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9. 나와 닮은 장소
나는 갯벌이다.
살면서 가본 적이 없는 장소를 하나하나 따져보니 나랑 참 비슷하다.
갯벌은 썰물에 드러난다. 바닷물이 쏙 빠지고 나서야 비로소 모습을 나타낸다. 주변에 사람이 너무 많거나 정신없는 상황이 밀물처럼 다가오면 혼란스럽다.
시끌벅적한 물살이 쭉 빠져 평화로운 틈이 생겨야 나다워진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출근 시 지하철 끝자리, 혼자 카페 가면 구석 자리를 찾나 보다.
갯벌에는 보이지 않는 다양한 생물들이 산다. 내 머릿속도 수많은 생각이 산다.
겉으론 조용히 앉아 일하고 있는 것으로 보여도 머릿속은 늘 분주하다. 오늘 저녁 메뉴부터 복권 당첨 시 뭘 살지까지, 별의별 생각들이 들락날락한다.
어떤 날은 퇴직 후 뭐 할지 열 판째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있다. 남들이 보기엔 '가만히 있는 사람'인데, 내 머릿속은 짱뚱어들이 팔짝팔짝 뛰어다니고 헤엄치고 난리다.
갯벌은 푹푹 빠진다. 빠지면 나오기 힘들지만 고생한 만큼 수확도 많다.
나는 사람을 사귈 때 낯을 살짝 가리고 경계심도 있어서 섣불리 다가가지 않는다. 그래서 겉으로 보기에 무심하거나 조용해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한번 친해지면 갯벌 안에 고이 간직한 진주마저 꺼낸다. 물론 쉽게 주지는 않겠지만 말이다.
갯벌은 그냥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수천수만 번의 물살이 오가고 오랜 시간 모래와 진흙, 작은 조각들이 쌓이고 또 쌓여서 비로소 만들어진다.
내가 살면서 고민했던 일, 상처받았던 순간, 혼자 삭힌 생각, 머릿속에 정리 안 된 감정들. 차곡차곡 퇴적되어 지금의 내가 되었다.
오늘도 흙 한 줌이 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