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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지문덕 Jul 18. 2023

감정 아웃포커싱

흐린 조연들 속 빛나는 주연


토요일 아침부터 분주하다.

가족사진 찍으러 스튜디오 가는 날이라서.


  실물보다 더 예쁘게 나오기 위해 꼼꼼하게 세수와 면도를 한다. 평소에 귀찮아서 바르지 않던 것들을 바른다. 특히 비비기능이 있는 선크림을. 다음은 중간 강도의 헤어왁스로 이마와 귀 뒤쪽 두피에서 자라고 있는 까만 잔디들도 가지런히 정돈한다. 얼굴 정비가 끝나고 잘 세탁된 하얀 셔츠와 네이비 정장을 입는다. 거울로 최종 스캔 해보니. 음 이 정도면 멋있네. (Take a photo) 이제 전문 사진작가님이 있는 그곳으로 간다. 메소드 미소를 지으며 어색한 포즈 몇 번 하고 나니. 어느덧 촬영 종료.


세상에나.

실물보다 사진이 훨씬 낫다. 


  역시는 역시네. 전문가의 손길을 거친  엄선된 사진들은 달랐다. 차라리 사진이 실물이었으면 좋겠다. 사진 속 인물로 쭉 살아가고 싶다. 더 빛이 날 텐데.


  그나저나 내가 찍은 사진은 왜 이렇게 허접할까. 왜 멋진 느낌의 사진이 안 나올까. 초보니까. 초보자니까 빛을 활용하지 못한 거야. 초보라서 구도가 약하고 촬영 컨셉이 부족한 거라는 핑계들로 빠져나가고 싶지만, 아 그냥 똥손이다. 짜증 난다.


  원인 한 가지만 찾기로 마음먹고. 프로작가의 작품을 매의 눈으로 10초간 째려보았다. 한 가지 차이점을 발견했다. 아포!


아웃포커싱



  주인공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사진작가가 활용하는 기술이다. 아웃포커싱을 통해 작가의 시선과 관점을 개성 있게 표현한다. 이 기술은 작가의 감수성과 미적 감각을 극대화한다. 다초점으로 촬영한 사진보다 단일초점의 주인공이 더 빛이 나고, 보는 이의 시선을 더 오래 붙잡는다. 아마도 흐리게 존재하는 조연들 덕분인 것으로 보인다. (한강공원 수돗가에서 만난 땡볕의 주얼리들을 아웃포커싱으로 찍어보았다) 문득 이런 생각이 전구처럼 번뜩인다.


흐린 조연들 속의 주연이 더 빛나는구나


  드라마, 영화, 소설 등 삶을 그린 작품들에는 조연이 있다. 아니 반드시 필요하다. 밤하늘의 별은 어둠 덕분에 찬란하게 빛난다. 별이 주연이고 어둠은 조연이다. 이처럼 조연은 극 중의 초점에서 다소 떨어져 있으면서 동시에 주연을 더 빛내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인생극장에서도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는 생각이 든다. 희노애락은 빛과 어둠의 조화를 네 글자로 표현한 말이지 않을까. 어쩌면 신이 인간의 운명을 빵으로 만들 때 슬픔과 분노, 고통과 괴로움을 일부터 넣은 재료였는지 모른다. 그래야 기쁨과 즐거움, 아름다움과 행복의 앙꼬가 더 달콤할 테니까.


Amor Fati


  아모르파티. 운명에 대한 사랑을 노래한 독일 철학자 니체는 이런 마음으로 살아가지 않았을까. 삶의 길목에는 기쁨과 슬픔, 고통과 즐거움이 함께 놓여 있으니 모두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구니에 함께 담아라. 애써 어둠을 몰아내려 하지 말고 함께하라. 단 주의사항이 있다. 삶의 장면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셔터를 누를 때는 아웃포커싱으로 찍을 것. 기쁨과 즐거움에 초점을 맞추고 고통과 괴로움은 아웃포커싱할 것. 그렇게 운명을 아울러 사랑한다면 언제나 꽃 길을 걷는 사람이 될 테니까. 그러면 삶은. 아마도파티(Party).



감정은 선택일까


  만약 영화를 고르듯 감정의 장르를 내 맘대로 고를 수 있다면 나는 액션과 코미디. 가끔은 멜로를 선택할 텐데. 놀랍게도 그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하는 '미움받을 용기'의 아들러 심리학이 흥미롭다. 원하는 것. 즉 목적을 얻기 위해 꼭 필요한 감정을 인간 스스로가 만들고 선택한다는 목적론 논리다.


  브라보. 감정은 원인이 되는 사건에 대한 반응이라는 프로이트 심리학의 원인론과 정반대다. 양쪽 다 이치에 맞다는 생각이다. 다만 감정에 대한 통제력을 확보하여, 삶의 도화지 위에 원하는 물감으로 원하는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는 자유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아들러 심리학에 마음이 끌린다.


  예를 들어 인간은 호감 가는 이성을 잡고 싶어서 긴장의 감정을 일으킨다. 어떤 분야의 고수가 되기 위해 도전적 목표에 흥분의 감정을 느낀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또는 배우자를 지키기 위해서 시기 질투의 감정을 선택한다. 즉 목적을 위해 감정을 스스로 창조하고 선택하는 메커니즘이다.


부정적인 감정도 선택이다


화를 왜 낼까? 화날 일이 있으니까? NO. 

 화날 일이 있어서 화가 나는 것이 아니라, 만만한 사람이 되기 싫어서 화의 감정을 선택하는 것이다. 화를 내면 사람들이 나를 두려워할 테니까. 화를 내면 내가 원하는 데로 사람들이 움직여주니까.


걱정은 왜 할까? 걱정할 일이 있으니까? NO.

  걱정할 일이 있으니까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이든 완벽하게 해내고 싶어서 걱정의 감정을 만드는 것이다. 걱정이 많으면 돌다리도 두드리며 일을 더 잘하게 될 테니까. 걱정이 많으면 한 번이라도 더 챙기고 더 생각하게 될 테니까.


왜 두려워할까? 위험하니까? NO.

  위험한 일이니까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죽지 않고 생존하고 싶어서 두려움의 감정을 창조하는 것이다. 두려움의 감정을 느끼면 위험에서 멀어지게 되니까. 위험에 노출되지 않으면 안전하니까. 그래서 생존할 수 있으니까.


후회는 왜 할까? 후회할 일이 있으니까? NO.

  후회할 일이 있으니까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후회의 감정을 덧붙이는 것이다. 후회가 클수록 강력하게 복기해서 개선하게 될 테니까. 후회를 통해 더 생생히 기억해 낼 수 있으니까.


  아마 이런 방식으로 우리는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감정을 무의식적으로 선택하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싶다. '행복한 이기주의자' 저자 웨인 다이어는 행복하고 싶다면, 감정은 선택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도 안 된다고. 감정은 내 맘대로 선택할 수 없어. 말이 쉽지. 라고 반론할 수 있다.


  우선 감정선택 가능여부 논쟁은 차치하더라도, 선택이 가능하다는 사고방식 자체를 동경하고 싶다. 왜냐하면 실제로 감정을 선택할 수 있다면 감정의 주인으로 살 수 있는 길이 열릴 것이다. 또 원하는 감정만 취사선택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그야말로 '행복한' 이기주의자로 살아갈 수밖에 없으니까. 어쩌면 조물주 위에 감정주(主) 일수도 있으니까.


워너비 감정의 주인(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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