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게으른 회고록 *3월

by 글쌤 류민정

두산인문극장 Do; 에디터 활동 시작. 연극 참여가 없었다면 절대 하지 못했을 일 중 하나 더. 두산아트센터에서 매년 진행하는 두산인문극장에서 100명의 에디터를 선정하는데, 이 소식을 마삐따 대표이자 연출님이 알려줬다. 솔직히 처음 생각은... 오, 블로그 글감! 이었다. (ㅎ)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내겐 이보다 좋은 인문 교양 실습이 없었다. 한동안 인문학은커녕 자기 계발서만 읽었고, 내 알고리즘은 부자, 경제, 부동산 따위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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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활동을 시작하고 나서야 두산아트센터라는 거대한 문화시설을 자유롭게 드나들며 강연과 연극, 전시를 반강제로 누릴 수 있었다. 제작발표회에도 난생처음 참석해 봤고, 혼자서는 하지 못했을... ‘지역’이라는 단어 하나에 깊게 사유하는 시간도 가졌다.


가장 좋았던 건 ‘기록을 반드시 해야 했다’는 점. 벌이는 일과 하고 싶은 일이 늘 넘쳐 금방 다른 데로 시선이 옮겨가는 나를 블로그에 붙잡아둔 원동력이 바로 이 활동이었다. 한동안 블로그에 들어가기 싫을 때도, 강연을 듣고, 연극을 보고, 전시를 보는 바람에(?) 글을 적을 수밖에 없었다. 기록의 습관을 완전히 놓을 뻔한 순간이 참 많았는데, 어쩌면 에디터 활동이 내 발목을 붙잡아 준 셈이 됐다.


강연이 총 8강이었지만 수료 조건인 딱 4강만 들었다. 월요일 퇴근 후 종로까지 운전해서 강연을 들으면 30분쯤 지나 어김없이 졸음이 몰려왔다. 꾸벅꾸벅 졸기 전 허벅지나 팔뚝을 꼬집었던 기억이 난다. '안 돼, 기억해야 해. 기록해야 해!'


주변을 둘러보면 나처럼 졸음을 참고 있는 사람, 이미 졸고 있는 사람, 초롱초롱 눈을 반짝이는 사람... 다채로운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배움에 대한 열망일까, 인문학 감각을 놓지 않으려는 욕망일까, 아니면 순수한 지성에 대한 동경일까. 이유는 제각각이었겠지만, 내게 잊혔던 감각들을 깨워준 시간만큼은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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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에는 2025년 (나만의) 올해의 책에 들어갈 <즐거운 어른>도 읽었다. 서점에서 우연히 펼친 책 속에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등장하는 바람에 읽게 되었고, 유쾌하고 호방한 글에 매료되어 명랑한 할머니가 되고 싶다는 새로운 꿈도 생겼다. "자유로운 인간이 된다는 것은 아무 기대 없이, 스스로의 명랑성과 가벼운 마음가짐(평온함)에 기대는 것이라 하겠다" 이 문장에 밑줄을 그었다. 내 팔 안쪽에도 '나는 자유다'라는 그리스어가 새겨져 있다. (이옥선 작가님도 언급한 카잔차키스의 묘비명 마지막 줄)


휴, 과연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지금도 이렇게 조급하고 초조한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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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일. 세 번째 어른 학생의 책 수업이 끝나던 날, 꾹꾹 눌러쓴 편지 한장을 받았다. "삶의 행복을 다시 깨달았어요" 라는 말을 언제 또 들을 수 있을까. 이 쪽지는 여전히 우리집 냉장고에 붙여 놓았다. 어느 날 일상 속에서 갑작스럽게 충만해지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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