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정한다. 통렬하게 인정해야겠다. 6년, 3년, 그리고 3년의 제도권 교육하에 그저 흘러갔던 시간을 들어내 면밀히 뜯어보면 휘발된 시간만큼 삭아버린 여러 학원의 잔해가 가득 차 있음을. 각각에 붙어있는 이름표는 다음과 같다. 글짓기, 수영, 검도, 태권도, 서예, 바둑, 피아노, 단소, 미술, 잠시 사이를 두고 국어, 영어에 이어 수능 대비 종합학원과 사회탐구영역 단과반까지.
공부를 가장 마지막 수단으로 두고, 혹시나 어딘가 재능이 있을까 예체능으로 가득 채운 학원 바구니가 교과목으로 전부 교체됐음이 보인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회상의 기억이기도 하다.
학원 자체의 쓸모에 천착한 것이 먼저였다. 영어학원의 쓸모를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고민해야 할 지점이 여럿 존재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가정에서의 영어교육은 필수인가 선택인가. 그 방향은 어떻게 되어야 하는가. 학교 교육 체계가 제공하는 영어 학습은 효율적인가. 실효성은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공교육 정책이 빚어낸 영어 학습의 목적에 비추어 볼 때 가정과 학교와 학원은 연계가 가능할 것인가. 조금 더 머리를 긁어대며 십 년 넘게 끊은 담배의 찐득한 유혹을 견디고 있으면, 사교육 시장의 존재 의미까지 고민의 밤은 그림자를 드리우게 된다.
그럼에도 한 가지 다행인 것은, 모든 내 경력의 나날을 합쳐보면 공교육 걱정까지 하는 오지랖은 부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회화와 토플(TOEFL)을 전문으로 가르치고 틈틈이 오픽(OPIc)을 곁들인 덕분이다. 잠시, 손가락을 멈추고 세 단어를 가만히 쳐다보면 이들에게서 공통점 몇 가지를 찾을 수 있다.
하나. 영어의 실사용 능력 자체 혹은 실사용 능력을 확인하는 것이 목적인 점
둘. 짧은 시간 안에 갑작스러운 실력(점수)의 향상이 불가능하다는 점.
셋. 점수가 실사용 능력을 온전히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그게 가능한 시험이 존재할 수는 있을까)
넷. 영역은 나뉘지만, 결국 실사용 능력이 갖춰진다면 다 다룰 수 있다는 점.
다섯. 혼자서도 충분히 학습할 수 있다는 점.
이 중 몇 가지 혹은 모두를 납득하지 못하고 반박하는 영어 학습자들이 다수일 것이다. 겉으로는 고개를 끄덕일지언정. 그들의 비판을 재반박하는 과정을 떠올리는 순간이 바로 영어학원의 쓸모를 결정지을 수 있는 순간이 될 것이다.
앞서 열거한 공통점의 순서를 염두에 두고 다시 읽어보는 것을 추천한다. 서로가 서로의 원인과 결과가 되는 것을 느낄 수 있고 따라서 다섯 번째 공통점이 최종 결과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렇다. 영어를 가르친 지 13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동시에 한 명의 평범한 영어 학습자로 지낸 지 15년이 넘는 시간 속에서 얻은 처절하고 뼈저린 결론이다. 영어학습은, 충분히 독학이 가능하다. 수능시험의 외국어(영어) 영역은 논외로 친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겠다. 현재의 수능시험은 영어 실사용 능력을 전혀 측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고로, 영어학원은 쓸모없다는 말이다.' 달을 보라며 가리킨 손가락을 깨물려는 사람이라면 도달했을 결론이겠다. 강조하고 싶은 것은, 영어학원의 쓸모를 결정하는데 필수인 기준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공급과 수요의 법칙일까. 자본주의사회의 당연한 얼굴일까. 민족성과 역사와 문화와 시대가 복잡하게 얽힌 처연한 그림자일까.
처음 회화 강의를 했던 학원에서의 기억이다. 교포 출신의 원어민 강사가 기억의 주인공이다. 강의 시간에 접점이 없어 제대로 대면한 적도 따라서 직접 대화한 적도 없지만 당시 매니저를 통해서 들은 그의 발언은 그 색이 여전히 강렬하다.
'학원에 다닌다는 건 게으르다는 의미예요. 혼자 공부할 마음도, 의지도, 생각도 없는 사람이 학원에 오니까 학원 다니는 사람치고 목표 달성해서 떠나는 사람이 거의 없는 거예요.'
나쁘게만 받아들일 필요는 없겠다. 해당 발언의 문맥을 곱씹어보면 이 말은 앞서 언급했던 영어학습은 혼자서도 가능하다는 명제와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것은 또한 영어학원의 쓸모를 결정짓는 필수 요소를 알려주는 발언이기도 하다.
학습의 목적이 무엇인지와는 별개로 일단 학원부터 등록하는 학원만능주의, 학원에 다니면 어떻게든 될 거라 생각하는 학원낙관주의. 타파되지 않는 두 이데올로기가 사람들의 생각을 지배하는 끈적거림이 강화될수록 영어학원의 쓸모는 역설적으로 없음을 향해 치닫게 된다. 즉, 영어학원의 쓸모는 학원을 목적으로 두느냐와 수단으로 삼느냐에 달려 있는 셈이다.
당시 저 원어민 강사가 의도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생각한다. 보다 더 효율적인 학습 방향과 학습 방법을 대가로 학원에 돈을 지불한다고 하자. 가방 한가득 얻어간 결과물을 혼자서 스스로 소화할 수 없다면, 스스로 학습할 생각을 가지지 않는다면, 혼자서 학습하는 습관과 경험을 쌓는 것의 중요성과 당위성을 계속 외면하고 무시한다면, 그 사람에게는 영어 학원이란 전혀 쓸모가 없는 시설이라는 등식 밖에 남지 않는다.
또 다른 통렬한 개인 고백을 한다. 미국으로 떠나기 전에 다녔던 토플 학원과 회화 학원, 미국 학교 생활 중 여름 방학을 틈타 한국으로 돌아와 다녔던 토플 학원. 출석은 열심히 했으나 복습과 과제와 연습과 스터디 참여는 전혀 하지 않았음을 고백한다. 따라서 영어 실력 향상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음은 자명한 사실이다. 그때의 학원은 나에게 쓸모가 있었나? 전혀 없었다고 해야 한다. 전혀 쓸모가 없게 만든 것이 나이기 때문에 학원의 유용함과 전문성 등의 평가 역시도 할 수 없다.
학원 강사를 시작한 이래로 무수히 많은 수강생을 가르쳤고 그들의 성향 또한 서로 달랐다. 그럼에도 자주 목격한 광경이 있다. 열심히 오래 학원을 다니지만 전혀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 수강생들, 출석만 열심히 하는 수상생들, 뚜렷한 결말을 짓지 못한 채 애매한 상태로 슬그머니 사라지는 수강생들. 그들에게 내 수업은 쓸모가 없었던 것이고, 학원에 투자한 돈과 시간과 에너지 또한 의미가 없었던 것이니 학원 또한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쓸모없게 돼버린 피동법의 주체로서의 시간이 너무도 잦고 길어 인이 박인 지금이지만, 여전히 느껴지는 마음 한구석 멍울은 커지지도 작아지지도 않은 채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