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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Oct 09. 2019

소설의 시작

삼회 차_일







이런 걸 어떻게 써?






친구가 내게 물었다. 46일간의 유럽 여행에서 쓴 소설을 막 구두로 들려준 참이다. 


무슨 뜻이야?


칭찬인지 욕인지 모르겠다. 

그녀는 점점 식어가는 파스타를 앞에 두고 눈동자를 빛냈다. 소설은 어떻게 쓰고 그런 스토리는 어떻게 떠올렸는지가 궁금하다고 했다. "너도 언제 한 번 써보고 싶어서 그런 거야?" 내 물음에 그녀가 순수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생전 처음 듣는 질문이라 당혹스러웠다. 다들 그저 감탄의 의미로 이렇게 긴 걸 어떻게 쓰냐 라는 말은 들어보았지만 그 '방법'을 진지하게 물어본 사람을 처음 보았다. 


그러게.

친구가 원하는 답이 아니기에 함부로 입을 떼지 못했다.


 덕분에 나도 소설을 쓰는 방법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문장 사이의 문맥을 가다듬고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한 단어를 찾는 게 아니라, 소설을 썼던 첫 시작이 어땠는지 떠올린다.




역시 영감을 팍 받고 쓰는 건가?




많은 사람들이 쓰는 단어; 영감. 

다들 그게 무엇인지 알고나 쓰는 걸까. 솔직히 말해 나는 명확하게 감이 안 온다. 남들이 말하는 "영감"이 아이디어, 혹은 글감이라면 그런 것 같다며, 다분히 애매하게 대답할 뿐이다. 내게 글감은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듯 머릿속에 번개 치듯이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놓치면 안 되는 것" 혹은 "금방 까먹으니 지금 당장 메모해둬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다년간의 경험을 통해 유일하게 깨달았다.


내가 회사원의 월급을 추앙하듯 내 친구는 예술의 실마리라도 붙잡고자 했다. 나는 달변가가 아니지만, 혹시 내 친구처럼 소설의 시작이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까 싶어 내 경험을 풀어본다. 세 번째 독립출판물이자 첫 번째 소설책은 이렇게 탄생하였다. 






1. 드레스덴_ 「취향」






사실 이번 여행은 글을 쓰고자 떠난 여행이 아니었다. 물론 혹시 모를 후일에 대비해 '에세이' 관련 자료를 모았을 뿐 소설을 쓸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쓰고 싶은 주제가 떠올라버렸는 걸. 


올해 9월에 독립 출판한 <유럽 단편집>에 두 번째로 실린 「취향」은 이곳에서 쓰게 되었다. 


당시 나는 드레스덴 시내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바깥은 무척 추웠고 나무 문이 두꺼운 성당 내부만 오롯이 따스했다. 문을 여느라 낑낑대던 기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관광객도 없어, 문을 지키는 노인과 유일하게 인사를 나눈 나는 조용히 성당 의자에 앉았다. 바깥은 그토록 밝고 바람 싸늘한데, 한없이 조용하고 소름이 돋도록 따스한 내부 공기가 기묘하게 느껴졌다.


여느 성당과 마찬가지로 이곳도 천장이 높았고 나는 자연스럽게 위를 바라보았다. 아치형 창문 위로 재빠르게 구름이 사라질 때면, 들이치는 햇빛에 눈이 부셨다. 눈살을 찌푸린 채 바깥을 바라봐도 아지랑이가 흔들리듯 시야가 희뿌옇게 번졌다. 물론 잘못 봤겠지만, 나는 그 높은 건물에 기대 있는 형체를 본 듯했다. 



그때부터 재미있는 상상 시작이다. 






2. 가정의 연속



만일 성당에 앉아 있기 따분한 소년이, 저기 농땡이 피우는 또래의 아이를 발견했다면 어떻게 반응할까? 과연 이 자리를 박차고 나갈 수 있을까. 그렇다면 성당을 박차고 나갈 정도로 싫어하는 이유는 뭐지. 남들이 미사하는 광경을 훔쳐보는 아이는 또 어떤 성격일까. 



나는 소년이 용기 내어 나가는 쪽을 선택했다.



둘은 반갑게 인사할까 아니면 경계할까. 같은 과거를 가졌기에 비슷한 행동을 할까, 아니면 성격이 정반대라 서로에게 끌리려나. 



나는 마치 게임을 하듯 선택을 하며 스토리를 가정한다. 이쯤 되면 등장인물들의 성격은 이미 정해져 있다-어떻게 정해졌는지는 모르겠다. 진짜 의문이다.- 그다음으로는 생각이 떠오른 곳에서 멍 때린 채 사건들을 만든다. 남들이 보았을 땐  "쟤 여기서 시간 때우네" 싶겠지만 나름 소설을 구상하는 중이다.


방금 떠올린 아이디어와 가장 비슷한 에피소드를 떠올려본다. 메모장을 들춰보기도 하지만, 대부분 비슷한 감정이나 환경에서 떠올린 것들이 잘 맞는다. 


예를 들어, 우울한 감정선이 처음부터 끝까지 그대로 유지되는 소설이라면 우울할 때 끄적여둔 메모를 다 열어서 한 번씩 읽어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때 가끔 발랄한 분위기를 넣는 것도 재미있는 반전 요소 중 하나이다. 






3. 살 붙이기



이때 나는 예전에 일제강점기를 바탕으로 한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했던  "독일소녀동맹"을 떠올렸다. 



출처 위키백과



또한 여행 직전 보았던 시사 프로그램의 어떤 주제도 떠올랐다. (이 이야기는 소설 내용을 스포할 수 있으니 말을 아낀다. 물론 독일의 소녀 동맹 이야기도 문맥상 맞지 않다고 생각하며 마지막에는 내용에서 제외했다.)




궁금한 게 있을 때마다 구글에 먼저 검색해보는 편이다



물론 아이디어가 많다고 해서 소설에 모두 덧붙일 수는 없다.  「 취향 」을 쓰면서 버린 아이디어나 너무도 많아 얼마나 아쉬운지 모른다. 시대를 일제강점기의 시작이라 할 수 있는 강화도 조약(1876년) 즈음으로 잡는다면 소설에 등장하는 카메라는 물론, 레코드 플레이어, 헤드폰과 유럽의 축구 리그는 쓸 수도 없다. 이들은 모두 전시 이후에 발명된 물건이며 발생한 상황인 탓이다.


때문에 나는 독일소녀동맹을 버리고 앞서 언급한 다양한 사물들을 대신 사용했다.






<유럽 단편집> 속「 취향 」이 '성당'이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떠올랐다면 이다음 글에서는 친구와의 대화로 떠올린 첫 번째 단편 「 못난이」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모든 사진과 그림, 글의 저작권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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