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서울] 2021.11월호 테마토크 에세이
서울문화재단 매거진 2021.11월호 테마토크 에세이 부분에 참여하게 되었답니다:-)
‘문학’을 주제로 한 이번 에세이에서 저는 소설을 쓰고, 책을 만드는 주체자로서 경험한 이야기를 풀어 놓았습니다. 다양한 작가님들의 이야기가 담겨있는 [문화+서울] 매거진은 공식 사이트를 통해 무료로 읽어볼 수 있으니 관심 있으신 분들은 아래의 링크를 통해 확인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글지마 작가는 원고를 집필해 독자의 손에 책을 쥐여 주기까지 모든 과정에 직접 참여한다. 인쇄소는 어느 곳이 적절한지, 책을 만들었는데 자신의 책을 매대에 올려줄 서점은 있을지 등 사소한 걱정을 모두 떠안는다. 힘겹지만 팟캐스트도 진행하며 동료 독립 출판 작가들의 이야기도 듣고 청취자에게 들려준다. 그가 독립 출판을 소개하고 글쓰기에 대한 소회를 말한다.
사람마다 인생의 버킷 리스트는 다르겠지만 한 번쯤 ‘나만의 책 만들기’를 꿈꿔 봤을 것이다. 나는 그 꿈을 네 번이나 이룬 점에서 어찌 보면 성공했고, 수입이 변변찮다는 이유로 모두가 뜯어말린 독립 출판을 업으로 삼은 점에서 누군가는 실패한 인생으로 여기기도 한다. 하지만 4년 넘게 독립 출판 시장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곳 작가들이 얼마나 다채롭게 문학을 ‘하고’ 있는지 생생한 이야기를 전하고자 한다.
“책 만들기가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독립 출판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다. 수강생은 예상치 못한 업무량에 적잖이 당황했다. 독립 출판 작가는 흔히 ‘1인 7역’을 소화한다고 말한다. 대형 출판사가 팀으로 움직여 처리하는 일거리를 개인이 오롯이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내 일과에 빗대어 설명하면, 나는 최소 5개월 넘게 쓴 원고를 교정교열자에게 교정을 의뢰한다. 그사이 표지를 직접 만들고 인쇄소와 조율해 인쇄 일정을 잡는다. 교정본을 전달받았다면 가독성 좋게 편집해 내지에 앉히고, 인쇄 작업을 시작한다. 그렇게 완성한 책을 판매하고자 SNS를 운영하며 책을 홍보하고, 직접 독립 서점에 입고 요청 메일을 보낸다. 이것이 한 권의 책을 출간하기까지 독립 출판 작가가 해내는 일반적 과정이다.
이렇게 할 일이 많다 보니 독립 출판 작가 중에는 N잡러본업 외 여러 직업을 가진 사람가 흔하다. 도자기 만드는 일러스트레이터, 소설 쓰는 기자, 동화 그리는 선생님 등 “아무도 내 책을 내주려 하지 않는다면 직접 만들겠다”라는 개인의 의지가 한데 뭉쳐 지금의 독립 출판 시장을 형성했다. 각기 다른 경험을 가진, 다양한 연령대의 작가가 모였으니 이곳의 분위기는 유독 다채롭다. 오늘은 또 어떤 작당 모의를 해볼까 고민하며 문학을 자유롭게 사유하고, 책을 좋아한다면 누구든 작가로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는 독립 출판의 수용적 태도가 무척 사랑스럽다.
그리고 나는 이러한 시장의 ‘편견 없는 문화’의 수혜 대상이었다. 2017년 겨울, 첫 번째 에세이 《미국, 로망 깨기》를 내고자 나는 참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그때의 나는 영문과 출신의 ‘취준생’으로, 글 편집이나 인쇄에 관한 상식이 0에 수렴했다. 그렇다고 직장 선배의 노하우나 회사의 도움도 없었기에 직접 발품을 팔아야 했다. 나는 독립 서점을 전전하며 사장님(출판사에서 일했던 분이 퍽 많으시다)들께 자문했고, 인쇄 용어나 용지에 대한 것은 인쇄소 기장님께 알음알음 물었다. 그래도 모자란 지식은 출판업 관련자의 강의를 통해 틈틈이 채웠다.
이러한 과정에서 독립 출판 작가들은 ‘문학을 한다’부터 ‘책을 만든다’는 행위까지 경험하며 창작의 세계를 확장하는 게 아닐까. 다만 이런 자부심과는 별개로 현실적인 고비는 매년 찾아왔다. 그중 가장 힘든 점이라면 역시 ‘일정치 않은 수입’이었다. 지인들은 파트타임 근무를 병행하라고 추천했지만 나는 독불장군처럼 책 주변만 맴돌았다. 점심 값도 안 나오는 적은 원고료라도 좋으니 어떻게든 글을 쓰며 수익을 창출했다. 옹고집처럼 보였을지 모르지만 당시의 나는 독립 출판과 치열한 줄다리기를 하고 있었다. 만일 ‘월급’이란 구단주가 구원의 손길을 내민다면 홀랑 이적할 것만 같았다. 이 힘겨운 사투에서 도망칠 게 불 보듯 뻔했다.
이런 상황에서 나는 매달리듯 글을 쓴다. 미래가 불투명해 불안할수록 더욱 원고를 꽉 붙들었다. “지금 내가 좋은 글을 쓰고 있나?” 문득문득 의심이 들지만 일단 쓴다. 방금 뱉어낸 문장의 가치를 처음부터 고민하면 별로일 게 분명한 초고는 절대 끝마치지 못하니까. 나는 출산 경험이 없지만, 한 권의 출간을 한 아이를 키워내는 것에 감히 비유해 본다.
작가는 콘텐츠를 잉태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책에 쓰일 종이의 종류·무게·질감, 그 위에 적힐 글자의 서체·색깔·크기 등을 고심해서 결정한다. 그렇게 정성 들여 보듬은 아이가 포장 옷을 입고, 서점에 들어가 좋은 친구들을 만나길 바라는 마음까지. 내게 독립 출판은 한 명의 아이, 하나의 우주를 탄생시키는 것이다.
물론 창작은 고통스럽다. 내 경험으로는 소설 쓰기가 바느질 같아서, 장면과 장면을 매끄럽게 이으려면 바늘같이 뾰족한 문장으로 수십 번 옷감을 찔러야 한다. 단어를 쓰고 지우고, 문장을 바꿔 이어 붙인 궤적이 울퉁불퉁해도 소설 한 편이 완성된다. 팔목 아프도록 고된 노동이 지긋지긋한 것과는 별개로 나는 글쓰기가 정말 좋다.
느닷없이 찾아온 ‘영감’님이 머릿속에 옜다 던지고 간 글감을 글자로 구현했을 때 벅찬 감동을 느끼고, 원고의 마지막 문장에 마침표를 찍는 성취감을 잊지 못해 오늘도 글을 쓴다. 소설 《달에서 내려온 전화》 속 ‘작가의 말’에서도 밝혔듯 “이제 내게 이야기를 짓는다는 것은, 개인의 의지를 떠나 마치 신의 지시처럼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출발선은 있어도 도착점을 알 수 없는 이 마라톤 여정을 응원해 주길 바란다.
글·사진 글지마
작가는 ‘글쓰기를 멈추지 마’라는 뜻의 필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에세이 《미국, 로망 깨기》 《불친절한 여행 에세이》, 소설 《유럽 단편집》 《달에서 내려온 전화》를 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