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지마 Jun 11. 2019

카렐 교에서 콘돔을 받았다









카렐 교에서 콘돔을 받았다.          


의도치 않았지만 제목이 자극적이다. 하지만 사실만을 담은 문장이다. 아무런 대가도 없이 콘돔을 받아본 것은 미국 대학에서 피임 캠페인으로 콘돔을 나눠준 이후로 두 번째였다.     


그날은 6월 2일. 스페인에서는 대망의 챔피언스 리그 파이널 결승전이, 영국에서는 방탄소년단의 웸블리 콘서트가 열렸다. 내가 지금 체코에 있을 때인가. 회의감이 들었다. 가능하다면 두 곳 중 어디든 가고 싶었지만 어디도 갈 돈이 없어서 나는 그저 “프라하 풋볼 펍”을 검색하고 있었다. 커다란 티비만 보이면 입구로 달려갔지만 하나같이 만석이었다.      


“Sorry. We have no any seats.”     


너네가 언제부터 축구를 봤다고! 눈먼 분노를 거리에 분출하며 우리는 또 다른 펍을 찾아 헤맸다. 8시까지도 결승전에 대한 열기를 느끼지 못했거늘, 9시가 되어오자 대부분의 술집은 더 이상의 손님 받기를 거절했다. 그렇게 네 군데나 거절을 당했다. 결국 우리는 매번 코젤 다크 맥주를 먹으러 갔던 Kozlovna-아마 프라하를 여행한 한국인이라면 95%가 알 곳이다. 이곳의 직원들은 헤어지기 전에 “굿바이”가 아니라 “굿밤”을 외치며 윙크를 날린다.-라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이건 아니잖아.”     






티비가 내 몸짝보다 작았다. 저 천장에 달린 작은 걸로 결승전을 보겠다고 한 달 전부터 동행을 구했던 게 아니었다. 동행인 친구-2살 연하의 예쁜 여자 친구-도 나와 비슷한 생각에 빠진 듯 우울한 기분을 감추지 못했다. 유럽에서 축구 때문에 만난 우리 인연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바 테이블에 착석했다. 흑맥주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침울했다.     


한 번 물어보고 싶다. 음소거 모드로 축구를 본 적이 있는가. 보다가 하품이 나올 정도로 지루하다.     


“개미들이 축구하는 것 같아.”     


선수들 얼굴은커녕 등번호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저기에서 빨리 뛰는 선수가 우리의 07번 흥민 쏜인 것 같다고 가늠을 해야 할 정도였다. 경기는 11시쯤 끝이 났다.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2-0. 토트넘의 패배였다. 우연인지 다행인지, 가게 안에 앉은 모든 팬들이 함께 통곡하며 슬픔에 잠겼다.     


우리는 아쉬운 마음을 달리며 거리로 나섰다. 시간은 벌써 밤 열두 시. 축구 경기로-내가 뛴 것도 아닌데- 화끈하게 달아오른 체온 때문인지 벌써 숙소로 돌아가긴 싫었다. 너무 아쉬웠다.     


“우리 맥주 한 잔 마실까?”     


서로 같은 마음이었고 우리는 편의점에서 맥주 두 병을 사서 나왔다. 야경은 취향이 아니지만, 오늘만큼은 프라하의 밤 풍경 속을 걷고 싶었다. 프라하의 모든 길은 카렐 교로 향하는 걸까. 우리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자연스럽게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여행 첫날에만 해도 세심하게 관찰하고 살펴보던 동상들을 무심히 지나쳐 우리는 앉을 마땅한 장소를 물색했다.     


“여기가 좋겠다.”     


하나 둘 셋. 우리는 팔뚝으로 몸을 지탱하고 뒤로 뛰었다. 엉덩이에 까칠한 돌덩어리가 딱 맞아떨어졌다. 몸을 조금 더 뒤로 빼고서 맥주를 집어 들었다. 다리 아래로 강을 끼고 우리는 건배했다.      


친구와는 많은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녀와는 말이 잘 통했다. 우리는 남들 말로는 “여행지에서 사 오기에는 쓸데없이 무겁고 캐리어 끌 때 깨질지도 모른다는” 유리잔을 사 모으는 게 취미였고, 예술 종사자였다. 술을 좋아하고 잘 웃고 타인의 의견 결정에 너그러운 편이었다. 재수를 했고 해외에서 공부하기를 간절히 원했다. 공통된 관심사가 많으니 밤이 어두운 줄도 몰랐다. 어둠이 무서운 줄도 모르고 술을 마셨다. 축구 유니폼을 입은 사내들과 취객들을 흘려보냈다.     


그때 누군가 불쑥 말을 걸었다. 


“Hello.” 


별로 안녕하지 못했다. 이 야밤에 인사라니. 혹이 어떤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닐까 살짝은 의심하면서 남자 셋을 바라봤다.     


“Can you speak English?”

“Yah.”     


그들은 신이 나서 다가왔다. 그리고는 은밀하게 물었다.     


“Do you have a condom?”

“I’m sorry?” 


“죄송한데, 뭐라고요?” 혹은 “너네가 지금 제정신으로 그런 말을 하는 거니?”라는 의미를 내포한 말이었다.







이번에도 또한, 의도치 않게 글을 끊게 되었습니다. 어머니와 여행 중인지라 글 올리는 게 생각보다 더디네요.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 모든 글 및 이미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일단 단추 하나를 풀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