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칙연산
에세이의 시대다. 에세이는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자기 경험을 토대로 쓰는 글이다. 그래서 글쓰기를 처음 시작하는 사람들에게 에세이는 좋은 출발점이 된다. 형식이 자유롭기 때문에 부담 없이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에세이를 잘 쓰는 사람들은 단순히 감각적인 문장이나 멋진 표현만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평범한 경험을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으로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
경험이란, 자신이 실제로 해본 것, 겪어본 것을 말한다. 자신이 기억하는 모든 것을 경험이라고 불러도 좋다. 그 기억이 모두 글이 될 수 있을까? 답은 '그렇다'다. 그러나 자신만의 독특한 경험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한 가지 과정이 필요하다. 바로 기억을 장면화하는 일이다.
예를 들어, 바다에 갔다 온 경험을 글로 써보려 한다고 하자. 대부분 사람들은 이렇게 쓸 것이다.
"휴가철을 맞아 동해 바다가 보고 싶어 바다로 향했다.
파란 하늘과 시원한 바다를 기대했지만 차가 너무 막혀 밤바다만 볼 수 있었다.
아쉬웠지만 내일을 기약하고 숙소로 향할 수밖에 없었다."
이 글은 사실을 나열한 것에 그치고 있다. 그 안에서 나만의 경험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 이때 '나의 경험'을 제대로 담기 위해서는 시선을 옮겨 내가 바라보는 대상에 집중해야 한다. 단순한 사실이 글감이 되기 위해서는 그 장면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이 바꾸어 볼 수 있다.
"차가 밀려 늦게 도착한 바다는 온통 검정뿐이었다.
마치 아무 생물도 살지 않는 곳처럼, 검은 물결만 일렁이고 있었다.
분명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푸른 물결에 하얀 거품이 일렁였을 텐데.
내 마음까지 검게 변해버릴까 봐 나는 서둘러 숙소로 향했다."
어떤 차이가 느껴지는가? 같은 경험이지만, 내가 바라본 한 장면을 자세히 떠올리고 묘사하니 훨씬 생생한 글이 되었다. 이처럼 경험을 '장면화'하는 것은 글을 쓰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과정이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프레임과 시선이 중요하듯, 글에서도 어떤 시선으로 장면을 바라보느냐가 글의 성패를 좌우한다.
장면화는 일종의 디렉팅과도 같다. 경험을 나만의 한 장면으로 만드는 것이고, 그 과정에서 내 경험을 어떻게 느껴지도록 할 지 새로운 방향을 잡아가는 일이니 말이다. 똑같은 경험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그것이 로맨틱해질 수도 있고 공포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다.
경험을 장면화하고 디렉팅하는 훈련은 일상생활 속에서 꾸준히 할 수 있는 가장 간단한 글쓰기 연습이다.
내가 문창과 입시를 하던 시절, 나를 가르치던 선생님은 시인이었다. 어느 날 선생님이 한 과제를 내주었다. 매일 3개의 장면을 기억에 남는 대로 기록하라는 는 것. 과제는 일주일짜리였지만, 나는 그 방식이 너무 좋아서 7개월 동안이나 지속했다. 그러다 보니 특정 기억을 장면화하는 습관이 몸에 배었다.
이 과제를 통해 나는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고, 글쓰는 방식도 달라졌다. 지나가다 만난 한 그루 나무도 자세히 보면 모두 다른 모습이고, 새벽길을 걸으며 환경미화원을 바라보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 지어진 벌집을 발견하는 등의 작은 장면들을 발견하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글 쓸 거리를 찾아 땅을 보고 걷다가 만원짜리 지폐를 주운 적도 있었다. 그날을 나는 이렇게 기록했다 :
"배추벌레처럼 알차게 이 돈을 쓰는 방법은 없을까. 그때 책상 한 구석에서 돼지가 나를 보고 웃고 있었다. 나는 지폐를 돌돌 말아 그 돼지의 등에 쑤셔 넣었다. 꾸역꾸역, 돼지가 돈을 먹는 소리가 들렸다. 그 안에 쌓인 은빛 동전들과 황금빛 동전 위에 얹힌 만 원짜리 지폐는 너무 가벼웠다. 먹을 만한 게 못 되었다. 순간, 돼지처럼 살면 편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 경험은 단순히 "길에서 만원을 주웠다"는 문장으로 끝날 수 있었지만, 기억을 장면화하여 구체적으로 떠올리고 묘사하니 전혀 다른 글이 되었다. 어느 날에는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잠든 모습을 이렇게 묘사한 적도 있다.
"어떻게 들으면 한숨 소리처럼 들렸다. 내뱉을 수 없는 말들이 여기저기 엉켜 숨 쉬고 있었다."
단순히 ‘술 취해 잠든 아버지가 안쓰럽다’라고 쓸 수도 있었지만 아버지를 계속 바라보며 더 나은 표현을 찾으려 애썼던 기억이 난다.
이렇듯 경험을 장면화하는 일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순간을 글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세상을 다르게 바라보는 시선을 기를 수 있게 해주고, 더 나아가 묘사하는 능력도 자연스럽게 키울 수 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시선으로 세상을 디렉팅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글은 더욱 풍부해지고, 나만의 독창적인 이야기가 탄생하게 된다.
+ 기억에 남는 한 가지 경험을 떠올려 한 장면으로 묘사해 보세요. 이때, 그 장면의 시선은 내가 아니어도 좋습니다. 사물, 동물, 자연, 혹은 타인의 시선이 되어 표현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