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 팔딱팔딱 살아있는 글감

글칙연산

by 글쌤 류민정
감정챕터.jpg

얼마 전, 영화 <인사이드 아웃 2>를 보며 펑펑 울었다. 새롭게 등장한 캐릭터 ‘불안’이 갱생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내 안에 크게 자리 잡고 있던 불안에게 스스로 위로해 주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중에서도 특히 ‘기쁨’이 불안에게 했던 한마디가 가슴에 깊이 남았다.


"라일리가 어떤 사람인지 우리가 결정할 수 없어."


감정은 우리를 결정짓지 않는다. 이 말은 영화 속 주제를 관통하는 문장이지만, 실제로 살아가면서 인간이 감정 조절을 해나가면서 성장한다는 걸 의미한다. 우리가 나이 들수록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애쓰는 이유는 한 가지 감정에만 매몰되면 우리가 소중하게 지켜온 신념마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 깊은 통찰을 저 짧은 대사 한 줄로 표현했다니, 제작진이 감정에 대해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알 수 있다.


영화를 보면서 내내 생각했다. 내 감정도 저렇게 살아 숨 쉬는 존재라면 어떤 모습일까? 어떤 감정은 크고, 어떤 감정은 숨어 있으며, 어떤 감정은 서로 미워하거나 좋아할까?


감정이 우리를 결정하진 않지만 우리는 감정에 대해 얼마든지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리고 특히 글을 쓸 때, 감정은 없어서는 안 되는 필수 재료다.


뜬금없지만 내 MBTI를 밝히자면 ENTJ다. 흔히 말하는 효율 지향적인 성격이라, 예상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을 극도로 싫어한다. 그래서 ENTJ는 때때로 공감 능력이 부족하고 직진밖에 모르는, 냉정한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의외로 나는 눈물이 많은 ENTJ다. 물론, 타인에 대한 공감보다는 나에 대한 공감이 더 클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유명 연예인이 악플을 극복하고 새로운 캐릭터로 성장하는 모습을 보면서 나를 투영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영화 속 '불안'의 절망적인 모습에서 나 자신을 발견하며 눈물을 쏟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MBTI 검사를 다시 해보면 여전히 더 선명하게 ENTJ로 나온다.


MBTI는 우리 성격을 들여다보는 수단이 되었지만, 나는 사람들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러한 유형 분석에 의존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감정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면, 나 자신이 지금 어떤 생각을 하는지조차 잊게 된다. 결국 스스로 어떤 사람인지 말하기가 어려워지는 것이다.


감정이란 것은 살아있는 글감이자, 우리에게 가장 가까운 소재다. 그러나 감정을 들여다보는 건 정말 어렵다. 우리는 매일 웃고 울며, 누군가에게 공감하고, 우울해하거나 즐거워하며 살지만, 막상 그 감정을 글로 표현하려면 순식간에 딱딱한 로봇처럼 변한다. 너무나 쉽게 느낄 수 있는 것이 내 안의 감정인데,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면 그 감정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리곤 한다.


얼마 전, 안광복 작가의 강연에서 그는 글쓰기가 어려운 이유는 "논리의 영역"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즉, 감정이 논리적으로 설명되지 않기 때문에 글로 쓰기 어렵다는 뜻이다. 논리가 아닌 감정을 논리적인 글로 설명하려고 하니 어렵고 복잡한 게 어쩌면 당연하다.


아이들이 가져오는 글을 볼 때, 내가 가장 자주 묻는 말이 있다.

“그래서 어떤 마음이 들었니?”

“그래서 어떻게 생각했니?”


많은 사람들이 글에서 감정을 쏙 빼고 자신의 경험을 '남의 일처럼' 쓴다. 감정을 숨기는 현상(?)은 마치 본능처럼 자주 나타난다. 감정을 숨기고 논리적으로만 쓰려고 하니 결국 진심이 담기지 않고, 독자에게도 와닿지 않는다. 글을 쓰기 전, 먼저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방법은 단순하다. 계속해서 물어보고, 계속 들여다보는 수밖에 없다. 스스로에게 말이다. 나 지금 슬픔인가? 기쁨인가? 아니, 난처함에 가까운데 기쁜 척하는 걸까? 실망스러운데 슬프다고만 생각하나? 등등… 순간적인 기분에 따라가 흘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똑바로 나의 마음을 바라보아야 한다.


처음 글을 쓰는 사람일수록 이 과정이 오래 걸리고 어려울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는 귀찮기까지 할 것이다. 감정을 들여다보는 건 습관으로 될 일이 아니고 일부러 시간을 내서 해야 하는 ‘작업’이다. 그래서 나는 <인사이드 아웃>이 정말 좋은 글쓰기 교본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에 등장하는 감정 하나하나가 모두 글감이다. 자신만의 감정 캐릭터를 만들어보고, 그 감정의 이미지를 구체화해 보는 것이 감정을 이해하고 글로 표현하는 좋은 훈련이 될 것이다.


감정은 글의 시작과 마무리 모든 영역에서 좋은 재료다. 글을 쓰다가 특별한 경험이 떠오르지 않을 때, 글을 마무리 지어야 할 때, 내 안의 감정을 꺼내보는 건 큰 무기가 될 수 있다.


이제 내가 좋아하는 감정 하나를 떠올리고, 그 감정을 글로 표현해 보자. 그 감정이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일까? 그 감정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을까? 감정을 잘 표현할수록 글은 풍부해지고, 마치 글이 숨 쉬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감정을 다루다 보면 아주 깊숙이 숨어 있던 '진짜 나'의 이야기가 드러날지도 모른다.


+
내가 좋아하는 감정을 찾아보세요. 없다면 앞서 쓴 경험에서 느껴지는 감정 한 가지를 정해보세요.

그 감정이 살아있다면 어떤 모습일 것 같나요?

그 감정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그 감정의 모습을 내가 할 수 있는 한 아주 구체적으로 적어보세요.
+ 예시

좋아하는 감정: 외로움

외로움이 살아있다면: 물

외로움에게 해주고 싶은 말:
"가만히 고여 있으면 좋을 텐데,
자꾸 흘러넘치는 건 만나고 싶은 세상이 많아서겠지?
마음껏 나와서 내 주변에서 흐르렴. 내가 헤엄쳐줄게."

외로움의 구체적인 모습:
어디든 흘러 다닌다. 그래서 숨기도 잘하고 모습을 드러낼 땐 한없이 넘쳐흐르기도 한다. 투명한 탓에 곁에 있는 것과 곧잘 같은 색이 되어버린다. 담아 놓는 그릇이나 컵, 있는 자리에 따라 넘치기도 부족하기도 하다. 모아서 마셔버리려고 하면 늘 부족하다.






이전 04화+경험 : 기억을 디렉팅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