는 앙증맞은 빨간색 하트가 그려져 있었다.







친구와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So you want me to pretend that I have it, right?”     


그러니까 내가 이걸 갖고 있던 척 하면 되는 거지? 라는 말에 세 명의 체코인들은 맞다고 눈을 번쩍 떴다. 이럴 거면 처음부터 어려운 미션을 내지 말지, 그런 생각이 들었지만나는 이미 세 번이나 미션에 실패한 친구를 불쌍하게 여기는 그들의 정성이 지극해서 부탁을 들어주기로 했다. 은색 물건을 집어들면서 마지막 의문점을 풀기 위해 질문했다.


"근데 이상하지 않을까? 내가 뜬금없이 너희 친구가 오자마자 "짠. 여기 콘돔이 있어. 너에게 줄게."라고 말하면서 내밀면?"


그러자 금발 친구는 웃으면서 "그럼 옷 속이나 가방 같은 곳에 숨겼다가 꺼내."라고 답했다. 아무래도 이상한데. 우리들의 대화부터 이상했다. 바보들의 행진. 이쪽과 저쪽 모두 술이 취했기에 가능한 대화가 오고 갔다. 나는 어쨌든 알겠다며 그들을 돌려보냈다. 내 작은 갈색 가방에 콘돔을 넣는 기분이 무척 생소해서 웃겼다. 그들은 카렐 교 반대편으로 뛰어가면서 "절대 티를 내면 안 된다."며 신신당부했다. 나는 “알겠어I got it!”라고 외치며 손가락으로 오케이를 만들어 보였다.


"되게 웃긴다."


친구와 나는 킬킬거렸다. 이 상황이 너무나도 재밌어서 계속 웃음이 나왔다. 







새벽에 닿은 카렐교의 밤. 강가는 꽤나 추웠다. 취기도 한순간에 날려버릴 강바람에 우리는 품에 살을 숨기며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잠깐 동안이나마 '남자애들이 우르르 몰려올 텐데 어떻게 모른 척 하지.'하는 고민에 빠졌지만 즐거운 대화에 진정 남자애들이 우르르 몰려올 때는 눈치를 못 챘다.


누군가가 다가가 왔다. 눈이 맑은 한 청년이었다. 그는 간절한 듯 눈을 반짝이며 말을 걸었다.


“Hello. Can you speak czech or English?” 


나는 “English.”라고 답했다. 눈앞의 청년은 침을 삼키는데 뒤에 있는 익숙한 남정네들은 히죽거리며 상황을 지켜봤다.


“Can I ask you something?”

“Yah.”     


이번에는 나도 간신히 웃음을 참으면서 대답했다. 청년은 무척 정중했다-아니 정중해야 할 미션이긴 하지-. 다음 달에 결혼한다던 친구들의 말이 못 미더울 정도로 어려 보였다. 그는 무척 순진한 표정으로 두 손을 공손하게 모으고는 눈을 반짝였다.


"I'm getting married in July."


뒷말은 듣지 않아도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었다. 나는 추임새로 호응을 하며 몸을 숙여 귀를 기울였다. 친구들은 세 명이 아니었는지 어느새 일곱 정도로 불어난 일행이 뒤에서 웃고 있었다. 그게 꼭 동급생을 놀리는 초등학생처럼 얄궂었다. 


"I failed for the fourth time."


이게 벌써 다섯 번째란다. 오는 길에 이미 또 한 번의 실패 기록을 경신한 모양이다. 새신랑은 간절하게 나에게 부탁했다. 그리고는 "콘돔을 꼭 주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확인만 시켜주고 돌려주겠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아니 그건 사양할게.


나는 스리슬쩍 갈색 크로스백을 앞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사실 내가 콘돔이 있긴 해.”라고 말하면서 -네 친구들이 준- 콘돔을 꺼냈다. 새신랑의 눈이 커졌다. 가뜩이나 큰 눈에 감격이 일렁거렸다.  나는 그에게 은박지를 넘기며 -너 가지라며- 돌려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Are you sure?"


새신랑이 놀랍다는 듯 물었다. 나는 정말 괜찮다고 했다-사실 내 물건도 아니고-. 그는 나에게 "네가 내 생명을 구했어.”라고 말하며 자랑스럽게 뒤를 돌아봤다. 자랑스럽게 물건을 공중에다 흔들어대며 친구들에게 “보이지?see!”라고 외쳤다. 그게 마치 새로 태어난 심바를 하늘 향해 들어 올렸던 <라이온 킹>의 라피키-할아버지 원숭이-같아서 웃음이 터졌다.


그가 팔을 벌리며 다가왔다. 나도 바로 뜻을 알아듣고 짐을 무릎에서 내려놓았다. 돌다리에서 펄쩍 뛰어내렸다. 이미 포옹하기 직전인데 그가 인사가 늦었다는 듯 “May I hug you?”라고 물었다. 서로 팔을 벌리고 있는 상태에서 뭘 당연한 걸 묻냐는 듯 나는 "Yah!"라고 말했다. 


“Congraturations on your wedding.”


결혼 축하해. 그는 고맙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떠나기 직전 그는 “진짜 콘돔 안 돌려줘도 돼?”라고 물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Have a beautiful night!"

"Thanks. you too."


총각파티 중인 남자들이 저 멀리 사라졌다. 이 모든 이벤트의 주동자인 친구 셋이 뒤로 엄지를 들어 보였다. 나와 친구도 손을 활기차게 흔들며 그들에게 인사를 건넸다.


그렇게 나는 카렐 교에서 받은 콘돔을 다시 돌려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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