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게으른 회고록 *4월

by 글쌤 류민정

4월에도 새로운 일이 3가지나 있었다.


그림책 작업 시작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작업했던 <해파리>와 달리 제대로 된 나의 그림책을 만들어야겠다는 문제의식이 생겼다. 지나치게 시적이고 무거운 주제가 아닌 내 이야기가 담긴 책. 그간 아이들과 그림책을 만들며 나는 꽤 오래 그림을 그려왔다. 내 작업을 한다기 보다 아이들 맞춤형으로 (주로 6살~초등학생) 쉽게 표현하는 방법을 숙련해왔다. 그 과정에서 쌓인 나만의 그림체가 있었다. 전공자들은 할 수 없는 쏘 단순한 스타일이기 때문에 그걸 온전히 내 그림책에 써보자는 마음이었다.


13년 넘게 이 일을 하다 보니 언젠가 다시 꺼내 보려고 보관해둔 이야기 더미가 있다. 아이들과 같이 만들었지만 나도 아이들도 버려두고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채 묻혀 있던 문장과 이야기들. 불현듯 그 안에 있는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아무나 씨가 아마도 섬을 모험하는 이야기". 그만큼 나를 설명할 수 있는 이야기가 없었다. 그렇게나의 아무나 씨를 향한 집착이 시작하는 순간이었다. 캐릭터를 잡고, 콘티를 그리고,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던 스토리니까 그대로 하면 되겠지’라는 안일한 기대를 비웃기라도 하듯, 이야기는 그림을 그릴수록 계속해서 모습을 바꾸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렇게 꼼지락거리며 시작한 그림책을 향한 여정이 2025년 12월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글 수업 소설책 출간

토요일마다 와서 글 쓰는 학생의 첫 소설책도 나왔다. 글쓰기 수업이 처음 시작되고 와준 뒤로 1년이 넘게 매주 4~5장의 글을 써냈고, 아주 얇지만 첫 소설책을 만들어냈다. 우리가 그토록 원했던 '글로만 된 책'이 드디어 나온 것이다. 스릴러, 오컬트와 가족 드라마를 넘나드는 소설이었고, 그림 실력도 꽤 있어서 중간중간 삽화와 표지도 직접 그렸다. 지금은 자기가 만든 세계관을 확장한 SF 물을 쓰고 있다. 아마 이번에는 분량도 꽤 될 거고, 전자책으로 공개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


중학생인 그녀와 서로의 취향을 공유하며 글이나 소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매번 신기하고 재밌다. 요즘은 나이를 막론하고 누구나 콘텐츠를 향유하는 시대이다 보니 아이들과 나누는 것도 갭이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내가 배워야 할 것들이 갈수록 많아진다.







연극 <벽>의 시작

1월에 리딩 했던 연극 연습에 들어갔다. 기획을 맡은 나는 겉으로 보기엔 크게 하는 일이 없어 보였지만 자잘한 일들이 계속 생겨났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건 마찬가지였다. 지속되는 지원 사업 글쓰기도 그렇고 지원 없이 무대에 올린다는 사실도 그렇고 내 나름대로 이해해서 보도자료도 만들고 연습실 바깥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야 했다.

연극을 떠올리면 머릿속엔 늘 물음표만 가득했다. 챗지피티한테 내가 뭘 해야 하는지에 대해 물어보면 형식적인 얘기와 불가능한 일들만 늘어놨다. 나중에 연출에게 들은 말은 "설명해 줘도 알 수 없기 때문에" 흘러가는 대로 두었다고 한다. 생각해 보면 맞는 말이긴 하다. 그쪽 세계를 모르는 상태에서 아무리 설명을 들었다고 물음표가 바로 느낌표로 바뀌었을까. 그래서 일단 아는 만큼만 움직이고, 모르는 만큼 흘러가는 방식으로 버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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