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칙연산
글쓰기의 본질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자면, ‘전달’이다. 쉽고 명확하게 전달할수록 글의 힘은 더 커진다. 그런데 글을 많이 써본 사람도, 책을 많이 읽어본 사람도 쉽게 빠지는 함정이 있다. 바로 과도한 수식어를 남발하는 것이다. 마치 메이크업을 처음 배운 사람이 너무 진하게 하는 것처럼, 글쓰기에 열정이 생기면 수식어를 화려하게 꾸미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긴다.
수식어는 글의 메이크업이다. 적절히 쓰면 글을 더 매력적이고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하지만 너무 많이 쓰면? 오히려 글의 본질을 흐리게 만든다. 본질이 흐려진 글은 명품 화장품이나 훌륭한 기법을 활용한다고 해도 원래 얼굴에 있는 장점까지 가려버리는 메이크업과 다를 바 없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수식어를 과하게 쓰게 될까? 멋지게 묘사하고 싶은 마음 때문이다. 내가 겪었던 것, 보여주고 싶은 것을 글로 더 자세히 멋지게 보여주기 위해서 수식어를 남발하게 되는 것이다. 좋은 묘사는 글을 더 풍부하게 하고, 독자를 몰입하게 만든다. 그러나 묘사에 욕심을 부리다 보면 어느새 수식어가 글의 흐름을 방해하게 되고, 핵심 메시지는 놓쳐버리기 쉽다. 수식어가 많아질수록 독자는 집중력을 잃고, 때로는 글의 진정성마저 의심하게 된다. 결국 간결한 표현이 가장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푸르고 푸른 하늘이 마치 바다처럼 광활하게 펼쳐져 있는 모습이 정말 아름다웠다."
이 문장은 멋져 보이지만, 수식어가 너무 많아서 문장이 복잡해졌다. 수식어를 조금만 줄이면, 문장은 훨씬 더 깔끔하고 명확해진다.
→ "푸른 하늘이 바다처럼 광활했다."
어떤가? 불필요한 수식어를 덜어내니 더 시원하고 직관적이지 않은가? 이런 식으로 수식어를 덜어내면 글의 핵심이 더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중요한 질문은 하나다.
“이 단어가 없어도 의미가 전달되는가?”
만약 수식어가 없어도 충분히 의미가 전달된다면, 그 수식어는 불필요한 장식일 뿐이다. 과감하게 빼버리자!
수식어를 잘 ‘빼면’ 어떻게 될까?
내가 가르쳤던 한 학생의 시를 예로 들어보겠다. 이 친구는 감각적인 표현을 정말 좋아했다. 그래서 시를 쓸 때 아름다운 단어와 표현 방식을 많이 사용하곤 했다. 문제는 그렇게 화려한 표현을 많이 넣다 보니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 잘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 시를 한번 읽어보자.
에메랄드 같은 물 폭포가 나에게 피어온다
연한 분홍빛 액자
꼭 나처럼 생겼네
향기 나는 차가운 얼룩이 피어난다
따뜻한 보라색
아쿠아마린 옅은 불길
토파즈의 11월
파란 눈꽃 나무는
작게 커다랗게
후후후 후후후
별빛으로 마른 꽃은
오히려 좋아
투명한 유리병 속 내게
물 폭포처럼 쏟아지는 얼룩
다양한 표현이 멋진 시지만,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는 잘 잡히지 않는다. 행마다 여러 묘사를 통해 이미지가 굉장히 많은데 읽는 사람은 화려한 이미지를 따라가기에 혼란스럽고 바쁘다. 자연스럽게 글에 몰입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나는 최대한 이 시에 나오는 불필요한 수식어를 덜어내고, 메시지를 더 명확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핵심 문장을 뽑아 다듬어보았다. 결과는 이렇다.
에메랄드 같은 물 폭포가 나에게 피어온다
↓
에메랄드 폭포가 내 안에 피어난다
연한 분홍빛 액자
꼭 나처럼 생겼네
향기 나는 차가운 얼룩이 피어난다
투명한 유리병 속 내게
물 폭포처럼 쏟아지는 얼룩
↓
내 안에는 얼룩이 필 때가 있다
유리병 속에 빛나는 폭포처럼
쏟아지는 나의 마음
훨씬 간결하고 명확하진 것을 볼 수 있다. 대화를 나눠본 결과 이 학생은 자신의 내면을 ‘얼룩’에 비유하고자 했고, 내면을 잘 감추지 못하는 자기 자신을 ‘유리병’이라고 표현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내면의 혼란이 폭포처럼 쏟아져 나오는 모습을 보여주고자 했다. 수식어를 빼면서 자신이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로 정리가 됐다. 마지막으로 완성된 시를 읽어 보자.
얼룩
유리병 속에 얼룩이 피어난다
숨기고 싶어서 가두어 놓은
나의 얼룩
어쩔 땐 보라색이 된다
어쩔 땐 옅은 불길이 되고
눈꽃 나무가 되어 자란다
마른 꽃으로 피어나기도 한다.
숨기고 싶은 만큼
투명해지는 나의 얼룩
유리병 속 내게
폭포처럼 쏟아지는
빛나는 마음
제목도 “얼룩”이라는 단어 하나로 간결하게 바꿨고, 수식어를 덜어내니 가독성이 훨씬 더 좋아졌다. 수식어는 분명 묘사력을 키우는 중요한 도구다. 하지만 그 도구를 과하게 사용하면, 글의 흐름을 방해하게 된다. 간결하고 명확한 표현이야말로 진짜 좋은 묘사다.
수식어를 덜어내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자기도 모르게 어지럽게 펼쳐 놓은 생각을 정리 정돈 할 수도 있다. 글쓰기가 힐링이 되는 이유는 이렇게 정리 정돈 하는 힘을 기를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은 생각을 잘 보관해 두는 동시에 ‘잘 버릴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실습) 빼기의 매력 맛보기
과도하게 수식어를 사용한 문장을 하나 작성해 보세요. 처음에는 최대한 문장을 화려하게 꾸며보세요. 자신이 알고 있는 최대한 멋진 표현을 마음껏 써보는 거예요. 예를 들어 하늘, 나무, 바람 등 자연의 풍경을 가득 담아본다면 어떨까요? 짧은 문장 하나, 일기, 에세이 어떤 장르든 상관 없습니다. 화려하게 포장된 문장을 써본 뒤 수식어를 빼 보는 거예요. “이 수식어가 없어도 의미가 전달되는가?” 이 질문을 항상 기억하세요. 그리고 필요하지 않다면 과감하게 빼는 용기를 가지세요!
*묘사 거리가 생각이 안 난다면 세 가지 예시를 드리겠습니다.
1. 지금 내 눈앞에 있는 모습 묘사해 보기
2. 나의 이상형 묘사해 보기
3. 기억에 남는 여행지 또는 장소 묘사해 보기
묘사 예시 (1)
“대나무 숲 사이로 바다가 보이고 엄청난 바람이 불며 파도가 넘실거린다. 파도가 넘실대는 소리와 바람 소리, 대나무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합쳐져서 마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
“대나무 숲 뒤의 바다는 한숨을 쉬었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그리스인 조르바>)
묘사 예시 (2)
“그의 얼굴은 하얗고 창백한 빛을 띠며, 마치 고운 도자기처럼 섬세하게 빚어진 듯하다. 말라 보이지만 그 안에 숨겨진 굵고 강인한 뼈대가 느껴졌고, 그의 넓은 어깨는 마치 듬직한 바위처럼 당당하게 서 있다. 깊고 울림 있는 목소리는 잘 조율된 악기 같았고, 깔끔하고 단정한 인상은 우아하고 정돈된 매력을 풍긴다.”
↓
“그는 하얗고 말랐지만, 넓은 어깨와 굵은 뼈대, 좋은 목소리 덕분에 깔끔한 인상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