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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May 13. 2018

첫 번째 책이 이렇게 끝납니다

시원 섭섭보단 후련 통쾌합니다.




장작 5개월에 걸친, 제 인생의 첫 번째 책 출간하기가 이렇게 끝이 났습니다.


제가 1인 출판으로 책을 낼 줄도, 그 책이 소설도 아닌 생각에도 없던 제 이야기일 줄도, 아니 그것보다 정말 앞날 무섭게시리 작가의 길에 들어서게 된 것도 어디서부터가 시작인지 모르겠습니다.





면접을 보기 위해 정작을 입기엔 더웠던 여름도, 단정한 복장 위에 걸치긴 애매해서 한 팔에 코트를 걸었던 작년의 겨울을 지나 어느덧 다시 여름이 다가옵니다. 제 봄은 어디 가고 책 한 권이 놓여있습니다.


아침형 인간인 제가 뻐꾸기처럼 밤을 지새우고, 가끔은 건조한 날씨에 코피도 쏟고, 라텍스 쿠션의 보조에도 견디지 못한 허리 때문에 구부정한 자세로 카페 카운터에 기대기도 했습니다. 성격도 예민해져 가족들에게 실수하기 전에 방에 들어갔고, 밀려오는 스트레스에 험한 말이 나오려는 입에 달달한 사탕을 넣었습니다.





지긋지긋하다, 이딴 짓 다시는 안 해야지. 입으로는 온갖 일탈을 다 하면서 이거 끝나면 무슨 소설 써야지, 빨리 끝나고 다른 글 쓰고 싶다고 생각하는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것 같아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죠.


진심을 다해 '토 나오게' 글을 써서 책 견적을 보고, 인쇄소를 들려 감리를 봤습니다. 혹시나 배송 날짜를 못 맞추진 않을까 빨리 어린이날과 대체 휴일이 끝나길 기도했고 생각보다 빨리 책을 받았습니다. 이 놈의 급한 성질을 이기지 못해 승모근 바짝 서도록 손수 라벨을 붙인 택배 봉투를 캐리어에 담아 우체국으로 쏜살같이 갔스비다. 양 손에 든 수십 권의 책보다 어깨에 짊어진 책임감이 더 무거워서, 한시라도 빨리 내려놓지 않으면 초조해서 손톱을 가만히 놔두지 않을 것 같아 그랬습니다.


배송을 마치고 영수증을 받았습니다. 두통에 아찔하게 아팠지만 끝났다는 해방감으로 기운을 차릴 수 있었다, 는 말은 거짓말이고 하루 온종일 몸이 뻐근해서 죽는 줄 알았습니다. 배송이 끝나면 왜 모든 것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을까요. 


택배비를 많이 받으면 혹여 책을 안 사실까 두려워 일반 소포로 보낸 책들이 마음에 걸려 몇 시간 우울했습니다. 책이 터져서 도착해있으면 어쩔까, 기껏 기다리셨을 텐데 그렇게 배송된 애들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하실까. 등기로 보내지 못한 그때의 주머니 사정이 한탄스러웠습니다. 급하고 서툰 마음에 실수를 했단 사실을 전해 들을 때면 송구한 마음이 큽니다.


처음이라 그럴 수 있다고 친구들을 다독이지만, 그럼 제 첫 출간과 책과 배송의 손님이 되신 분들은 무슨 죄일까요. 안타까운 마음에 더 완벽한 다음을 기약해봅니다.




첫 번째 책이 이렇게 끝이 납니다. 지긋지긋하게 쓰고 고치고 또 쓰고 또 고쳤던 책은, 아마 다음 이야기를 쓸 때나 다시 열어볼 것 같습니다. 스스로를 비평하는 시간을 잠시나마 미루어봅니다. 


지금 당장은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습니다. 벌써 달리고자 스케줄을 짜 놓았지만 멍만 때리고 있네요.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지금이 기적과 같은 순간입니다. 일단은 일주일이라도 여행을 다녀올 생각입니다. 빌어먹을 뼈 빠지게 고생했는데도 해외여행은 꿈만 같아서, 더 꿈만 같은 소설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하러 진해에 갑니다. 정말 놀랍게도 여행 갈 계획조차 세우지 않았네요. 아마도 구경하고 싶은 지방의 독립서점을 따라 이동하는 진귀한 여행이 될 것 같기도 합니다.


그 여행을 떠나기 위해 아직 이 주나 남았고, 그 이주 동안 하루를 빼고는 5개월의 밀린 인연을 만나는데 다 소비할 예정인지라 아주 두렵네요. 친구들을 만나는 중에도 책 읽고 싶고 글 쓰고 싶어서 엉덩이를 달싹거리는 제가 상상돼서 벌써 힘듭니다.


브런치에 열심히 돌아오겠습니다. 

언제 글로 밥 벌어먹고 살지 모르겠지만 그때까지 함께 해주신다면 정말 감사할 것 같습니다.







p.s. 다음에는 험난한 세상살이에 대한 단편 소설로 돌아오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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