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보 작가들의 어색한 책 모임. 이대로 괜찮은 건가요.
*Caution! 책 만드는 모임은 처음이었는지라 어수선했던 느낌을 따라, 이 게시글의 내용도 아주 어수선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가 없네요. 정말 그랬거든요, 그때는. *
인천 2호선을 타고 인천 시청역에서 내렸다. 인천에 오래 살았거늘 인천 2호선을 타 본 것은 처음이었다. 말로만 들었던 무인 전철에서 내려 지하철 출구를 빠져나오니 벽돌로 쌓은 건물 하나가 곧장 보였다.
틈 문화창작지대
12월 12일부터 내년 1월 18일까지, 무려 한 달 동안 일주일에 두 번씩 이곳에 와야 했다.
'지각 안 하고 잘 올 수 있을까.'
학교 졸업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출석률 걱정이다. 그래도 일단 힘찬 발걸음으로 건물에 들어섰다. 며칠 전에 받았던 메시지 안내에 따라 4층 교육실로 향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는데 이미 자리에 앉아계신 분들이 보였다.
"앗, 안녕하세요."
나는 어색하게 허리 숙여 인사하며 빈자리에 짐을 풀었다. 조용한 분위기에 미친 듯이 숨이 막혔지만 감사하게도 익숙한 얼굴의 사장님이 보였다. 기쁨의 미소를 지으며 사장님께 다가가 인사를 드렸다.
"어어어어. 신청했구나."
"네에."
낯익은 사람을 발견하니 사장님도 기쁘셨던 모양이다. 굳어있던 얼굴에 어색하게나마 미소가 피었다. 곧이어 다른 사장님께서 옆구리에 종이를 잔뜩 끼곤 교실로 들어오셨다. 눈인사를 하며 나는 곧 수업이 시작할 것 같아 자리로 돌아갔다.
출석 체크를 마친 사장님 두 분께서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거의 2년을 알고 지냈는데 순 사장님-차근차근한 말투를 사용하시며 빈티지를 좋아하시는-이 국어에 일가견이 있으시고, 염 사장님-조끼 패딩을 즐겨 있으시며 전문가 감성을 뽐내시는-이 편집의 베테랑이신 줄은 처음 알았다.
이런 공짜 수업이라니. 아주 찬성이다.
이런 강의가 처음인 사장님들의 소개가 끝나자, 이런 수업이 처음인 수강생들의 소개가 이어졌다. 18명의 수강생들은 사는 지역만큼이나 다양한 직업군을 형성하고 있었다; 일러스트레이터, 프리랜서, 방송작가, 기자, 대학생, 취준생, 동화책 작가, 아직은 백수인 사람들까지. 독립출판이란 연결고리가 없다면 내가 어떻게 이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을까.
계속해서 강의를 진행하던 사장님은 잠시 말을 멈추시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들 독립 출판이 어떤 것인지는 알고 오신 거겠지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다들 아실 것 같지만 노파심에 설명을 덧붙인다며 사장님은 설명을 이어갔다. 사실 책에 관심이 많다고 하여 독립 출판, 독립 서점, 혹은 1인 출판에 대해 모두가 알진 못한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책이란 '출판사에서 바코트 붙여 만든 것'이고 '대형 서점이나 동네 책방에서 구매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독립 출판물이 뭐예요?
누군가 묻는다면 사전적 정의를 인용해 명확하게 답해주고 싶지만 아직 국립국어원도 웹사이트의 오픈사전도 '독립출판'을 뭐라 정의 내리지 않아 나 홀로 생각하는 독립출판에 대해 아래에 써본다.
독립 출판은 개인이나 소규모의 사람들이 책이 나오기까지의 모든 제작 과정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어진 책이 독립출판물이고요. 이런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서점이 독립 서점이 되겠네요.
한 권의 책이 탄생하는 과정은 무척 복잡하다. 작가가 원고를 쓴다면 그 복잡한 과정을 출판사가 처리해주지만, 독립출판 작가라면 스스로 어려운 길을 헤쳐나가야 한다.
추워도 독립 출판! 책상 위에 놓인 팸플릿이 나를 응원한다. 비록 추운 날씨에 코트 꽁꽁 여미며 아등바등거리겠지만, 이곳을 나설 때는 책 한 권이 손에 쥐어져 있길 간절히 바래본다.
쉬는 시간이 끝나고 사장님이 조를 발표하셨다. 사전 인터뷰를 통해 얻은 정보로 책의 특성에 따라 팀을 네 개로 나눴셨다고 하는데 <에세이 / 그림책 / 사진집 / 여행 및 외국어>에서 나는 네 번째에 해당됐다. 18명의 작가들이 제 콘셉트에 맞는 팀으로 삼삼오오 모였다.
어색함에 다들 눈치만 보고 있을 때 감사하게도 사장님이 일거리를 주셨다. A4용지 한 장을 펼쳐 보인 사장님은 이것으로 미니북을 만들어보자고 하셨다. 아아, 그래서 오늘의 준비물은 색연필이었구나. 어린애 소꿉장난 같아서 뭔가 웃음이 나왔지만 일단 사장님의 설명에 따라 종이를 접었다.
총 8면으로 나뉜 A4용지의 가운데 두 칸을 자르니 미니북 하나가 탄생했다. 며칠 동안 고민했던 가제를 표지에 적으니 나름 재밌었다.
이런 내용을 담고 싶다, 하는 것을 한 번 채워보세요.
생각보다 진지해졌다. 나는 펜을 열심히 굴리며 표지를 제외한 6면을 어떻게 채울지 고민해봤다. 지금까지의 계획으로는 일단 미국에서 썼던 일기를 바탕으로 미국 교환학생 생활이 어떤지 알리고 싶었다. 일기를 바탕으로 하니 개인적인 경험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여전히 타인이 흥미를 느낄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 그땐 참 이랬었지,라고 회상하는 것보단 쓸모 있는 책. 그것에 중점을 두었다.
대략적인 키워드로 종이를 채워나가는데 *칸이 모자랐다. 처음에는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었지만 만들고 나니 꽤 뿌듯했다. 우리들은 앞사람부터 돌아가며 자신이 만들고 싶은 책을 발표했다. 손에는 아직 손바닥만 한 얇은 책을 들고 있었지만 다들 반짝이는 눈빛으로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15분이란 짧은 시간에 멋진 드로잉으로 칸을 빼곡히 채운 만화 작가님도 있었고, 책에 넣고 싶은 문구를 꼭꼭 담은 분도 있었다.
* 이때부터 책이 두꺼워질 것을 알았어야 했는데. 지금 나온 책이 이때 만든 책의 딱 두 배다.
근데 책이 다 거기서 거기 아닌가? 똑같은 이야기밖에 안 나올 것 같긴 한데,
이런 멍청한 생각을 했던 나를 계몽하기 위해 18명의 작가님들은 18개의 책에 대한 아이디어를 내놓으셨다.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나의 책 취향을 주류, 혹은 대중의 입맛으로 착각했는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림책이라고 다 같은 그림책이 아니었다. 판형*과 표지의 색깔, 코팅의 유무 등 무수한 개인의 선택에 따라 책은 천차만별로 변용했다.
* 판형(format) : 인쇄물 크기의 규격. 책의 사이즈라고 보면 된다.
더 큰 충격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수업 끝나기 직전의 QnA 시간에 쏟아진 질문에 나는 또다시 얼굴이 붉어지고 말았다. 이미 출판 경험이 있는 작가님들과 사장님이 주고받는 질문 속에 나는 탁구공처럼 고개만 열심히 돌리고 말았다. 일단 그분들이 사용하는 단어부터 귀에 익지 않았다.
판형, CMYK, 인디자인, ISBN, 세네카, 견적, 4도 인쇄
제대로 아는 단어 하나가 없었다. 책을 좋아하고 많이 읽어봐서, 그에 대해 많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다 착각이었다. 나는 그저 취향 따라 책을 소비하는 독자였으며 편식 심한 어린애였다. 많이 배워야겠다. 지금이라도 내가 지식이 얕다는 사실을 깨달아서 감사했고 부끄러웠다.
오늘 수업 어땠어요?
텅 빈 교실에서 사장님이 물었다. 여기저기 흩어진 종이를 정리하며 발그레한 볼을 올려 나를 바라보시던 사장님 얼굴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분들은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전 되게 좋았어요!"
강의자도 수업 참여자도 모두가 처음이었던 수업. 어딘가 어수선한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처음이니까 뭐 어때. 일단 나부터 잘하자, 싶었다.
이렇게 아는 것 없는 저를 구원한 것은 다음 수업이었습니다. 토요일(7/7)에는 <원고 쓰기-책 구성-인디자인 편집-인쇄소 방문> 등 책의 출판 과정을 전반적으로 훑어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