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랑자의 마음으로
지금까지 읽었던 책 중 가장 깊은 울림을 주었던 책은 헤르만 헤세의 <싯다르타>였다. “올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집념으로 가득했던 20대의 끝자락에서, 처음 이 책을 만났다. 그때, 나는 단 하나의 생각-올바름-에 갇혀 있었다는 사실조차 몰랐다.
한 때 나는 ‘어른’의 동의어를 ‘올바름’이라고 정의했다. 좋은 어른은 언제나 품위 있고, 말과 행동에서 깍듯함이 묻어나는 존재라고 믿었다. 그 모든 것을 나는 ‘올바름’이라는 단어 하나로 포장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러나 <싯다르타>가 내게 가르쳐준 것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건 유연함이었다. 무언가를 추구하거나 판단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는 열린 태도. 그러한 마음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누구든 할 수 있지만, 아무나 할 수 없던 이해의 방식을 나는 싯다르타에게 배웠다.
나는 무언가에 늘 갇혀 사는 사람이었다. 단어와 단어 사이, 눈빛과 눈빛 사이, 행동과 행동 사이에서 마음은 쉽게 구속되었고, 자유롭지 못한 생각의 바다에서 노를 저으며 금세 지쳤다가 다시 항해하길 반복했다.
몇 년 만에 다시 <싯다르타>를 펼쳤을 때, 이전보다 유연한 태도로 살고 있단 것에 조금은 안도하며 책장을 넘겼다. 자연에 마음을 기울이고 내면의 소리를 조금씩 들을 수 있게 된 시간들 덕분이었다. 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나는 정말로 자유로운 삶을 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따라왔다. 여전히 편견이나 무의식적인 판단으로 스스로를 억압한다는 사실이 온몸에 날카롭게 박혔다.
무시무비 : 옳고 그름이 없음,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는 마음
나는 이 개념을 가슴에 새기며 살아가려 애쓰지만, 마음을 성실히 돌보지 않으면 곧바로 본능적 자아가 어느 순간 입술과 행동으로 튀어나온다. 쏟은 물을 뒤늦게 닦듯, 터져 나온 감정을 수습하며 뒤늦게 마음을 들여다본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은 어쩌면 ‘마음을 판단 없이 바라보는 일’ 일지도 모른다. 내 안에 들어와 있는 감정들을 그냥 두고 천천히 바라보는 일. 그 자체로 나의 세계는 조금씩 확장된다. 자신에게 조차 판단을 멈추지 못하면, 내 세계는 점점 억압될 수밖에 없다.
자유롭고 유연한 태도로 무언가를 찾지 않고 얽매이지 않으며 사랑을 주저하지 않는 삶. 그 삶은 아무나 살 수는 없지만, 누구나 시도할 수 있다.
이제 나는 구도자가 아닌 방랑자의 마음으로 인생의 여정을 즐기려고 한다. 몇 년 후, 다시 <싯다르타>를 펼쳤을 때 또 다른 나를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때까지 판단하지 않고 바라보는 연습을 계속해나갈 것이다. <싯다르타>라는 좋은 책이 내 삶의 여정에 좋은 동반자가 되어줄 테니까.