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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Apr 01. 2018

지하철에선 책을 읽지 마세요

오지랖 넓은 감시자




지하철에선 주로 책을 읽는 편이다.


빈둥거렸던 나날에 대한 죄책감으로,

약속이라도 잡히는 날이면

지하철에선 주로 책을 읽는다.


혼잡한 환경에서의 독서란

첫째,

영상을 보는 것보단 고도의 집중력이 필요해서

어느새 고요해진 출근길에 나만 남는다.

둘째,

글을 쫓느라 찌푸려진 인상 때문에

사람들이 멀어진다.


그런데 오늘

더이상 지하철에서 책을 읽지 말아야하나,

는 생각이 들었다.


평소처럼 전철을 갈아타는 중에

에스컬레이터에 멈춰 서 책을 읽고 있었다.

봄에 맞춘 음악이 살짝 귓가에 아롱거렸고,

책의 내용은 무척 좋아서 밑줄을 긋고 있을 때

시끄러운 통화소리가 들렸다.


“저 어떤 남자가 여자분 계속 쫓아오고 있거든요?”


도저히 무시할 수 없는 소리 뒤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이어폰을 빼고 뒤돌아봤다. 대학생 쯤 됐을까. 눈물 젖은 빰을 손등으로 쓸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그녀 뒤로는 든든한 표정의 어머님과 험상 궂은 얼굴로 통화 중인 사내가 보였다.


난 너무 당혹스러워 울고 있는 소녀의 손을 붙들었다. 이럴 때 할 말은 아니지만, 이것 밖엔 할 말이 없어서.


“아니, 왜 울어요. 괜찮아요?”


그분은 눈물을 도롱도동 떨어뜨리면서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보고 있는 내 마음이 안쓰러워서 등이라도 토탁였다.


“아니요. 지금 계속 쫓아오고 있어요.”


성난 남자가 경찰과 계속 통화를 하고 있었다. 속절 없이 에스컬레이터가 짧아졌고, 두 갈래로 나뉜 길을 보며 안절부절 못하고 있을 때 어머님이 그녀의 종착역을 물었다. 다행히 같은 길이지 든든하게도 같이 가주겠다고 말하셨고, 나는 애써 안심하면 반댓길로 발을 돌렸다.


내가 지금 책을 읽을 때일까.


며칠 전 휴대폰을 보다 잠깐 든 고개로 목도한 장면을 기억한다. 나와 똑같이 화면을 들이다보느라 뒤를 놓친 여자의 목덜미 냄새를 맡는 남자를 발견했다. 처음에는 우연일 줄, 두 번째는 대신 화가 치밀었다. 발걸음을 때려도 할 때 지하철이 들어왔다.


아무렇지 않게 종결된 상황에 남자는 노약자석에 착석했고, 평범한 50대의 얼굴로 돌아갔다.


내가 지금 책을 읽을 때일까.

혹은

누구도 원치 않을, 오지랖 넓은 감시자가 될 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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