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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Jun 11. 2018

속초 하루_1. 북스테이 완벽한 날들

강원도 여행 DAY 1

자연에 둘러 싸인 듯하다, 언제나 그렇겠지만



뚜벅이 여행이 가능했던 속초. 
마치 자연에 둘러 싸인 듯했다,
언제나 그렇겠지만




* 초록색 점 = 버스 / 나머지는 도보 거리

강원도 여행

속초 1일 차 일정_1

 - 속초 터미널 도착

 - 완벽한 날들(북스테이) 체크인

 - 등대 해수욕장

 - 봉포머구리집 (점심)

 - 영랑호



이번 여행만큼 사전 조사와 준비를 안 했던 여행이 있을까. 해외여행은 아무리 즉흥적으로 떠난다 하더라도 불안감 때문에 비행기 이륙 진전까지도 휴대폰을 두들기곤 했는데, 이번에는 정말 아무 생각이 없었다. 


다음날 9시 차를 타기 위해 부천 소풍 터미널로 가야 하는데 12시까지 짐도 싸지 않았다. 그제야 먼저 거실에 캐리어를 펴둔 채 방을 훑어보았다. 매번 가방에 넣었던 물건들을 익숙하게 던져 넣었다.




필름 카메라와 즉석 사진기, 급하게 구매한 온갖 필름들을 백팩에 넣으면 끝. 이제 여행지에 어울리는 책을 고를 차례다. 이번 여행지에서만 서점을 세 곳이나 들린 예정이기에 두꺼운 책은 절대 금물이었다. 몇 달째 책장에 붙박이처럼 붙어 있는 작가 한나 아렌트의 책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노르웨이의 숲을 읽고 싶었지만 단호하게 제쳤다. 


결국 손에 든 것은 얼마 전, 굴포천 근처에 위치한 서점; 사각지대에서 중고로 구매한 작가 오스카 와일드의 「별에서 온 아이」 단편선을 집어 들었다. 역시 펭귄 클래식 책을 가벼워서 여행지에서 읽기 제격이다.


노트북은 챙기지 않았다. 등껍질을 떼놓은 느낌이 아주아주 불안했지만 이번만은 챙기고 싶지 않았다. 손이 근질근질하면 손으로 쓰지 뭐, 그런 생각으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5월 29일 오전 9시. 

부천 소풍 터미널에 도착. 4천 원 더 비싸게 준 우등버스 안에는 나밖에 없었다. 비수기에 떠나는 여행의 묘미는 이런 것이다. 전세 낸 듯 나 홀로 차지한 버스가 신나게 고속도로를 달렸다. 


눈을 뜰 때마다 늘어나는 승객들의 북적거림을 느끼며 어느새 휴게소에 도착했다. 15분가량 짧은 휴식을 느낄 수 있는 것도 좋지만 휴게소는 마치 이제 곧 목적지에 도착한다는 소식 같아 하차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홍천 휴게소였다.

내가 뚜벅이 여행객만 아니었다며 이곳에서 더 긴 시간을 보냈을 텐데. 겹겹이 쌓인 나무 숲 뒤로 산등성 위에 소복이 안개가 깔렸다. 사실 이게 미세먼지인지 안개인지 확신은 들지 않았지만 그 순간 뭐든 상관없었다. 



계속 계속 보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속초로 갈 시간이다.


남은 40분을 달려 속초 터미널에 드디어 도착했다. 친구가 올 이틀 뒤까지 홀로 머물게 될 숙소는 '완벽한 날들'이었다. 숙소를 찾으려고 네이버 지도를 켰는데 아주 당황스러웠다. 그냥 고개 돌리니 그곳에 완벽한 날들이 요기에 보였다.





'완벽한 날들'은 사실 서점 겸 게스트하우스다. 이렇게 책으로 둘러싸인 공간에서 머무는 것을 '*북스테이'라고 하는 모양인지, 나도 속초의 서점을 검색하다가 알게 된 곳이었다. 


*구글에 '북스테이Bookstay'라는 합성어를 검색해봐도 결과가 없는 것을 봐서는 한국에서 형성된 아주 바람직한 문화인 모양이다. 책을 담은 책장으로 테마를 잡은 호스텔(Bookself themed hostel in Tokyo) 정도가 검색됐다.


숙소 한편을 가득 매운 방문객들의 한 마디들.


책과 떼어놓을 수 없는 고요함이 친구처럼 쫓아온 공간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또한 6인실을 이틀 동안 무려 혼자 쓰게 된 것을 보아 이번 여행의 콘셉트는 -나도 모르는 새- 정말 '나 홀로' 속초인 모양이다.


짐을 훌쩍훌쩍 벗어던지고 필요한 물건들만 챙겨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완벽한 날들을 나섰다.





혼자 떠나는 여행은 이래서 좋다. 길을 잃어도 내 탓, 길쯤 잃어도 어때. 여기선 조금 멈추고 싶어, 그렇다면 눈치 없이 발만 멈추면 된다.


꼬불꼬불, 익숙지 않던 길들을 두세 번 헤매다 보면 어느새 내 머릿속에 **지도가 하나 그려진다. 그 위에는 커다랗게 '속초 여행'이라는 제목을 달고 내 기억에도 길을 새긴다. 여행지에서 현지인처럼 살기, 별 거 없다. 그냥 주민처럼 걷다 보면 어느새 주민처럼 걷고 있다. 


(**길치인 내 친구들인 이해를 못하는 부분인 듯하다)







목적지를 등대해변으로 찍고 걷지는 않았지만 밥 먹으러 가다 보니 해변이 보였다. 초미세먼지가 상당히 나쁜 날에도 예쁜 옷 차려입은 사람들은 그들만의 휴식을 만끽하고 있었다. 


바닷물이 이렇게 푸르다니.


서해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도 동해 근처에서 살고 싶다고 절실히 생각하며 속초에서 물회로 유명한 밥집을 찾아갔다.




나에게 있어서 여행 지출의 우선순위는 그 나라에서만 즐길 수 있는 문화생활과 관광, 그리고 기념품 구입이었다. 숙소야 너덜너덜해진 몸을 눕힐 수 있다면 어디든 상관없었고 밥이야 배에서 소리 안 날 정도로만 채우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이게 바로 여행지에서 만난 언니들이 내게 내렸던 예언이 들어맞기 시작한 것일까. 그때보다 두 살 더 먹은 나는 일반이 아니라 우등 버스를 탔고 생각보다 5천 원 더 비싼 숙소를 예약했으며, 점심 한 끼에 무려 1만 9천 원이나 썼다.


모둠 물회의 맛은 좋았다. 혼자 온 덕분에 창가에 앉아 바다도 마음껏 구경할 수 있었다. 다만  평화로운 내 혓바닥에겐 음식이 조금 간간했다.




바로 옆에, 정말 바로 옆에.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앵커 커피를 놔두고 나는 일정의 밸런스를 위해 일단 보광사를 보고 오기로 했다.


버스에서 세 시간 내리 잤기 때문인지, 나 답지 않게 체력이 넘쳐흘렀다. 앵커 커피에서 보광사까지 걸어서 대략 26분. 초행길이니 아마 그것보다 조금 더 걸릴 거다. 버스를 타기에 적절한 시간이었지만 왠지 끌리지 않아 그냥 걷기로 했다. 가는 길은 마침 영랑호를 끼고 있다.




속초는 사람이 무척 많을 줄 알았다. 


주말 나들이로 애매하게 좋은 속초.
먹거리가 넘치는 동해의 항구 도시. 


하도 많은 사람들이 다녀온 유명지이기에 평일도 복작거리는 사람들도 넘쳐날 줄 알았다. 하지만 숙소 체크인할 때 만난 사근사근한 성격의 스태프 님의 말대로 평일의 속초는 무척 조용했다. 거리에는 피톤치드를 들이마시며 산책로는 걷는 주민들 뿐이었다. 그들 사이를 걸으니 나도 속초인이 된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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