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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마 Jul 01. 2018

3년7년3년_1화.



[단편소설] 3년7년3년 _ 1화 by. 글지마






   “뭐야, 왜 그림 같이 앉아 있어?”


   같은 밴드 멤버 J가 개인 촬영을 마치고 돌아왔다. 그는 번들거리는 호텔 방바닥에 일부러 구두 굽을 바짝 붙이며 걸어왔다. 그의 화려한 걸음걸이는 바깥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충분했지만 그와 10년을 알고 지낸 밴드 리더, K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J는 아직까지도 뜨거웠던 촬영 현장에서 벗어나지 못했거늘 저기 원형 소파에 앉아있는 K는 이미 잠옷으로 갈아입고 가는 발가락에 폭신한 흰색 실내화를 신고 있었다.


   “크으. 20대 젊은 나이에 세계에서 명성을 끌어 모은 한국의 보이 밴드!”


   J는 어느새 습관이 된 껄렁한 태도로 양팔을 벌리며 걸어왔다. 


   “이봐 이봐. 걸어도 걸어도 소파에 앉을 수가 없네.”


   J는 감탄을 금치 못한다며 능글맞게 박수를 쳤다. “우리 다음에는 그냥 작은 데로 잡자. 쓸데없이 너무 커, 여기는.” 그는 괜히 다리만 아프다며 불평을 쏟아내면서도 방 내부를 구경하느라 고개를 이리저리 꺾었다. 검지에는 에이전시에서 제공한 자동차 열쇠가 힘차게 휘돌고 있었고, 드디어 대리석 테이블에 다다른 그가 그 위에 미끄러지듯 열쇠를 던져 놓았다. 총알처럼 날아간 열쇠가 핑크색 마블링이 물결치는 대리석에 날카롭게 안착했다. J는 다이빙하듯 까만색 8인 소파에 몸을 던졌다. 늦은 저녁까지 끼고 있던 선글라스는 소파 뒤로 던지고 빳빳한 양복 재킷은 팔뚝을 탈탈 털어 벗어젖혔다. 마지막으로 로퍼 곱게 신은 발을 테이블 위에 올려둔 J가 휙 고개를 돌렸다. K는 아직까지도 휴대폰과 씨름 중이었다.


   “뭐하냐.”


   J는 진심으로 한심하다는 듯 물었다. 해외 투어까지 나와서, 심지어 미국 뉴욕에서 가장 좋은 호텔에 머물면서 휴대폰이나 쳐보고 있다니.


   “네 인생은 네가 갖지 마라.”


   “무슨 소리야?” 그제야 K가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 들었다. 아직 메이크업을 지우지 않았는지 말쑥한 얼굴이 보였다. 여름을 맞아 그을린 피부에 알맞게 얼굴에 배치된 큼지막한 이목구비가 짜증 나도록 잘생겼다. 7년 전 첫 데뷔 무대 때까지만 해도 시꺼먼 게 코만 높다고 생각했는데, 예나 지금이나 이 동갑내기 친구가 잘생겼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J는 분한 마음에 코를 훌쩍거리며 삿대질을 날렸다.


   “네 인생이 불쌍해서 그래, 이 새꺄. 한국에서 제일 잘 나가는 가수, 아니 이제 한국뿐이냐. 해외에서도 잘 나가. 그리고 유명하기만 해? 여기저기에서 제발 좀 나와 달라 러브콜이 울리다 못해 전화벨 노이로제 걸릴 것 같은 이 시점에, 네가 새끼야. 돈이 없냐, 얼굴이 달리냐, 우리가 없는 거는 시간뿐이야. 근데 미국 해외 투어까지 와서, 미국에서 가장 좋다는 호텔에 있는데 땅 파고 들어갈 얼굴로 휴대폰만 보고 있냐! 네 인생이 아깝다! 그냥 저 밖에 있는 부랑자한테 네 삶을 주라고! 네 삶도 너를 원치 않는다고, 인마!”


   “뭐래.” 


   K는 J의 말을 가볍게 무시하며 다시 휴대폰만 바라봤다. 호텔 가장 안쪽에 위치한 큼지막한 검은색 원형 가죽 소파 위로 나른하게 뻗어 앉은 그의 뒤로는 커다란 유리창이 길게 뚫려 있었다. 장정 두 배만 한 길이의 아이보리색 커튼은 뉴욕의 화려한 밤을 맞아 창틀 양끝으로 잘 말려 있었고 그 가운데 영화에서만 보던 뉴욕의 고층 빌딩이 배경처럼 즐비했다. 저 보기만 해도 황홀한 풍경을 놔두고 K는 군청색 실크 잠옷 차림으로 한 손에는 휴대폰, 다른 한 손에는 오전에 짬을 내서 들린 93번가의 독립서점에서 구입한 잡지가 들려 있었다.


   “아직도 화보 찍냐? 화보 촬영 끝났거든?” 


   J는 비아냥거리면서도 혼자 읊조렸다. “이씨, 멋진 자식.” J는 자신만이라도 이 멋진 순간을 즐기겠다며 매거진 측에서 제공한 호텔의 고급스러움을 만끽했다. 인테리어 같은 거 잘 모르지만 이 공간이 주는 비싸다는 느낌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가슴을 거만함으로 잔뜩 부풀린 J는 두 팔을 벌려 소파 등받이에 올려놨다.


   “이야, 서울 촌놈. 출세했네.”


   여기까지 올 줄 누가 알았을까. 아직도 꿈만 같아서 잠자기가 두려울 정도다. 눈을 뜨면 다시 빌어먹도록 가난했던 그때일까봐, 몇 달 전에는 뜬눈으로 일곱 번의 새벽을 지새우다 기절해서 결국 병원에 실려 가는 멍청한 해프닝도 있었다. 그런데,


   “이거란 말이지.”


   J는 호텔방을 죽 둘러봤다. 그의 눈동자 너머로 수천의 세월이 흘러갔다. 촘촘하고 빡빡해서 고단했지만 지금 꺼내 봐도 눈물 나도록 알록달록한 순간들. 내가 걸어온 길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기에, 현재를 즐기자고 J는 생각했다. 그는 습관적으로 환한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허벅지를 털고 일어섰다. 감상에 빠져 있기엔 하룻밤에 6천 달러나 하는 호텔 룸에 재미난 것들이 너무도 많았다. 체크인하자마자 촬영장으로 이동하느라 제대로 구경도 못한 복층이 아까부터 눈에 걸렸다. 투명한 유리 가로막으로 휘감은 계단과 달리 그와 이어진 복층은 제 모습을 꽁꽁 숨기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훔쳐보려고 고개 숙여 눈까지 굴려봤지만 무엇 하나 보이지 않아 괜한 오기가 솟구쳤다.


   ‘분명 방도 많겠지.’ 상상하니 속이 탔다. J는 괜히 옆머리를 쓸어 넘기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허리띠 가늘게 감긴 허리춤을 추키며 주말까지의 일정을 머릿속으로 읊었다. 오늘은 월요일이었고 콘서트는 주말에 시작한다. 리허설은 내일 오후부터였던가. 손목에 차기엔 무거운 귀중품을 돌려보니 오후 11시였다. 


   “충분하네.”


   일단 샤워부터 해야겠다. K는 아무래도 온종일 저럴 모양이니 괜히 클럽에서 시선 뺏길 일은 없을 듯했다. J가 경쾌하게 2층으로 향하려 하자 K가 말을 걸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지?”

   “뭐가.”

   “아아. 화내려나. 헤어지자고 하면 어쩌지.”

   “뭐. 도대체 뭐가.”

   “집.”

   “아씨. 또 그 얘기냐.”


   J는 머리를 감싸 쥐며 척추를 굽혀 분노를 표출했다. “진짜 가지가지해라.” J는 더 이상 상대할 가치를 못 느끼겠다며 K를 무시하곤 소파에 주저앉아 클럽의 드레스 코드나 확인했다. J는 자신을 외면한 J를 관찰하듯 바라봤다.









이러려고 쓴 소설이 아닌데, 역시 가벼운 마음으로 일단 쓰고 봐야겠다고 마음먹으면 안 되겠습니다. 금방 끝날 줄 알았는데 이렇게 길어지네요. (그래서 애들이 이름도 없답니다.)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 같지만 사실 네 편이면 끝날 듯합니다. 별 거 아닌 이야기를 쓰고 싶었거든요. 오늘 아침에 비가 와서 쓰기 시작했는데, 정작 소설을 쓰게 된 이유는 오늘 하나도 쓰지 못해서 뭔가 이상합니다. 분명 4시간 정도 쓴 것 같은데 이것뿐이라니. 


내일은 더 열심히 써서 2편 가져오겠습니다.


*여담을 덧붙이자면, 사실 정말 독하디 독한 몸살감기에 걸려서 열흘만에 브런치를 다시 찾습니다. 혹시 기다려주신 분들이 계시다면 정말 늦어서 죄송합니다. 월요일부터 다시 열심히 살아보렵니다 :-) 조만간 글 테이블이라고 해야 할까요, 일주일을 어떤 글들로 채울지 예쁘게 편집한 이미지로 만들어 가져오겠습니다.


모쪼록 내일 출근, 통학, 혹은 집에서 휴일을 보내는 것도 주룩주룩 내리는 비는 조금만 미워하시고 건강히 한 주 시작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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