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칙연산
아이들과 함께 글쓰기 수업을 하다 보면, 구체적인 예시가 얼마나 중요한지 절실히 깨닫게 된다. 얼마 전, 편지 쓰기 공모전을 준비하면서 아이들은 할아버지, 같은 반 친구들, 숙제, 미래의 자신, 좋아하는 아이돌 등 다양한 대상에게 편지를 썼다. 주제가 있는 공모전이었기 때문에 비슷비슷해 보일까봐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다양한 주제가 나왔다. 처음에 대부분의 글이 이런 식이었다.
"할아버지에게 행복을 드리고 싶어요."
"우리 반 아이들아, 이제 내가 너희한테 웃음을 줄게."
"숙제야, 너는 나를 너무 힘들게 했어."
"32살의 나에게, 힘내라는 말을 해주고 싶어."
“언니의 노래는 저를 변하게 했어요.”
이 글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막연하다는 것이다. 행복, 웃음, 힘듦, 응원이라는 단어들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기는 하지만, 읽는 사람이 느껴지기에 충분한 이야기나 감정을 담고 있지 않다. 글을 그릇이라고 치자면, 그릇을 만든 사람(글쓴이)은 그 그릇에 담긴 속사정, 그릇을 만들 때 우여곡절, 과정, 이야기들을 다 알고 있지만 완성된 그릇을 바라보는 사람(독자)은 그냥 빈 그릇일 뿐이다. 말은 되어 있지만, 그 안에 무엇이 담겨 있는지 알 수 없는 것이다. 구체적인 상황을 담아주지 않으면 그 글은 쉽게 공감을 얻지 못하고 지나치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아이들에게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려보게 유도했다. 할아버지에게 "행복"을 드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구체적인 장면을 떠올리게 했다. 아이는 할아버지를 떠올리며 자신이 쓴 동시를 읽어드린 장면을 적었다. 그 장면 속에서 할아버지가 어떻게 웃었고, 그 순간 어떤 기분이 들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적으니 편지는 단순한 말 이상의 감동을 전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아이는 반 친구들에게 "웃게 해줄게" 라고만 썼던 편지에서, 자신이 직접 만든 그림책을 읽어주며 친구들이 깔깔 웃는 모습을 상상해서 적도록 했다. 구체적인 상황이 들어가자, 그저 웃게 해주고 싶다는 말보다 훨씬 더 생생한 편지가 만들어졌다.
한 아이는 숙제에게 편지를 썼다. 처음에는 "숙제야, 너는 나를 너무 힘들게 했어"라고 막연하게만 적었지만, 숙제가 구체적으로 어떤 존재인지, 언제 가장 싫었는지, 그리고 숙제가 어떻게 바뀌었으면 좋겠는지 의인화를 해보게 했다. 아이는 숙제에게 난센스 퀴즈를 알려주고, 지금은 너무 커서 거인 같으니 조금 작아졌으면 좋겠다는 내용을 적었다. 심지어 숙제를 간지럼 태워서 작아지게 하고 싶다는 상상까지 덧붙였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표현하니 그 글은 훨씬 재미있고 생동감 넘치는 이야기가 되었다.
미래의 자신에게 힘내라는 말을 하고 싶었던 아이도 있었다. 나는 그 아이에게, 12살의 자신이 32살의 자신에게 어떤 즐거움을 전하고 싶을지 물었다. 그리고 자신의 학교생활에서 즐거웠던 순간들을 떠올려보게 했다. 아이는 친구들과 함께 놀았던 소소한 즐거움들을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그러면서 현재의 나를 미래의 나에게 소개하는 듯한 편지가 완성되었다.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아이돌에게 편지를 쓴 아이는 어떤 노래이고, 어떤 가사에서 영향을 받았는지 쓰게 했다. 또 이전의 나의 모습과 자신이 좋아하는 아이돌을 알고 나서 변하게 된 나의 모습을 상세하게 적어보도록 했다. 한 친구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던 아이는 자신이 겪은 일을 소설처럼 묘사했고, 그 편지는 뻔한 아이돌 팬의 추앙 메시지가 아니라 한 사람의 성장 스토리로 탈바꿈했다.
이렇듯 막연한 표현을 구체적인 상황으로 바꾸면 글이 훨씬 더 생명력을 갖게 된다. 막연하게 감정을 표현하는 것과 그 감정이 나타나게 된 구체적인 상황을 적는 것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단순한 말에 영혼을 불어넣는 방법은 바로 구체적인 상황을 통해 이루어진다.
어떻게 하면 구체적인 상황을 떠올릴 수 있을까?
우리는 모두 특정 순간에 감정을 느낀다. 분명 그런 순간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사랑하다"라는 말도 구체적인 상황을 덧붙이면 훨씬 풍부한 의미를 갖게 된다.
강아지는 내게 사랑을 주고 나도 매일 사랑을 준다. 나는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지만 강아지를 만나고 사랑한다고 말하게 되었다.
강아지를 사랑한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지만, ‘강아지를 만났다’ 외에 어떤 상황인지 크게 와닿지 않는다. 아래 문장을 보자 :
"나의 강아지는 오늘 아침에도 창밖을 향해 소리를 질러댔다. 뭐가 그리 예민한지 분주하게 발소리를 내며 헥헥대는 강아지를 향해 나는 그만그만 거리며 혼을 내고 짜증을 내버렸다. 그러고 나면 강아지는 까만 눈동자로 나를 바라보며 해맑게 입을 벌린다. 사실 강아지는 입을 벌리는 것뿐인데 난 왜 웃고 있다고 느끼는 걸까? 강아지는 이렇게 내 영혼을 열어주었다. 나는 강아지를 매일 쓰다듬지만, 어쩌면 나 자신을 쓰다듬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사랑에 관한 나만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한 장면으로 고백함으로써 이 글에서의 사랑은 ‘나를 변화시킨 성장 키워드’로 구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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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하나를 정해보고, 그 감정이 느껴졌던 구체적인 상황을 적어보세요.
그 감정이 단순한 말로 끝나지 않도록, 장면을 떠올리며 구체적으로 묘사해 보세요.
단순한 감정 표현에 구체적인 상황을 더해 영혼을 불어넣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