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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Jun 12. 2018

속초 하루_2. 보광사와 영금정

강원도 여행 DAY1.




* 초록색 점 = 버스 / 나머지는 도보 거리


강원도 여행

속초 1일 차 일정_2

 - 영랑호

 - 보광사

 - 블루앵커커피로스터즈(앵커 커피)

 - 영금정 (+ 영금정 해돋이 정자)

 - 속초 중앙시장 (아바이 순대, 옥수수 막걸리)






눈이 푸릇푸릇, 온통 푸릇푸릇했다. 자연이 파란색과 초록색을 품고 있는데, 푸르다는 말은 그 둘을 담고 있어서 무척 예쁘다.



영랑호 주변을 많이들 산책 삼아 돌아다니는지 잘 만들어진 자전거 도로가 왼쪽에 깔려있었다. 나는 좀 더 영랑호에 가깝게 걸었다. 보행자를 배려한 숲길이 눈앞에 나타났다.






종교는 없지만 사찰이 있다면 무조건 들리는 편이다. 어린 시절, 주말마다 아빠의 차에 억지로 올라타며 등산을 할 때면 숲 속 깊은 곳에 숨겨진 절 안에 신발을 벗고 올라서곤 했다. 아빠를 따라 손바닥을 위로 들고 엄마가 준 지폐 한 장을 커다란 나무통에 집어넣고 도도독 걸어 나왔다.


그 기억 때문일까, *종교는 없지만 사찰에 들리면 할머니 드릴 염주를 구매하는 편이다. 


*서유럽 국가를 여행할 때 성당을 들리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본다.



스님도 보살님도, 누구 한 분 보이지 않는 보광사 한가운데 연못**이 하나 있었다. 자세히 보지 않아도 연꽃잎이 못에 고여 있었고 그 중심으로 향하는 곳엔 석탑 하나가 있었다. (사실 석탑이라 할지, 건축물, 혹은 어떤 단어로 이것을 불러야 할지 잘 모르겠다.)


** 찾아보니 이 연못을 보광지라고 한단다.



연못 건너편에는 대웅전이 크게 자리했다. 대웅전 오른쪽에는 명부전, 왼쪽에는 와불이 보였다. 강한 바람에 꺼졌는지 불교 신자들이 향에 부칠 촛불을 꺼져 있었고 어둡게 내려앉은 소나무 가지 사이사이로는 빨간 연등이 듬성 보였다.


새소리마저 크게 들리는 보광사에서 고즈넉한 시간을 홀로 보내려니, 오늘 아침 지하철에서 만났던 출근길의 직장인들에게 미안할 뿐이었다.





왔던 길을 되짚으며 다시 앵커 커피로 돌아왔다. 횟집 옆에 붙어있는 앵커 커피의 평범한 외관을 무심코 지나치지 않는다면 내부의 멋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다. 



겉과 속이 달라서 멋진 사람과 친해지는 기쁨이랄까.



이곳은 워낙 속초 '분위기 카페'로 유명하다고 한다. 그래서 안 오려고 했는데 안 왔다면 후회할 뻔했다. 내가 갔을 때는 이른바 '오션 뷰'만 사람들이 차지했을 뿐 한산했다. (그럼에도 시끄러운 분위기는 감내할 법했다.)



오후 12시를 넘어서고, 오늘 내리 걷기만 해서 이 짧은 휴식이 고마웠다. 고맙게도 휴대폰 배터리가 얼마 안 남았으며, 더욱 고맙게도 펜도 안 챙겨 와서 정말 가만히 바다만 바라봤다.


그리 가깝지 않은 이곳까지 파도 철썩 방파제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 좁은 도로 쏜살같이 달리는 차 소리가 들렸고 횟집에서 배불리 먹은 관광객들의 만족스러운 웃음소리도 깔깔 들렸다.


속초에 놀러 와 침묵과 고요를 배우고 있다.






영금정 가는 길도 그냥 걸었다. 이왕 시작한 뚜벅이 여행, 뚜벅이로 끝내겠다는 각오는 없었지만 버스 타는 게 귀찮아서 그냥 걸었다. 비행기 모드에서도 열심히 내 위치를 알려주는 내비게이션을 따라 걸었다.


사실 저 멀리 보이는 암석 꼭대기의 정자와 바다로 뻗은 다리 덕분에 지도는 없어도 됐다. 조금은 경사진 계단을 따라 오르니 정자가 눈앞에 있었다.



영금정이란 현판이 붙은 정자에서는 동명 해교로 이어진 영금정 해돋이 정자도 보였다. 이렇게 말하니 뭐가 뭔지 헷갈릴 정도였지만, 역사에 따르면 더 이상 '영금정'은 없다. 


*** 영금정은 동명항 끝자락에 위치한, 정자를 닮은 모앙의 바위였다. 그 바위산은 날카로운 암벽 사이로 파도가 몰아칠 때마다 신비한 거문고의 울음소리를 낸다 하여 그리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하지만 영롱한 거문고 소리를 냈던 바위산은 일제 강점기 때 속초항 방파제를 짓기 위해 폭파되었으며, 정자의 옛 소리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담아 정자를 지었다고 한다.

  


*** 죽기 전에 꼭 가봐야 할 국내 여행 1001 참고




그러니 이 녀석은 영금정이지만 역사적으로 실제 해야 할 영금정은 사라졌으며, 그 전 사진의 바다 위에 놓인 정자의 이름은 '해돋이 정자'인 것이다.


요즘 일제 강점기 때의 시대상을 알기 위해 책을 몇 권 읽고 있다. 역시 인류는 좋은 것보다 나쁜 것을 빨리 배운다. 일본은 우리보다 빨리 미국의 의해 강제로 개항을 당했다. 일본은 이 수모를 잊지 않고 그들의 '****제국주의적 팽창정책을 고스란히 수입'하며 대한제국을 강탈했다.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봐.


악습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더 교묘하게 몸짓을 키워 대물림된다. (일제가 대한제국에게 행했던 잔혹한 수탈의 역사를 악습이라 이름 짓기엔 그 무게가 너무 가볍다고 생각이 들지만) 이 꼬리를 끊는 것은 그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에게 주어진 최대의 시련과도 같으며 풀어야만 하는 과제이지 않을까. 


**** 「한 권으로 읽는 일제강점실록」 참고.



이제는 도저히 들리지 않는 거문고 소리를, 바다에 꺼진 바위에 부딪혀 거칠게 흩어지는 파도를 보며 씁쓸하게 상상해본다. (울산 대왕암에서는 언뜻 들었던 것 같아 그때의 기억을 최대한 끌어내려 노력했다.)




계속 바라보고 싶은 속초의 퍼런 바다를 뒤로 하고 주린 배를 채우고자 시장으로 발길을 돌렸다. 하루 종일 먹은 거라곤 물회와 커피뿐인지라 허기졌다. 속초엔 정말 맛있는 게 많다고 하는데. 내일모레 속초에 도착하는 친구 때문에 '중앙 시장'에서 가장 유명한 만석 닭강정은 아직 먹지도 못하고 뭘 먹을지 무척 고민이었다.



수산 시장을 지나 안으로 들어오니 누런 조명의 닭강정 거리가 펼쳐졌다. 사람들 손에는 흰색 노끈에 묶인 도톰한 흰색 박스가 보였고 그 위에는 '만석'이 쓰여있었다. 나는 먹지도 못하는 거, 빨리 걸음을 옮겨 오징어순대 집 앞에 줄을 섰다. 딱히 당기는 것도 없고 식도락을 즐기는 편은 아닌지라 후다닥 오징어순대 8천 원 어치와 호박 식혜를 사 나왔다.





숙소에 도착했다. 오징어 냄새가 굶주린 나에겐 천상의 내음이었지만 1인실에 머무는 손님에게는 코릿한 양말 냄새보다도 더 심기를 건드릴지 모른다는 생각에 후다닥 주방 테이블에 팔꿈치를 들이밀었다. 젓가락으로 오징어순대 하나를 집어, 어머님이 꼭 여기에 찍어 먹어야 한다는 젓갈에 콕 찍어 입에 털어 넣었다.


"맛있어! 시장(;배가 고픔-이 단어는 쓸 때마다 시장이 왜 반찬이 되는지 혼돈스러웠던 내 유년 시절이 떠올라서 지금까지도 되게 재밌다-)이 반찬이라더니. 내일은 옥수수 막걸리를 마셔봐야겠다."


그렇게 무의식적으로 흘러가는 사고를 놔둔 채 나는 입에는 오징어순대를, 눈에는 글자를 넣으며 빨리 잠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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