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만드는 프로그램이 공짜로 있대.
잠깐 미국에 갔다 온 사이에 동네에 서점이 생겼단다.
우리 집 근처에 독립 서점이 생겼는데, 딱 너가 가면 좋아할 것 같아. 한국 오면 꼬옥 여기 같이 가여.
이때만 해도 무슨 소리인가 싶었다.
물론 서점이나 도서관의 분위기는 좋아한다. 대형 서점이든 헌책방이든 개인 카페든 책이 놓인 공간은 어딘가 고요하다. 손님들로 복작거려도 그뿐, 눅눅한 헌책에 소복이 쌓인 먼지처럼 다시금 평화로워지는 느낌을 좋아한다.
내 친구는 이런 평화로움을 넘어 조금 더 특별한 소소함을 독립 서점에서 찾았다고 한다.
인천 부평동, 사람이 잘 찾지 않는 골목에 위치한 서점 이름은 '북극 서점'이었다.
2016년 여름, 손님으로서 북극 서점을 처음 방문했던 때만 해도 내가 2년 후에는 작가의 손으로 그 유리문을 다시 열게 될 줄은 전혀 몰랐다. 학생으로 돌아온 나는 그렇게 저렇게 남들 하듯이 졸업을 했고 취업전선에 뛰어들었다.
2017년의 여름은 유난히 나에겐 더웠다. 졸업 가운이나 검은색 정장은 여름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기엔 너무도 답답했고 숨이 막혔다. 하지만 지옥 같은 전쟁에서 결국 나는 승전포를 울렸다. 빳빳한 정장에선 벗어났지만 가슴에는 한 겹 두꺼운 갑옷을 두른 채 나는 또다시 새로운 전선 위였다.
하지만 짧은 기간, 그냥저냥 지인이 아니면 들어주기 따분한 그런 퇴사 스토리를 두 번이나 생성하며 나는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내 일생에서 팔 할은 족히 차지하던 열정과 의욕이 댕강 잘려나갔다. 내가 선택한 길에 후회했며 성격을 비난했고, 더 발전하여 내 삶을 부정했다.
나는 사회 부적응자인가?
참지 못하는 성격은 사실 정의로운 편이 아니라 사회 부적응자의 징후 중 하나가 아니었을까?
알고 보면 인간은 내 직업이 아니었을지 몰라.
길가에 치이는 돌멩이가, 왕릉을 지키는 소나무가, 바닥에 깔린 흙이 부러웠다. 기분이 바닥을 치니 퇴사의 이유가 됐던 글쓰기는 변명이 되었고, 가시가 깔린 침대에 까만 밤은 내려도 잠은 도저히 날 찾아오지 않았다.
어느 날이었을까. 빈 집에 홀로 늦게 깨어나 인스타그램을 확인했다. 습관적으로 피드를 훑는 내 눈에 게시글 하나가 보였다.
북극 서점에서 인천 콘텐츠코리아 랩 '틈 문화창작지대'에서 진행하는 독립출판 제작 프로그램을 맡게 되었습니다. 자신의 창작물에 대해 동료 창작자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며 다듬어보고 실제 출판 기술과 홍보까지 아우를 수 있는 6주간의 프로젝트예요. 혼자만 품고 있던 작은 씨앗이 비로소 튼튼하게 만져지는 무언가로 탄생하는 멋진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기간 : 12월 12일 - 1월 18일
시간 : 매주 화, 목요일 6:30~10:00
참가비용 : 무료
준비물 : 노트북(시험판 인디자인, 포토샵 설치)
무척 하고 싶었다. 신청하는 시간을 견디지 못해 안달이 나 있었다. 심지어 무료. 내 손으로 만드는 책이라니. 어디로 떠나 있었는지 다시 돌아온 열정과 의욕이 더욱 몸집을 키워 나를 재촉했다.
프로그램 신청과 전화 인터뷰를 순식간에 마치며 나는 발표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이 놓아버리고 싶은 삶에 하늘이 동아줄을 내려주길 목 빼고 기다렸다.
붙었다. 무려 16:1의 경쟁률이었다고 한다. 두근두근. 내가 좋아하는 것에 대해, 책이란 영역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순간은 언제나 즐겁고 기대됐다.
첫 수업을 시작하는 12월 12일. 추워서 목도리를 둘둘 매고 인천 2호선을 타고 인천 시청 역에서 내렸다. 처음 보는 건물이 하나 보였다. 이곳을 나서는 내년이면, 내 이름이 적힌 책 한 권을 쥐고 있을 게 분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