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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Apr 23. 2016

가끔, 스스로가 초라할 때가 있다

유난히 긴 하루를 보낸 늦은 밤


가끔, 스스로가 초라할 때가 있다

가끔, 스스로가 초라할 때가 있다

 -유난히 긴 하루를 보낸 늦은 밤-






가끔 내 스스로가 초라할 때가 있다. 


생각보다 더운 날씨에 

긴 팔을 걸쳐 입은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평소보다 분위기가 눅눅한 친구와의 대화에 

덩달아 나도 우울해지는 그런 날이 있다. 


장 본 영수증 가격에 

우울한 어깨로 마트 봉다리를 양 손에 들고, 

끼니를 놓쳐 텅텅 빈 속이 

흔들리는 버스를 따라 울렁거린 채 집 앞에 도착한다.


손금을 죄는 봉다리에 

걸음이 느린 나를 지나쳐 내린 여자가 

정류장 앞에서 기다리던 친구와 하하호호 떠들며 

나보다 빨리 집으로 사라진다.


나는 아무도 반기지 않는 집에 불을 켜고

터덕터덕 곧장 방으로 향한다.

치울 거리만 산더미인 내 방 침대에 걸쳐 앉아 

시리얼 그릇에 우유를 부운 채 플라스틱 수저로 저녁을 먹는다.

한 손으론 휴대폰을 켠다.


여행 떠난 친구들의 게시글이 뜬다.

차마 부럽단 댓글조차 달지 못한 채

난 손가락으로 사진을 힘껏 내린다.


어깨 뻐근하게 땡겨오는 늦은 밤,

아주 가끔,

내 스스로가 초라할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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