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지마 Jun 15. 2018

속초 이틀_2. 동네 사람처럼 속초 걷기

강원도 여행 DAY 2.





강원도 여행

속초 2일 차 일정_ 2

 - 문우당 서림 (서점)

 - 함흥 막국수

 - 커피 내리는 버스 정류장

  - 중앙시장 (88 순대국, 옥수수 막걸리)

 - 완벽한 날들(숙소, 서점)




뜬금없이 늦게 말하지만, 이 날 날씨가 정말 더웠다. 30도까지 올라가고 걷는 내내 살이 지글지글, 여행을 끝내고 집에 돌아오니 시계를 풀어도 내 손목에 하얀 손목시계가 있을 정도였다.


멀리 가지 않고 '문우당 서림'은 동아 서점 바로 뒤에 있었다. 속초의 서점들은 마치 짜기라도 한 듯 외관이 참 멋지다. 뭔가 도톰한데 그 역사가 보일 정도의 우직함이 있달까. 




사실 문우당 서림은, 아니 특히 문우당 서림이 좋았다. 정말 정말 좋아서 다음날 한 번 더 찾아갈 정도로. 


거기 사람들이 참 좋았는데.


요즘에는 추억을 회상할 때 특정 장소의 분위기보다는 그곳을 가꾸고 만들어낸 사람들을 기억한다. 찍어서 예뻤던 장소는 사진이 기억하지만 그때 그 사람들은 내 기억에 여전히 머물러 있다.


*문우당 이야기는 삼일 째 계속 이야기해보려 한다.








문우당 서림 사장님의 추천으로 점심은 근처에서 먹게 됐다. 원래 걸어서 20분 거리에 냉면 맛집이 있다고 해서 가보려 했는데, 살을 뚫는 뙤약볕을 마주하니 저절로 발길이 이곳으로 향했다.



아무래도 동네 사람들만 아는 맛집인 모양인지 내가 자리에 앉아 냉면을 받을 때까지 배달 주문이 끊이지 않았다. 무수히 겹쳐 깔린 하얀색 비닐 위로 드디어 냉면이 나왔다. 고소한 들기름-참기름은 아닌 것 같았다-에 훅훅 뿌려진 참깨를 보니 저절로 감사한 마음이 물씬. 


황급히 가위로 면발에 십자를 새기고 후루룩 입에 쏟아 넣었다. 함께 나온 시원한 육수를 부어 먹으니 환상이었다. 나중에 친구와 다른 냉면 맛집도 가봤지만 이곳만 한 곳이 없었다. 속초에 다시 간다면 이곳은 다시 꼭 들리고 싶다.




 


숙소에 있으나 밖에 있으나 책을 읽는 것은 똑같지만 어쨌든 여행인데 카페에 들리기로 했다.  '커피 내리는 버스 정류장'은 중앙 시장 사거리에 위치했다. 유리문을 밀고 들어가자마자 보이는, 홍차 찻잔들이 카운터 한 면을 가득 채우고 있어 보는 내가 아슬아슬할 정도였다.


'저 친구들은 어디서 왔나. '


무척 궁금했지만 몸을 숙이다가 자칫하면 실수를 저지를까 영롱하게 반짝거리는 찻잔 세트를 멀찍이서만 바라봤다. 덕분에 커피 대신 밀크티를 시킨 나는 조용한 2층으로 올라가 서점 투어의 결과물을 책상 위에 차르륵 펼쳐 놓았다.



 산 것은 엽서밖에 없는데 크래프트 종이백이 충분히 묵직하다.





조용한 시간을 즐기다가 시끌해질 때쯤 시장으로 향했다. 복잡하고 비좁은 시장 골목도 이제는 어깨를 접으며 헤맬 정도의 내공이 생겼다. 뭘 먹을까. 내일 친구와 만석 닭강정을 먹기로 했으니 튀긴 것은 당기지 않았다. 땅콩 아이스크림, 대게 튀김, 사시미. 맛있는 건 이리도 많은데 왜 그리 홀로 먹을 수도 없는 순대 전골이 떙기던지. 가만히 숙소를 떠올려보니 스토브나 전자레인지는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냥 '팔팔 순대집'에서 순대전골 말고 순대 모둠을 사 왔다. 무려 1만 8천 원. 순대 자체도 맛있었지만 저 매콤한 명태 회까지 젓가락에 얹어 먹으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알싸하게 달아오른 혀는 옥수수 막걸리로 진화하며 스티로폼이 빌 때까지 젓가락을 내려놓지 않았다. 





이때쯤 필름 카메라 필름을 다 썼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설마 '완벽한 날들'을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을 줄이야. 오후 6시쯤에 1층 서점으로 내려가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커피를 즐기고 있어 제대로 된 내부 구경은 하지 못했다. 


책을 한 권 정도 사고 싶다, 생각하고 있을 때 서점과 제목이 같은 책을 발견했다. 한 사람이 자신의 가게 이름으로 내걸 정도의 책이라니. 후루룩 내용을 다 살펴보지 않아도 이 공간이 그 존재를 보장하고 있었다.



카운터 뒤에서 손님이 다가오는 타이밍을 지켜보고 있던 부부 사장님께 어색하게 인사를 건넸다. 

   '저, 위층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계산을 마친 후 간소하게 책을 품에 끼고 다시 방으로 돌아왔다. 방에서 홀로 쌓아 올린 책 무덤 맨 위에 놓인, 속초의 바다 빛깔을 띤 표지가 인상적이다. 왠지 이 책을 바다 앞에서 읽어야 한다고, 강렬한 확실이 몰려들었다. 


오늘 밤은 못다 읽은 오스카 와일드의 잔혹 동화를 마칠 때이다.








작가의 이전글 속초 이틀_1. 동아서점과 속초 중앙 시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