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칙연산
글을 쓰다 보면 “이 장면을 어떻게 묘사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들 때가 있다. 눈에 보이는 장면을 생생하게 그려내는 묘사는 글 속에 몰입하게 만드는 중요한 기술이다. 하지만 거기서 끝나면 조금 아쉽다. 글 속의 장면은 그저 사실을 전달하는 데 그치게 되고, 읽은 이의 마음에 깊은 인상을 남기기에는 부족할 수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바로 은유를 더 하는 것이다.
묘사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그려내는 일이라면, 은유는 그 장면에 숨겨진 감정과 메시지를 담아내는 도구다. 묘사와 은유가 만나면 글 속의 장면은 단순한 묘사 이상의 무언가가 된다. 독자는 글 속에서 더 깊은 상상력을 발휘하게 되고, 때로는 그 글에 담긴 감정까지도 함께 느낄 수 있게 된다.
은유를 통해 이야기가 얼마나 드라마틱하게 변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내가 기억하는 아주 특별한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결과적으로 그림책으로 만들어지지 않았지만, 아이와의 신나는 티키타카로 물 흐르듯 완성했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은유의 힘을 절실히 느꼈다.
처음 스토리텔링을 시작할 때, 아이는 무조건 ‘모험 이야기’를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주인공을 정하는 과정에서부터 난관에 봉착했다. 아이는 동물도, 사람도 싫다고 하면서 그저 모험이라는 큰 틀만 고집했다. 나 역시 조금 답답한 마음에 장난처럼 말했다.
“그러면 그냥 ‘아무나’ 라는 사람으로 하자!”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이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리고 곧바로 말했다.
“좋아요! 그럼 ‘아무나’ 씨가 섬을 모험하는 걸로 할래요!”
나 또한 눈을 반짝이며 다시 물었다.
“섬 이름은 뭘로 할까?”
“음… 아마도?”
“오, ‘아마도 섬’! 멋진데?”
아이의 대답을 듣고 나를 심장이 두근거렸다. 무심코 던진 말에서 생각지도 못한 이야기의 실마리가 풀리기 시작한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이야기는 순식간에 전개되었다.
이야기의 큰 줄거리는 이렇다.
주인공 아무나 씨는 작가다. 그는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야기를 찾아 아마도 섬이라는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이 섬에서는 모든 게 반대로 보인다. 예를 들어, 아무나 씨의 눈에는 양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자이고, 원숭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개미인 식이다. 그리고 아무나 씨는 파리지옥을 맛있는 과일나무로 착각해 붙잡히는 사고를 당한다. 그는 나중에야 아마도 섬에서는 눈동자가 물음표가 되는 마법에 걸린다는 걸 깨닫는다. 위험천만한 아마도 섬에서 그는 이제 여행이 아닌 생존해야 했고, 섬 탈출을 위한 모험을 시작한다. 그러다 어느 저택에 들어가게 된 아무나 씨. 저택 안에는 가구도 없고, 문이 천장에 달려 있어 넝쿨을 타고 다녀야 한다. 저택을 둘러보던 아무나 씨가 다락방으로 가 보니 그 안에는 눈과 귀, 입이 달린 자음과 모음들이 갇혀 있었다. 글자들은 “우리 좀 읽어줘!"라는 문장을 만들어냈고, 그날 밤 아무나 씨는 글자들의 이야기를 모두 들으며 이야기에 둘러싸인 채 잠이 든다. 그 후 아무나 씨는 밤새 만들어진 이야기와 글자들을 하나하나 모아 배를 만들고, 이야기 배를 타고 섬을 떠나게 된다.
이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동안 정말 신이 났다. 왜냐하면 이야기 자체가 온통 은유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은유들이 놀랍도록 잘 맞아떨어졌다. 이 이야기는 글을 쓰기 위한 작가의 여정을 환상적인 모험으로 풀어낸 것이었다.
주인공 아무나 씨는 실제로 작가를 의미하고, 아마도 섬은 작가의 무의식을 은유한다. 물음표가 된 눈동자는 작가가 글을 쓸 때 가지는 호기심과 상상력을 나타낸다. 저택의 다락방은 아이디어가 떠오르는 발상의 공간을, 그리고 다락방에 갇혀 있던 자음과 모음은 작가가 찾아야 할 나만의 언어를 상징한다. 마지막으로, 아무나 씨가 만든 이야기 배는 그가 쓴 스토리 그 자체인 것이다.
이처럼 은유는 단순한 메시지를 특별하게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도구다. 아무나 씨의 여정이 사실은 작가의 글쓰기 여정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알고 나면, 그 이야기는 훨씬 더 흥미롭고 의미 있게 다가온다.
은유의 힘은 동시에서도 빛을 발한다. 예를 들어, 어느 아이는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는 답답한 마음을 ‘생각 섬’이라는 독특한 상상력으로 풀어냈다.
생각이 안 나서
생각 섬으로 간다
생각 섬 뇌 나무에는 생각 씨앗이 자란다
관심 씨앗
질문 씨앗
아이디어 씨앗
생각들은 뛰어논다.
생각들을 잡아먹는 상어에게 쫓기고
생각 씨앗으로 캐치볼을 하고
멍 언덕에서 멍도 때리고
생각들이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누가 더 기발한 상상을 하는가’ 놀이
섬의 주인은 수다쟁이 잔소리
잔소리도 최강
상상력도 최강
생각 찾아 삼만리
-4학년 시, [생각 찾아 삼만리]
생각 찾아 삼만리라는 제목의 이 시는 ‘생각 섬’이라는 상상 속 섬에서 펼쳐지는 모험을 묘사한다. 그 섬에는 뇌 나무가 있고, 그 나무에는 생각 씨앗이 자란다. 섬에는 상어도 있는데, 이 상어는 생각을 잡아먹는 상어다. 이 상상 속 섬에서 아이는 생각들을 쫓아다니며 기발한 상상을 펼친다. 이 시 역시 은유를 통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 답답함'이라는 평범한 경험을 특별하게 만들어낸 것이다.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시가 있다. 제목은 ‘귀찮음의 문’이다. 말 그대로 귀찮은 하루를 표현한 시인데, 귀찮을 때마다 귀찮음의 문이 열리고 놀 때나 잘 때는 귀찮음의 문이 닫힌다. 특히 아침에 일어났을 때 귀찮음의 문은 활짝 열린다. 문이 열리는 소리와 움직이는 모습을 묘사하면서 자신이 귀찮아지는 순간을 재치 있게 표현했다.
귀찮음의 문이 열린다
숙제할 때면 활짝 열린다
집에선 아무 소리도 안 내던 문이
밖만 나가면
문이 벌컥 열린다
신나게 놀고 집에 갈 때면
문이 끼이익거린다
어라? 지금 시를 쓰고 있는 와중에도
문이 움직인다
놀 때나
잘 때만 잠기는
귀찮음의 문
-5학년 시, [귀찮음의 문]
같은 아이가 쓴 또 다른 동시도 재미있다. 아래 시는 자기 자신을 부리 안에 많은 걸 숨기는 욕심 많은 펠리컨으로 묘사하고 욕심과 꿈이 점점 줄어드는 것을 감각적으로 표현했다.
나는 펠리컨이었다
매일 꿈을 먹다가
부리가 작아졌다
마지막으로 먹은 꿈은
이상하게 쨍쨍했다
어떤 꿈은 희미했다
사실 부리가 작아지는 게 아니었다
펠리컨과 꿈이 사라지는 것 또한 아니었다
사라지는 건 나였다
-5학년 시, [꿈 먹는 펠리컨]
은유는 묘사와 조화를 이룰 때 더 큰 빛을 발한다. 마스다 미리의 만화 속에서 초등학생을 보고 ‘새로 꺼낸 껌’에 비유한 장면처럼 평범한 상황을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것과 연결 지어보는 것이 은유의 시작이다. 상상력을 발휘해 연관 없는 것들을 연결 지어보면, 그 안에서 은유의 진짜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실습) 한 가지 장면이나 물건, 사람에 대해 자세히 묘사해 보고, 그것을 음식, 색깔, 계절, 날씨 등과 같은 연관 없는 것들과 연결 지어보세요. 처음에는 억지스럽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그런 과정을 통해 은유의 힘을 배울 수 있습니다. 은유의 맛을 느껴보세요.
예시(1) 친구의 목소리×가을 햇살과 바람
“친구의 목소리는 부드럽고 낮다. 천천히 말할 때는 조용한 강물 같고, 웃을 때는 맑은 새벽 공기 같다.”
↓
“친구의 목소리는 가을 저녁의 햇살처럼 따스하다가, 어느새 가을밤의 차가운 바람처럼 서늘해지곤 했다.”
예시(2) 내 방×지구 온난화
“내 방은 항상 어수선하다. 정리한다고 해도 금방 다시 어질러지고, 또다시 원래 상태로 돌아가는 일이 반복된다.”
↓
“내 방엔 지구온난화가 진행 중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잠깐뿐 금방 다시 혼란으로 돌아간다. 답이 없는 기후 변화가 내 마음에도 일어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