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출판서평3] 낯선 사람

김은지 작가

by 글멋지기

제목 낯선 사람

작가 김은지

출판사 이름서재




더는 여행을 가지 않는다. 거리, 기간 혹은 목적에 따라 여행의 정의가 바뀔 순 있겠으나 보편적 범주로 설명되는 여행에 더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관심을 둘 수 없는 삶 속에서 허덕이고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매우 크다. 독립출판물을 경험할 기회가 꽤 많고, 꽤 많이 발걸음을 향했었다. 독립출판 박람회를 비롯해 독립서점에서 열리는 여러 수업, 모임, 행사 등. 개중 자주 눈에 띄는 종류가 여행 에세이이긴 하지만, 정작 구매해서 실제로 읽게 되는 도서 목록에는 여행 관련 책이 없는 현상 속에 사는 일상이다. 온갖 도시와 나라 이름이 제목을 차지하고 짐작건대 그곳의 어딘가를 찍었을 사진이 표지에 올라간 도서들은 어떠한 감흥과 호기심도 불러일으키지 않기도 하고. 짧은 여행이거나 일정 기간의 거주 이야기거나 구분할 필요는 없겠다.


김은지 작가의 『낯선 사람』은 여행 에세이다. 무려 십 년이 넘게 서랍 깊숙이 담아두었던 과거의 기억과 경험이고, 유럽 각국 각 도시로 거창하게 세운 계획 같은 단어는 멀리 밀어둔 채 그저 필름 카메라와 함께 걸음을 옮긴 여행 기록이다. 여행지의 소개와 관광지를 돌아본 감상, 잠시 혀를 즐겁게 한 미식을 향한 찬사를 기대한다면 빨리 생각을 바꿀 것을 권한다. 『낯선 사람』은 여행지에서 마주한 ‘낯선 사람’들과 맺게 된 사람의 이야기이자 그들에게 사랑의 정의를 묻는 독특하고 인상 깊은 탐구생활이기 때문이다.


표지의 만듦새가 인상적이다. 풍경 사진을 내세워 이국적이라는 감탄사를 의도하려는 속셈이 보이지 않는다. 흰 벽의 집인 듯하고 낡은 갈색 창문 틀에 몸을 기댄 백인 할아버지의 모습이 독자를 반긴다. 잠시 눈인사를 건네고, 창문 틀에서 풍기는 느낌처럼 견고하지만 어딘가 부드럽고 따스한 표지를 손으로 어루만진다. 표지를 넘기면 앞서 만난 창문 틀과 닮아있는 면지(책의 앞뒤 표지 안쪽에 있는 지면)와 그 위에 받은 짧은 문구가 손을 흔든다.(한 북페어에 참가했을 당시 처음 만나 인사를 나눴고 현장에서 책을 구매했더랬다.)


“무엇보다 사랑 가득한 날들 보내시기를! ―김은지”


처음부터 끝까지 작가의 여행기를 함께 완주한 독자라면 느낌이 다르게 다가올 문구라 믿는다. 면지 너머에 자리한 흰 표제지를 넘기니 갑작스레 한 면을 가득 채우는 사진이 연달아 등장한다. 프롤로그에 이를 때까지. 이후에도 이야기 사이마다 여행 당시 작가가 직접 찍은 사진들이 놓여있다. 책을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될 방법을 추천할 시점이기도 하다. 책장을 넘기며 사진이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잠시 멈춰보자. 사진끼리 비교해 보면 독특한 점 하나가 떠오른다. 책에 실린 사진 대다수에는 꼭 사람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십수 년 전 작가가 담아낸 당시의 순간을 살아가던 사람들일 테다. 사람이 가득한 책이라는, 유쾌한 경탄을 자아내는 점이다. 사진 속 무대가 어디인지 알 수 없다는 점도 삽화 사진들의 또 다른 특징이다. 누구인지도 어디인지도 모를 사진에 눈을 고정하고 그야말로 뻔한 수사적 어구를 동원해 보자. 상상의 나래를 펼칠 때다. 이들 각자가 품고 있는 사랑의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 영화 수십 편은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여행 에세이에 전혀 손을 뻗지 않는 주관의 벽을 허문 이유이자, 망설임 없이 에필로그의 마지막 마침표까지 더듬고 이후 펼쳐진 몇 장의 사진까지 감상하며 책을 덮었던, 첫 번째 이유이기도 하다.


삶을 이루는 요소에서 여행을 탈락시켰으니 여행 에세이 또한 시야에 두지 않는 사람으로서, 이번 책을 한 호흡에 읽어 내리게 한 두 번째 요소는 작가가 담아낸 여행 자체에 있다. 『낯선 사람』의 표면에는 시간과 장소의 흐름에 따라 작가가 오감으로 마주한 경험이 맺혀 있다. 이점도 충분히 음미할만하지만, 책 속 진하고 깊게 새겨진 이야기의 정수를 놓칠 순 없다. ‘사랑’으로 완성되는 ‘사람과의 관계’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천착, 그곳에서 비롯된 따뜻함과 아련함이 책 곳곳에서 묻어 나온다. ‘Love is...’로 끝나는 미완성의 문장. 작가는 우연이 거듭되어 찍힌 낯선 이와의 접점에 미완성의 문장을 내밀며 그들이 추구하는 사랑의 모습을 책 안으로 끌어들인다. 동시에, 그들 개개인과 주어진 시간 동안 맺었던 관계를 천연하게 풀어냄으로써 작가가 여행 당시 좇고 있던 사랑의 이름과 그로 인해 정의될 타인과의 관계 또한 그려내고 있다.


『낯선 사람』을 통해 접하게 될 여행 기록의 바탕에는 책의 첫 글부터 소개되는 ‘러브 프로젝트’가 깔려있다. 작가는 방문하게 되는 여행지마다,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이 떠다니는 시간의 흐름에서 마주한 낯선 이들에게(그들 입장에서는 작가야말로 낯선 사람이었을 텐데.) 사랑이 무엇인지를 묻는다. 최초에 ‘I love OOO’로 질문을 던지는 바람에 깊은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아 ‘Love is...’로 문구를 바꾼 뒤 다양한 생각과 감정을 접하게 됐음을 소개한다. 답변을 해준 이들의 사진과 그들이 직접 적은 손글씨도 책에 포함한 덕분에, 억지로라도 타인을 부러워하지 않으려는 고집이 잠시 위태로웠다.(그만큼 작가가 만끽했을 당시의 공기와 햇빛의 냄새, 이 둘이 딛고 섰을 땅, 주고받았을 모든 대화가 부러울 따름이다.)


‘Love is...’에 응한 여러 인물 중 유독 한 명이 기억에 남는다. 분장을 한 채 동전 바구니조차 놓지 않고 거리에 서 있던 크렙스. 그에게 ‘Love is...’를 제시하고 ‘Paradise Lost’라는 답을 받은 뒤의 문답이다.


“단어 그대로 내 천국을 망치는 게 사랑인 것 같아.”

“어떤 점에서?”

“사랑을 하기 전에 나는 나 자체로 완전하거든. 하고 싶은 건 뭐든 할 수 있어, 오늘처럼. 사랑에 빠지면 나는 아주 불완전한 사람이 돼. 내가 틀린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상대방과 맞춰가면서 내 세상을 잃어버리기도 하지.”

“그럼 사랑을 하고 싶지 않겠네?”

“그렇지는 않아. 사랑이 끝나고 나면 사랑을 시작할 때의 나와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잖아. 그래서 괴롭지만 가치 있다고 생각해.”


전체 약 190장 정도로 된 책에서 1/3 정도, 순서로 계산하면 열여덟 편의 글 중 고작 여섯 번째. 페이지로는 62페이지. 책을 덮어둔 지금도 바로 찾아내 펼 수 있으리라. 62페이지를 꾹 눌러 펼친 채 한참을 읽고 또 읽은 까닭에 이 부분이 유독 벌어져 있기 때문이다.


해당 문답을 소개한 뒤 스스로가 사랑을 맹신한다고 밝힌 작가는 “조금이라도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것 역시 사랑뿐”이라고 강조한다. 사랑의 기쁨과 가치를 몸에 두르고, 사랑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날카로운 상처와 아픔이 괴로운 가시밭을 걷는 필자로서는, 이해하지만 동의하긴 어렵고 공감하기에 동의하고 싶은 모순의 마음으로 작가의 말을 곱씹게 된다. 마찬가지로, 스스로의 내면으로 침전해 자신만의 생각을 궁리해 보는 유희를 가져보는 것이 책을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될 두 번째 방법이 되겠다.


열두 번째 글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는 여러모로 인상 깊다. 책을 덮은 이후에도 계속 마음 한편에서 떨림을 전하는 글로, 『낯선 사람』 속 작가가 전하는, 책 속 진하고 깊게 새겨진 이야기의 또 다른 정수를 담고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총 열여덟 편의 글 중 길이가 가장 긴 것도 그 이유이지 않을까. 한편으론 ‘Love is...’에 담긴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찾는 여행기를 따라가는 중 작가가 채울 말은 무엇일지 궁금해진 터였다. 은연중에 남녀 간의 사랑 혹은 우정으로 말미암은 사랑을 염두에 뒀음이 분명하다. 제목이 눈에 들어온 순간 느꼈던 당황 서린 놀라움을 돌이켜보면 말이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를 빌려 작가는 ‘아빠를 낳은’ 할머니와 ‘엄마를 낳은’ 할머니와 함께한 이야기를 술회한다. 이야기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면 두 분의 할머니가 눈앞에 그려지는 듯하다. 할머니라는 점을 제외하면 짚어낼 수 있는 공통점은 전무한데 작가가 두 할머니를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러나, 그 부분이 바로 작가가 선택한, ‘Love is...’의 미완성 문장을 완성하는 열쇠가 된다.


아빠를 낳은 할머니를 언급하며 작가는 말한다. “몇 번을 들어도 서글픈 이야기 끝에 ‘내가 사랑을 할 줄 몰라서’하고 고백하는 할머니의 말이 ‘내가 사랑을 받지 못해서’라고 들린다. 그때의 할머니를 만나면 내가 꼭 안아줄 텐데.” 그래서 통화 말미 사랑한다고 어색한 말을 전하는 할머니에게 부러 크게 “응 할머니! 사랑해! 나도! 많이 많이!” 답한다고 고백한다. 엄마를 낳은 할머니는 어떤가. 딸에게도 숨기는 비밀을 공유하는 ‘친구’ 사이가 됐음을 털어놓는 작가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할아버지와 사별한 할머니를 홀로 둘 수 없어 무작정 할머니 옆 빈자리를 채웠던 긴 시간 끝의 과실이라며, “보고 싶을 땐 먼저 영상 통화를 거는 멋진 친구가 있어 좋다.”라고 기뻐한다.


조건 없는 사랑, 혹은 이유 없는 사랑. 꼭 부모와 자녀만이 서로를 향해 가질 수 있는 가치이던가. 나아가 사랑에 이유나 조건이 있어야만 하는가. 구태의연한 명제라고 해도 좋다. 시대의 변화가 쳐대는 파랑에 따라 겉모습은 변할지언정 고유의 가치 자체만으로 존재감을 역설하는 것이 바로 사랑일 것이다.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에서 작가가 꿈꾸는 자신의 미래는 따라서 그가 추구하는 사랑의 모습과 상당 부분 맞닿아 있다. 조건 없이 다정하고 이유 없는 사랑을 주는 법을 아는 사람. 『낯선 사람』이 풍기는 향과 닮은 작가라면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낯선 사람과의 조우를 통해 사랑을 찾아가는 깨달음의 여정뿐 아니라 『낯선 사람』은 여행 에세이로서의 역할도 톡톡히 해낸다. 구태여 유명한 관광지를 꼭 찾지 않아도 충족한 여행의 모습, 우연한 만남에서 이어지는 다양한 사람과의 인연, 무계획이 가져다준 필연적인 촌극과 그 시간을 채우는 웃음과 즐거움 등. 자유여행을 즐기는 독자와 자유여행을 망설이는 독자 모두의 흥미를 유발할 수 있을 이야기가 가득하다. 사이사이 작가의 심미안이 돋보이는 사진들은 이 책의 백미이겠으나, 즉각적인 해답을 원하는 유형에게는 다소 만족스럽지 않을 가능성도 엿보인다. 책에 수록된 글 앞뒤로 사진이 배치되어 있으니 해당 글과 연관된 사진이라고 추론할 수는 있겠으나 사진을 촬영한 장소와 일자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기 때문이다. 코끼리(象)의 형태를 생각하는 것(想)이 잘 맞는 독자에게는 이야기에 잠겨 추론의 유희를 즐기기를, 바로 해답이 필요한 독자는 작가의 근황에 눈을 두어 북페어 등의 참가 소식이 들리면 직접 찾아가 묻는 즐거움을 가지기를, 『낯선 사람』을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될 마지막 방법으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