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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Jun 16. 2018

속초 사흘_1. 문우당 서림과 칠성 조선소

강원도 여행 DAY 3




사실 이곳의 이야기를 쓰기 위해 속초 여행기를 시작했습니다. 제 개인적으로 가장 따스했던 추억을 잊지 않고자 기록하며, 누군지 모를 독자님과 함께 나누고자 써내려 갑니다. 


어쩌면 당신이 원하는 여행 정보가 없을지 모르지만-그래서 이 페이지를 나가셔도 좋지만- 한 번쯤은 이런 글을 끝까지 읽어봐도 좋지 않을까요 :-)






강원도 여행

속초 3일 차 일정_ 1

 - 문우당 서림 (서점)

 - 칠성 조선소 (카페)






조식이 포함된 숙소에서 맞는 아침의 풍경은 매번 비슷하다. 깔끔함이 콘셉트인 게 분명한  '완벽한 날들'에서 먹는 조식으로는 내가 구워 먹는 따끈한 토스트 몇 조각과 초코맛 벌집 모양 시리얼, 그리고 컵에 담은 약간의 우유가 있다.


오늘은 살짝 늦장 부리며 준비를 마쳤다. 새로운 숙소에 체크-인 할 때까지는 바깥에 있을 테니 단장을 똑디 해야 했고, 뚜벅이 여행이니 위장에 음식도 두둑하게 챙겼다.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1층 서점에 내려갔다가 발목이 묶이고 말았다. 한창 오픈 준비 중이던 스태프 분과 마음이 너무 잘 맞은 탓이었다. 나 때문에 오히려 나중에 출근한 주인분들이 쭈뼛쭈뼛 가게를 들어오시는 모습에 정신을 차린 나는 드디어 분홍색 캐리어를 구석에 보관한 채 길을 나섰다.


어제 갔던 '문우당 서림'과 어제는 휴일이라 가지 못했던 '칠성 조선소'가 목적지였다.






다시 말하지만 문우당은 묵진한 뭔가를 지녔다. 길을 지나던 사람마저 언뜻 그 공간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단 것은 꽤 멋진 일이다.



어제는 DSLR을 들고 열심히 사진 찍던 사람들 때문에 구경하지 못했던 외관부터 자세히 살펴봤다-여자상님 말에 의하면 그들은 문우당 서림에 대해 인터뷰하고자 찾아온 손님들이었다고 한다-.


 디자인이 이렇게 멋진데, 역시 나는 아직도 체리와 월넛 색상의 고풍스러움은 사진에 잘 담아내질 못한다.



최근에 독립 서점을 많이 다녔기 때문일까. 큰 서점만 들어서면 우와, 놀라곤 한다. 이렇게 많은 책이라니. 자신을 데려갈 사람을 기다리듯 가지런히 책장에 나열된 책을 보면 마음이 설렌다. 내가 오늘 집에 데려갈 녀석은 누구일지.


꼭 이걸 사야지.


마음먹고 와도 정작 애꿎은 녀석이 손에 집히곤 하니까.


요즘 공부 중인 일제강점기 관련 책을 차근히 둘러보곤 이층으로 향했다. 



   '잘못 들었나?'


영화 <해리 포터> 음악이 들렸다. 1층의 차분한 음률의 곡과 달리, 희미하게 들리는 2층의 경쾌한 음악과 달리, 그 두 공간을 잇는 계단에서 영화 <해리 포터>의 사운드 트랙이 들렸다-어쩌면 내가 해리포터를 너무 많이 본 탓일지도-.


생경함에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계단을 밟아 올라갈수록 마치 영국 킹스크로스 역 플랫폼에서 벽돌 기둥을 향해 스스로 달려들듯 가슴이 두근거렸다-진짜로. 어릴 적 관람한 영화에 대한 내 기억이 이토록 행복하단 사실은 큰 축복이다-.


누구의 아이디어였는지 모르겠으나, 책의 한 소절을 담은 네모 반듯한 색종이가 계단 옆면을 빼곡히 채우고 있었다. 하나하나의 문장이 참 예뻤다. 패널을 구경하던 중 이층 입구에 놓인 카운터에서 인상 좋게 나를 바라보던 직원 분과 눈이 마주친 바람에 후다닥 올라오고 말았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독립출판물 코너였다. 공간의 중간 앞쪽에 놓인 기다란 테이블 위에는 익숙한 책들이 보였다. 속초에서 보니 더욱 반가운 책들.


그 옆 책상에는 '문우당 서림'에서 기획·제작한 엽서와 연필, 매거진이 보였다. 돌돌 예쁘게도 말린 에코백은 도톰한 것이 폰트-모 서점에서 나온 굿즈의 폰트를 보고 식겁한 기억이 있던지라-도 멋스러워서 들고 다니면 좋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캐리어가 워낙 무거웠던 지라 엽서 몇 장만 손에 쥐었다. 문우당 서림만의 특색인지, 엽서는 제 색깔에 맞는 문장을 담고 있었다. 깔끔해서 좋았다. 다소곳이 엽서만 들고 카운터로 향했는데 아까의 카운터 직원 분이 갑자기 손을 바삐 움직이며 여덟 종류가 넘는 스티커를 쏙쏙 골라 담았다.


"저희가 요즘 리뉴얼  중이라서요. 스티커도 가져가세요."


무척이나 가벼운 내 손이 송구스러워졌다. 이 스티커가 어떻게 만들어졌을지, 이젠 나도 알아버려서 괜찮다고-나보다 좋은 곳에 이 녀석들을 써줄 손님이 오지 않을까- 거절했다. 하지만 그녀는 포근한 미소로 괜찮다며 '가방은 어떤 걸로 드릴까요? 좋아하는 색상 있으세요'라고 물었고 또 어느새 몇 종류의 크래프트 백을 꺼내 들었다. 


내 등에서 땀이 나진 않았을까. 미안한데 고마워서, 계산을 하는 와중에 잠깐 이야기를 했을 뿐인데 너무도 즐거워서 나는 내일도 문우당을 와야겠다고 결정 내렸다.


"아이고, 너무 죄송해서. 내일 다시 올게요. 진짜요!"


나는 주먹을 불끈 쥐고 말했다-이렇게 서술하다 보니 무슨 소설 쓰는 것 같아서 웃기지만-.




어제가 된 문우당 첫 방문을 뒤로하고 속초 여행 삼일 째, -앞에서 말했다시피- 완벽한 날들에 캐리어를 맡기고 바로 '문우당 서림'에 왔다. 직원 분-이틀 째 점심으로 '함흥 막국수' 집을 추천해준 것도 그녀였다!-이 있을까 없을까 예상해보며 계단을 올랐는데 그녀가 있었다, 어제와 같은 미소를 지으며.


"어, 진짜 오셨네요!"


그럼요. 제 친구가 도착하기 전에 서점만끽해야거든요.


 나는 조금은 쑥스러운 마음을 감추고 혹시 책을 가져다 저기 마련된 자리에서 읽어도 되냐고 물었다-이 또한 독립서점에 익숙해진 습성이랄까. 독립출판물은 서점에 대량으로 들여놓지 않기 때문에 책은 배치된 그 자리에서 보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데가 대다수다-. 당연히 괜찮다고 한다.



어제는 둘러보지 못했던, 이층 깊숙한 곳에 놓인 테이블 위에 일단 가방을 올려둔 나는, 오른쪽에 놓인 공간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바라만 봐도 신비스러웠다.


예약을 한다면 누구에게나 빌려준다는 '공간'. 무척 매력적이라 구경은 하고 싶은데, 왠지 함부로 건들면 안 될 듯하여 힐끗거리고 있었다. 



직원 분의 허락-은 아니고 그냥 내가 먼저 물어보고 안을 구경했다. 으아, 예약만 하면 이곳을 사용할 수 있다니. 촘촘히 '공간'을 둘러싼 나무대가 답답하기보단 은밀했고, 내부를 밝히는 조명은 안락했다. 여기서 책을 읽는다면 행복해 죽을지도 몰라.  비록 카페에 가느라 '공간'에서 책을 읽진 못했으나 상상만 해도 즐거웠다.


나는 어제 그녀가 추천했던 카페-칠성 조선소-에 가기 위해 일단 책을 계산했다. 그리고 어제부터 계속 머릿속을 맴돌던 말을 꺼냈다.


"저, 어제 리뉴얼하고 있다고 하셨는데, 공간을 더 바꾸고 계신 건가요?"


내 눈에 '문우당 서림'은 충분히 매력적인데, 그녀가 원하는 리뉴얼의 방향성이 무척 궁금했다. 한낱 여행객이 던진 질문에 그녀는 충분한 대답을 내주었다. 그 차분하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까지 그녀가 얼마나 오랫동안 이 공간을 지켜보며 앞으로 어떻게 가꾸어나길지 고심하고 또 고심했을지 절절히 느껴졌다. 


그녀는 하고 싶은 게 무척 많다고 했다. 그 모든 게 한순간에 이루어질 리 없지만 부디 지치지 않길, 괜히 나 혼자 빌었다. 



서점에 대한 이야기가 길어지자 그녀는 몸을 돌려 한 사내를 불렀다. 카운터 뒤쪽에 놓인 테이블에서 한 중년의 남성이 열심히 일하고 계셨는데,  '문우당 서림'의 사장님이셨다. 살짝 거친 강원도 사투리가 정감 있었고 어쩐지 풍기는 분위기가 '나 서점 사장이요'였다.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손님인 '나'로 넘어왔다. 최근에 책을 냈다고 말하자 남 사장님은 '책을 낸다는 것은 무척 대단한 일'이라며 나를 칭찬하셨다. 오랜 세월 책과 함께 시간을 보내셨을 분께서 하는 말씀에 얼마나 쑥스럽던지. 


당신도 언젠가 책을 내고 싶다는 사장님의 말씀은 의외였다. 


이토록 책을 낸다는 '행위'는 어려운 것을, 나는 너무 후루룩 해치운 거 아닌지 반성하게 됐다.




사장님 소개에 따르면 내 눈앞의 그녀는 '문우당 서림'의 디자인과 디렉팅, 마케팅을 맞고 있는 디자이너 님이었다. 어제 구매한 엽서와 이 모든 스티커, 크래프트 백을 그녀가 만들었으리. 나와 또래이자 나와는 다른 장소에서 제 삶을 열심히 살고 있는 그녀가 무척 대단해 보였다. 



몇십 분을 떠들었을까. 이제는 갈 시간이었지만 언제나 다시 올까. 아쉬움에 발걸음을 뗀 내 손에는 '문우당 서림'에서 펴낸 매거진 하나가 놓였다.


magazine 
마음. 이음. 다음.
prologue/이야기



이 소중한 책은 속초인인 그녀가 추천해준 카페에서 읽어보려 한다.






문우당 서림 정문을 나와 횡단보도를 건넜다. 길을 따라 걸으니 좁은 횡단보도가 하나 더 나온다. '칠성 조선소'를 가는 길가에 놓인 대낮의 포장마차에는 낮술을 즐기는 주민들이 보였고, 한껏 꾸민 여행객 하나가 그들을 가르며 나무 문 하나를 찾아냈다. 


'과연 여기가 지금 영업 중인 걸까?'


의문이 들었지만 어제 굳게 닫혀있던 문이 살짝 열려 있으니, 오늘은 커피를 마실 수 있겠다.



'칠성 조선소'는 뭐랄까, 다음에도 여기 한 번 더 오겠다고 속초행 버스를 예약할 만한 마력의 장소랄까. 카페에 들어서는 모든 순간이 완벽했다. 살결을 녹이는 더위도 날려버리도록 아름다운 풍경이 눈앞에 놓였다.



정문 왼쪽에 떡하니 놓인 큼지막한 건물을 카페인 줄 알고 들어갔다가 홧홧한 열기에 화들짝 놀라 뛰쳐나왔다. 에어컨이 없는 것으로 보아 여기는 아닌 모양이다. 테이블은 있었지만 카운터는 없었고 그 뒤를 가득 채운, 지금은 바다 위를 떠다니지 못할 선박이 정착해 있었다.



배가 놓인 기다란 건물 앞에는 청초호가 보였다. 용도는 모르겠지만-선박을 끌어올렸던 흔적일까- 녹슨 철근을 따라 걸으니 자그마한 건물 하나가 보였다.



이곳이 카페일 게 분명했다. 테라스에도 올라갈 수 있는 걸까. 햇볕만 쨍하지 않았다면 당장 올라가 보고 싶었다.



이런 멋진 장소에 들어서면 나도 모르게 자리부터 찜하게 된다. 나도 한 번쯤은 느긋하게 음료 주문을 마치고 자리를 잡는 여유를 부리고 싶었지만, 한 번 하는 여행에서 명을 놓칠 순 없다. 청초호가 멀끔하게 보이는 창가 자리라니. 아직 앉지도 않았는데 황홀하다.



무엇을 시켰는진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카페의 시그니처 음료를 주문했던 것 같다.


 '칠성 조선소'는 각각의 풍경을 담기 위해 공간을 일부로 분리한 듯했다. 여기는 청초호를 보기 위해, 이쪽은 나무 한 그루를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 저기는 당신 일행과의 시간을 위해 나뉘어 있었다.


좀 더 세세하게 구경하고 싶었지만 넘쳐나는 손님과, 또 좀 있으면 터미널에 도착할 친구와 다시 함께 즐거움을 나누기 위해 눈만 힐끗 돌리며 착석했다.



magazine 
마음. 이음. 다음.
prologue/이야기


문우당의 *자음에서 따왔을 매거진의 이름이 눈에 띄었다. 


*무척 이상한 게 나는 아직도 자음과 모음을 구별해서 외우지 못한다. 영어로 왼쪽이 left인 것은 알지만 right가 오른쪽인 것은 알지 못하는, 그런 부류의 멍청함이랄까. 


일곱 장을 고이 접어 중철 제본한 매거진을 조심스럽게 폈다. 아까 서점에서의 대화가 없었다면 나는 이 매거진을 어떻게 다뤘을까.


 하나의 이야기는 한 권의 책을 갖기에 마땅한데, 


가끔은 책의 두께나 특성을 변명 삼아 독서마저 편식하는 내 태도, 참 옳지 않다.



책을 직접 만들고 편집한 작가와의 대화 후에 읽는 책은 아무래도 의미가 남다르다. 그냥 읽었다면 알지 못할, 작가가 책에 숨겨둔 장치를 미리 알고 구경할 수 있다. 단어와 단어 사이에는 많은 의미가 감추어져 있다. 때문에 이 책은 느리게 읽어야 한다. 자칫 혼자 신이 나, 후루룩 페이지를 넘겼다간 놓칠 수 있는 아름다운 것들이 너무도 많다.


1984년도에 문을 연 문우당 서림은 '글월 문(文) : 책 또는 글', '벗 우(友) : 친구 또는 사람', '집 당(堂) : 공간'. 즉, 책과 사람의 공간이라는 그 단어와 단어 사이의 여운들에 우리의 정체성이 담겨있습니다.



디자이너 님은 이 매거진을 vol.1 이전의 프롤로그라고 말했다. 하지만 손님 입장에서 내가 문우당 서림에 대해 궁금해했던 모든 이야기가 거기 있었다.


조금은 길지만 개인적으로 감명 깊었던 부분을 인용해봅니다.


Philosophy. 문우당 서림 이야기.
스물넷과 오십구 사이


일단 제목부터 이야기의 깊이가 유추됐다.


   '나의 공간까지 오셔서 책을 구매하는 분들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실까?'라는 질문을 되뇌었습니다. 여러 곳의 서점이 공존하던 그 시절, 굳이 시내 변두리까지 찾아와 책을 구매해가시는 손님들의 손에 책만 덜렁 건네어드리는 것은 아무 표정이 없는 인사와 같았습니다. 

   제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생각해보았습니다. (···) 서점이 아닌 손님들을 생각하며 책을 꼽고 건네어드리자. 서점다운 서점을 만들어보자. 


당신의 책을 내고 싶다고 말했던 남 사장님이 떠올랐다. 이렇게 훌륭한 글을 쓰시면서, 어느 여름날 찾아온 젊은 손님에게 책을 썼다니 대단하다며 칭찬하셨던 얼굴도 떠올랐다. 다시 만나 뵙게 된다면 이미 훌륭하시다고-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말씀드리고 싶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엔 이 매거진을 두 권이나 구매하고 말았다. 책을 읽으니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었다. 지인에게 선물하고 싶은 책이야 말로 얼마나 좋은 책인지.




친구가 왔다. 히리티지 펜션에 체크인을 하고 다시 '칠성 조선소'로 돌아왔다.



혼자 카메라를 들었던 장소에서 친구와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여름 해는 늦도록 카페에 머물러 그늘을 만들었고, 저녁의 속초는 관광객이 없어 애매하게 조용했다.



나에게 필름 카메라가 있단 사실에 감사하도록 예쁜 지금을 만끽했다. 친구와 담소를 나눴다. 


그때 참 좋았는데.


지금도 회상하도록 행복했던 순간도 모르고, 우리는 그렇게 오늘을 흘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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