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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Jun 14. 2018

속초 이틀_1. 동아서점과 속초 중앙 시장

강원도 여행 DAY 2.




강원도 여행

속초 2일 차 일정_ 1

 - 완벽한 날들(숙소, 서점은 화요일 휴무)

 - 청초호 호수 공원

 - 석봉 도자기 미술관 (9시 30분 개장)

 - 동아 서점 (서점)





너무 일찍 일어나버렸다. 어제 오스카 와일드의 「행복한 왕자」를 읽다 말고 잠에 든 탓이다. 어제 읽은 것은 어릴 적-몇 살이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 옛날에- 보았던 애니메이션 <행복한 왕자>와는 사뭇 달랐다. 안데르센 동화를 커서 잔혹 동화로 읽었을 때의 충격과 비슷하달까. 



행복한 왕자는 말투가 유려하고 마음씨가 곱지만 제비에게 있어서는 나쁜 놈이 아닐까 싶다-책에는 더 심한 말을 썼지만 나쁜 놈으로 순화해본다-. 아니 제비가 따뜻한 나라로 떠나겠다는데, 안 가면 죽는 것은 당연한 복선인데 계속 붙잡는 왕자가 처음에는 얄미웠다. 네가 움직이지 못해 제비에게 '간절한' 태도로 부탁을 하는 것은 알지만, 내 마음이 아파서 그래.


이 책은 꼭 그렇다. 생택쥐페리의 「어린 왕자」 같다.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어른들인데 정작 아이들이 읽고 있다. 오스카 와일드 또한 여러 개의 단편선에서 당시 *빅토리아 시대에 아동의 인권이 어디까지 떨어졌는지를 보여주며 비판하고 있다. 



*영국의 빅토리아 시대(18세기 무렵)를 이야기하자면 참 끝도 없게 재밌지만-왜 문학은 고통과 번영의 시대에 꽃 피우는가- 정말 끝이 없을 것 같아서 이만 말을 줄인다.



완벽한 날들 신발장


아침을 챙겨 먹고 낮잠까지 잤는데 아직도 오전 8시 30분이었다. 하루를 빨리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숙소를 나섰다. 무척 이른 아침이라 서점도 카페도 열지 않았기에 일단 9시 30분 오픈인 '석봉 도자기 미술관'에 가자고 즉흥적으로 결정했다.




여기 아침이 반짝거린다. 


더없이 아름다워서 한참을 서성거렸다. 새벽 공기 갓 사라진 아침이란 참 소중해서, 오랜만에 만나니 벅찬 감정이 주체가 안 됐다. 


오늘은 수요일. 휴무였던 어제는 구경 못했던 '완벽한 날들'을 오늘은 구경할 수 있다. 내 생일은 어제였는데 만날 때마다 선물을 까먹는 친구 때문에 기대감만 잔뜩 사이는 기분이다. 




왠지 모르겠지만 속초에는 장미가 많다. 햇살이 비추면 예쁜데 어딘가 에부수수하다(;정돈되지 아니하여 어수선하고 엉성하다). 두세 번 걸었는데도 '장미길'이라 이름 붙여진 줄도 몰랐던 도로를 지났다. 낮은 주택들이 산을 타고 줄줄이 나타났다.


 이곳엔 높은 건물도 별로 없다. 한창 하늘을 향해 솟고 있는 헐벗은 콘크리트 고층 빌딩은 있어도 대부분의 건축물은 산등성이를 침범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이토록 평화로운 속초인데, 주말엔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 도저히 상상이 안 된다.



청초호로 향하는 길에는 오징어 잡이 배도 발견했다. 밤에 더욱 환히 빛나는 배의 선원들은 아침부터 바삐 움직이고 있었다. 5월 날씨에 30도를 넘어서 쨍쨍한 햇빛은 그들의 얼굴을 검게 그을었다. 타지에서 온 젊은 여자 하나가 예스러운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있으니 수상했는지 모자에 가려진 눈빛이 날카로웠다.


후다닥 카메라 렌즈를 숨기며 나는 청초호로 향했다.




사실 이곳 또한 계획엔 없던 장소다. 미술관에 일찍 도착한 탓에 시간을 때울 곳이 필요했는데 눈앞에 청초호와 작은 정자가 있으니 아주 마땅했다. 먹구름 낀 하늘처럼 호수 수면에 휘날리는 바람도 강렬했고 덕분에 내 옷깃도 푸다닥 소리를 냈다.


저 멀리 '엑스포 타워'가 보였다. 엑스포에서 무언가 진행 중이라면 충분히 들릴 의사가 있었지만 아무래도 저 건물은 과거의 시간만을 지키는 모양이다. 





보통 미술관은 시립, 구립이 붙은 곳을 많이 다녔다. 친구들의 졸업 전시나 지인의 인사동-혹은 삼청동-에서 열리는 것 빼고는 미술관에 대한 정보를 자주 접하기도 힘들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이곳 또한 시립 미술관이라 생각하며 발을 디뎠다. 예술을 담은 건물의 크기만 보고 차별한다기보단 도시에서 운영하는 공간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



5천 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선 '석봉 도자기 미술관'은 석봉 선생의 도자기를 전시한 미술관이었다.



자기의 멋은 높게 치지만 정말 아는 게 없던지라 무척 호기심 넘치는 태도로 미술관을 잘 관람하고 나왔다. 어떤 예술 작품이든 '내가 이걸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갖고 집중력 있게 관찰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는 분명히 하지 못할 테고, 그럴 때면 작가가 흘린 땀방울이 보이고 느껴진다. 


내 눈앞에 놓인 하나의 작품을 만들고자 작가는 어깨가 굳고 손 관절도 아팠겠고 많은 돈도 쓰고 무엇을 그릴까 고뇌했겠구나, 그 생각을 하면 작품 앞을 쉬이 떠날 수 없다.






동아 서점까지는 걸어서 10분 정도가 걸렸을까. 삼대 째 그 자리르 지키고 있는 동아서점의 외관은 오늘에 맞춰져 있는 듯했다. 정문을 바로 마주하지 않아 좋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이 멋진 옆면을 볼 수 있었을까.



인터넷 기사와 블로거들의 후기로만 보았던 '동아서점'이 눈앞에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설 때 마치 이케아 쇼룸이 떠오르는 것을 보니, 사장님께서 인테리어에 얼마나 많은 공을 들였을지 짐작이 갔다.



참 한산하고 깔끔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서점 천장을 수놓은 스포트라이트, 펜던트 조명과 스탠드의 은은함과 나무 결이 살아있는 원목가구에서 풍기는 포근함은 누군가 잘 다듬어놓은 동아서점만의 분위기였다. 



카운터에 앉은 사장님과 가벼운 목례 후에 서점을 구경했다. 주제별로, 혹은 출판사별로 나뉜 책 어디에도 주인의 손길이 안 닿은 곳이 없다. 손님들이 편안히 책을 읽을 수 있게 창가에 넓게 붙인 바 테이블과 서점 곳곳에 놓인 의자 덕분에 꽤 긴 시간 책을 구경할 수 있었다.


사장님의 책 취향이 나와 비슷한 걸까. 가끔씩 알라딘 사이트를 구경하며 이건 좀 재미있겠다, 싶었던 책들이 곳곳에서 보였다. 물론 동아서점이 큰 덕분에 다양한 책들이 있을 순 있지만, 다른 서점에서는 발견하지 못한 녀석을 집 떠나 속초에서 발견하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결국 품 한아름 책을 사들고 나와버렸다. 이럴 줄 알았다며, 캐리어를 덜 채워오길 잘했다며 스스로 다독이며 동아서점을 나섰다. 사장님이 챙겨주신 스티커도 무척 귀여웠다. 속초에서 가 볼 만한 곳을 어떤 작가 분이 그린 지도라며 건네시는 선물도 받아버렸다. 


책 읽을 게 산더미다. 갈 서점도 리스트 빼곡하다. 신작은 매일 쏟아지고, 그중에 내 책도 껴있을 텐데. 갈피를 못 잡겠다. 그래도 지금은 여행 중이니 생각은 버리고 책만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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