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쌤 Aug 09. 2024

그리움도 시원해질 수 있을지 궁금하다

시 카드

ⓒ 2024. 글쌤



essay

엄마의 고향에는 외할아버지가 만들었다는 '또랑'이 있다. 애기 때부터 외할아버지가 손수 만들었다는 소리를 듣고 어린 마음에 괜스레 어깨가 올라가 여기저기 자랑하던 곳이다. 알고 보니 동네 어르신들이 다 같이 돈 모아서 만들었다는데, 몰라, 어쨌든 우리 할아버지가 만든 거 맞음, 괜히 그런 자부심이 드는 곳이다. 또랑이라는 말은 특별히 뜻을 알고 부른 건 아닌데 나중에 검색해 보니 '매우 좁고 작은 개울'이라는 뜻인 도랑의 방언이라고 한다.



엄마나 외숙모가 “또랑 가서 놀아!” 하면 나는 으레 그곳인 줄 알아듣고 동생들을 데리고 쪼르르 달려 나갔다. 외갓집 마당을 나서 오른쪽 길목으로 10초 정도만 뛰어나가면 또랑이 나온다. 그땐 또랑에서 마을 사람들이 빨래를 했기 때문에 근처에만 가도 시원한 빨랫비누 냄새가 가득했다. 여름 냄새. 맞다, 또랑의 여름 냄새가 늘 낯설면서도 좋았다. 간혹 방금 빨래를 하고 떠났는지 물 주변으로 거품이 흐르고 있을 때도 있었다. 그 비눗물 안에서 작은 물고기들과 올챙이들이 경쾌하게 헤엄쳤다. 나는 생물이 들어 있는 물속에 발을 담그기 무서웠는데 동생들은 첨벙첨벙 잘도 놀았다. 물장구를 치고 있으면 모르는 할머니들이 오가며 “미숙이 딸내미구먼?” "미숙이랑 똑같이 생겼네!" 하며 주고받던 목소리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 냄새를 더 이상 맡을 수 없는데도 여름과 또랑을 떠올릴 때마다 코끝에서 빨랫비누 냄새가 맴도는 이유는 뭘까.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야 혼자 외갓집에 내려갔다가 또랑에 갔었다. 그대로네. 나도 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졸졸 흐르는 또랑의 물처럼 흘러가듯 동네를 한 바퀴 더 돌았다. 엄마랑 자주 좀 올걸 그랬나. 영영 할 줄 모를 것 같았던 혼잣말을 하며 말이다. 모든 게 초록으로 살아있는 여름이 몹쓸 그리움이 되어버린 건 시원한 빨랫비누 내음으로 가득한 또랑이 어쩐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또랑은 내게 여전히 여름의 놀이터다. 좁고 작지만 많은 기억들이 멈추지 않고 흐르고 있다.



시 카드는 에세이에 있는 단어 조각을 모아 만든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다음 말에 계속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